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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 없는 미식 삼합회…혀끝의 쿠데타 일으키다

입력 2026-02-19 16:38   수정 2026-02-19 16:58

화성학에서 소리의 표정을 결정짓는 건 ‘거리’다. 으뜸음에서 출발해 온음 두 개를 온전히 거쳐야 닿을 수 있는 음, 세 번째 음이 그 중요성을 담당하고 있다. 건반을 들여다보면 이 거리는 더욱 명확해진다. 으뜸음을 ‘도’라고 가정할 때 ‘도’에서 ‘레’ 사이, ‘레’에서 ‘미’ 사이. 검은 건반을 하나씩 품고 있는 이 구간은 반음이 네 개나 쌓여야 완성되는 넉넉한 간격이다. 이 물리적인 거리를 ‘장3도’(major 3rd)라고 부른다. 장3도가 확보되는 순간 모호하던 소리의 파동은 비로소 ‘장조’(major)라는 분명한 정체성을 가진다. 으뜸음이 소리의 중심을 잡고 5도가 뼈대를 세우는 존재라면 장3도는 화사한 색을 입히는 역할을 한다. 즉 이 넉넉한 3도가 있어야만 화음이 비로소 풍성해지며 뚜렷한 성격을 띤다. 미식에서도 재료 세 가지가 서로 합을 이뤄 색다른 풍성함을 자아내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바로 ‘삼합(三合)’이라는 미식의 화음이다. 결정적인 3도를 더해 미각을 장조로 이끄는 맛있는 조합 세 가지를 소개한다.
장흥삼합: 육지와 바다의 만남
전남 장흥의 대표 미식인 ‘장흥삼합’은 장3도의 구성요소와 완벽히 일치한다. 재료는 한우, 키조개 관자, 표고버섯이다. 득량만의 청정 바다, 탐진강의 비옥한 들판 그리고 천관산의 깊은 숲이 한 불판 위에서 만나는 장흥이라는 ‘테루아르’ 그 자체라고 볼 수 있다.

장흥은 예로부터 ‘사람보다 소가 많은 고장’이다. 따뜻한 기후와 비옥한 초지에서 자란 장흥 한우는 육질이 부드럽고 마블링이 뛰어나기로 이름나 있다. 묵직한 베이스를 담당하는 장흥 한우에 득량만 청정 해역에서 자란 키조개가 더해지면 달큰한 감칠맛과 부드러움이 한우의 기름진 맛을 감싸준다. 여기에 장흥의 참나무 숲에서 해풍과 이슬을 맞고 자란 표고가 쫄깃한 식감과 깊은 숲의 향을 더하며 장3도를 이룬다.

달궈진 불판 위에서 마블링이 끝내주는 한우가 챠르르 익어간다. 누가 뭐래도 맛의 중심을 잡는 묵직한 ‘1도’(으뜸음)다. 그 옆 짭조름한 바다의 맛 키조개 관자라는 온음이 기름짐 위에 감칠맛을 안정적으로 쌓는다. 이제 또 다른 온음 표고버섯이 정점을 찍을 차례다. 불판에 올라오는 순간 표고 특유의 흙내음과 향긋한 풍미가 고기와 해산물을 안정적으로 붙들어 맨다. 입안에서 세 가지 재료가 섞이며 장조의 화사한 맛을 완성한다.
제주삼합: 훈연과 산미의 장조
제주 서귀포 JW메리어트호텔의 ‘더 플라잉 호그’는 가장 태초의 조리법인 불을 메인 콘셉트로, 불이 가진 역사와 힘을 제주 식재료에 덧입힌다. 김우철 셰프는 식전메뉴인 빵부터 삼합의 관점에서 재해석한다. 다소 생소한 ‘빵, 버터, 귤’ 조합이 주인공이다.

빵은 순수한 밀과 소금만으로 반죽해 매일 구워내는데, 테이블에 내기 직전 장작 오븐에서 한 번 더 구워 훈연 향을 입힌다. 이것이 탄탄한 1도다. 여기에 곁들이는 버터는 매일 아침 신선한 생크림을 원심 분리해 유청을 걸러내고 지방만 추출해 만든다. 신선하고 고소한 지방의 완전한 온음이다.

일반적인 식당이라면 여기서 끝났겠지만 이곳은 ‘구운 귤’이라는 독창적인 3도를 더해 화음을 완성한다. 갓 만든 따끈한 빵 사이에 차가운 수제 버터를 바르고 구운 귤을 통째로 끼운다. ‘이게 맞나?’ 끝까지 의심하며 귤버거를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유레카!’ 걱정이 무색하게 향긋함과 달콤함이 터지는 한입에 상상하지 못한 놀라움이 흘러나온다.

김 셰프는 제주 해녀가 귤을 불에 구워 먹던 관습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당도가 가장 높은 남원과 효돈 농장의 귤을 선별해 껍질째 우드파이어 오븐에 구워 풍미를 최대한 끌어내는 것이 포인트다.

열을 가한 귤은 신맛이 줄고 단맛이 농축된다. 그 위에 뜨거운 귤의 과육을 터뜨려 올린다. 마지막으로 장작 오븐에서 함께 말려낸 ‘시솔트(sea salt)’를 더하면 원초적이고 명랑한 장3도가 된다. 귤이 없었다면 이 음식은 아무리 좋은 밀을 쓰고 그 어떤 프리미엄 버터를 바른다고 해도 그저 평범한 빵과 버터였을 것이다. 그러나 구운 귤이라는 아이디어가 더해짐으로써 완벽한 제주식 삼합으로 재탄생했다.
우니 육사시미 삼합: 원초적 미식
불에 익힌 고기가 문명의 맛이라면 날것은 본능의 맛이다. 서울 논현동의 ‘투뿔 코리안하우스’는 이 원초적 재료들을 가장 화려하고 세련된 방식으로 조합해 최고로 선명한 장3도의 울림을 들려준다. 이곳의 인기 메뉴 ‘우니 육사시미 삼합’은 최상급 1++ 한우 육사시미, 성게소(우니), 감태를 결합한 장3도다.

투명한 유리 접시를 꽉 메우는 첫인상만으로도 든든한 우니 육사시미 삼합. 접시 색감마저 적·황·녹색 세 가지로 정확히 구분된다. 삼합의 베이스를 담당하는 것은 단연 1++ 등급의 육사시미다. 육사시미는 치마살을 사용해 지방의 아름다운 결을 보여준다. 그 위에 황금빛 성게소를 올리고 감태의 섬세함으로 수분을 보듬어 풍성한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혀끝에 닿는 순간 서늘하면서도 찰진 텍스처가 느껴지는 붉은 살코기는 익히지 않은 단백질 특유의 탄력과 은은한 철분 향을 뿜어내며 강력한 으뜸음의 위치를 점령한다. 씹을수록 배어 나오는 고소한 지방의 맛은 묵직한 저음처럼 미각의 중심을 단단히 잡아준다.

여기에 바다의 크림으로 불리는 성게소의 녹진한 지방 맛과 특유의 달큰한 향이 소고기의 쫄깃한 저작감 사이를 파고들며 완전한 온음을 이룬다. 원초적인 날고기의 맛을 날것의 성게소가 화사하고 부드럽게 감싸 안으며 미각의 채도를 한껏 끌어올린다.

이 둘을 감싸는 건 감태다. 김보다 훨씬 부드럽고 섬세한 조직감을 가진 감태는 바다의 깊은 향을 머금고 육지와 바다의 재료를 하나로 묶어낸다. 쌉쌀함이 뒷맛을 깔끔하게 잡아주는 순간, 입안에서는 육사시미의 쫄깃함과 성게소의 크리미함이 뒤섞여 폭발적인 감칠맛을 낸다. 입안에서 사르르 녹아 없어지는 순간의 희열을 도망 못 가게 잡아두는 것이다. 이는 장3도를 넘어 장3 화음의 완전한 ‘해결’과 닮아 있다.

김새봄 푸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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