
추운 겨울. 새해가 말갛게 떠오를 때 어떤 음악을 들어야 할까? 조금 뜬금없을지도 모르지만, 보사노바는 어떨지. 보사노바가 여름의 음악이라지만 겨울에도 굳이 들을 이유를 찾자면 매년 1월 25일이 ‘세계 보사노바의 날’이기 때문이라 할 수 있겠다. 또 그날은 보사노바의 아버지, 보사노바의 거장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Antonio Carlos Jobim)의 탄생일이기도 하다.
여름엔 산뜻하여 좋고, 겨울엔 따뜻하여 좋은 보사노바. 특별한 날을 음악으로 기념하고자 <새해엔, 보사노바(New Year, New Wave)>의 이름으로 한국 보사노바 뮤지션 나희경, 이해완, 이기현 세 사람이 모였다.

보사노바는 포르투갈어로 Bossa Nova, 새 물결이란 뜻을 갖고 있다. 브라질에서뿐 아니라 세계 음악 생태계에 신선한 파도처럼 불어온 특별한 음악. 브라질 음악 불모지인 한국에도 보사노바의 물결을 불러온 뮤지션이 있다. 바로 나희경이다.
2010년 ‘보싸다방’으로 데뷔한 나희경은, 직접 브라질로 건너가 혈혈단신으로 여러 무대와 뮤지션을 찾아다니며 스스로의 음악적 폭을 넓혔다. 보사노바 음악에 대한 사랑과 열정, 그리고 탁월한 감성을 토대로 브라질 씬에서도 인정받아 이반 린스(Ivan Lins)를 비롯한 여러 브라질 뮤지션들과 협업하고 현지에서 앨범을 발매하는 등 한국 보사노바 계의 선구자로서 자리 잡았다.
그와 함께 무대에 오른 이해완. 한국 1세대 인디밴드 ‘보드카 레인’의 기타리스트로서 활동했던 그는, 브라질 음악에 깊이 빠져 삼바와 보사노바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자작곡을 발매한 바 있다. 전통 브라질 리듬을 적극 활용한 음악 스타일을 토대로 이상순, 루시드 폴과 같은 여러 뮤지션들의 음악에 브라질 색채를 더해주고 있기도 하다.
또 다른 지원 사격으로 함께한 뮤지션 이기현. 브라질리언 플루트를 주로 연주하지만, 몇 년 전 보사노바를 심도 있게 연구하여 EP 앨범 <아무것도 안 하다 보면>을 통해 싱어송라이터 활동을 시작하였다. 여러 크고 작은 무대에 오르며 보사노바 뮤지션으로서의 입지를 넓혀가고 있는 중이다.

이기현의 아담하고 소박한 무대를 시작으로, 따뜻한 분위기의 공연이 이어졌다. ‘Isto Aqui, O Que E’,
‘Doralice’와 같은 보사노바 클래식 음악뿐 아니라 자작곡 ‘갈매기 마음’을 들려주며 아늑한 첫인사를 건네주었다.
그의 뒤를 이어 무대에 선 이해완. 떨리지만 담담한 목소리로 노래하는 모습이 보사노바의 솔직한 매력을 한껏 보여주는 듯 했다. 기타 한 대와 목소리 하나. 아주 단출한 구성임에도 관객의 마음을 동하게 만드는 그만의 매력이 무척 돋보였다. 자작곡 ‘매우 쌈바!’의 경우 삼바 리듬을 활용한 곡인 동시에 남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이 하고픈 음악을 하고자 하는 반짝이는 마음을 담고 있어 자연스러움을 노래하는 브라질 음악의 정수가 느껴지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무대에 오른 나희경. 부드럽고 따뜻한 목소리가 시작되자 관객들이 그녀에게 빨려 들어가듯 집중하였다. 차분하지만 지루하지 않고, 나른하지만 풍성하고, 조용하지만 깊이 있는. 그 자체가 특별한 악기가 되어, 무대에선 윤기가 흐르고, 음악은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그녀가 ‘Corcovado’를 부를 때엔 가만히 방에 앉아 칠흑 같은 어둠 속 멀리 보이는 산 하나에 넋을 잃은 기분이 들기도 했고, 'Garota De Ipanema’를 부를 때엔 햇살 더운 해변에서 나긋하게 걸어가는 소녀를 바라보는 것 같았다. 스스로가 가득 담긴 음악 하나만으로 듣는 이의 마음을 어디로든 데려다주는 특별한 무대. 지금이 1월 겨울의 한 중심인지도 잊게끔 만들었다.
또, 유재하의 ‘우울한 편지’를 보사노바풍으로 편곡하여 들려주기도 하였는데, 단순히 리듬에 맞춰 노래를 부르는 것보다도 가사와 음악에 담긴 특별한 감정을 전하는 능력을 탁월하게 선보였다. 약간의 레이백과 변주되는 템포들, 익숙지 않은 박자 구성 속에서 그녀의 감성이 더해진 ‘우울한 편지’는 오로지 나희경의 것이 되어 있었다.

이후 나희경(보컬), 이해완(기타), 이기현(플루트) 세 사람이 함께하는 무대에선 감성 짙은 ‘Eu Sei Que Vou Te Amar’와 ‘Wave’를 선보였다. 각자의 최선으로서 모인 세 뮤지션들은 목소리와 연주로서 서로의 아름다움을 더해주었다. 특히, 보사노바의 매력과 감각을 정확하게 이해한 뮤지션들의 만남이기에 더욱 농도 짙은 진정성이 느껴졌다. 불필요하거나 무의미한 연주 없이, 서로가 가진 솔직함만이 남은 음악. 화려하게 꾸미지 않았기에 오히려 깊은 본질이 돋보이는 무대. 오로지 음악, 나, 단 두 가지만이 존재하는 그 시간 속에서 보사노바는 가장 보사노바답게 흘러갈 수 있었다.
또, ‘Wave’의 경우 나희경이 직접 번역한 한글 버전 가사로 들려주었는데, 그 의미를 알고 들으면서 음악이 지닌 본연의 매력을 더욱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 안에 담긴 것은 사랑과 위로의 마음이었고, 그 소박한 연주들 속에선 차갑게 얼어 있던 날 선 감각들이 따뜻하게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었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보사노바의 진솔한 선율은, 깊은 모래 자국을 켜켜이 남기며 아름답게 물러갔다.
새해의 시작은 무척 설레지만, 사실은 막막하고 두렵기도 하다. 잘 해낼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서고 벌써 뒤처지진 않을까 불안하기도 하다. 하지만 이번 공연 <새해엔, 보사노바(New Year, New Wave)>의 브라질 음악들은 이러한 조급함을 저 뒤로 멀리하고, 나다운 속도도 괜찮다며 어루만져주는 햇빛 가득한 바다와 같았다.
‘보사노바는 마음으로 부르는 것’이라는 나희경의 말처럼, 노래를 부르는 것, 기타를 치는 것, 새해를 시작하는 것, 살아가는 것, 사랑하는 것 등, 모든 일에 있어 스스로의 마음으로서 무언가를 행한다면 가장 나답게 진정성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지 않을까. 또 남들 따라가지 않고 원하는 대로, ‘나의 쌈바!’를 외치던 이해완의 음악처럼, 올 한 해는 보사노바처럼, 삼바처럼 살아간다면, 가장 자연스럽고 진솔한 한 해가 될지도 모르겠다.
솔직함과 나다움으로 음악을 이어가고, 그 길에서 서로를 만난 세 뮤지션의 특별한 무대. 그들이 전해준 새해의 파도는 깊이 기억될 것만 같다.
민예원 '스튜디오 파도나무' 대표?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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