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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진이 말했다 "선생님이 조율하면 音에서 빛이 나요"

입력 2026-02-19 17:27   수정 2026-02-19 17:28

피아노는 어쩌면 무대 아래에서 더 뜨겁고 강렬한 소리를 뿜는다. 매일 아침 88개의 건반 하나하나를 눌렀다 떼고, 피아노 뚜껑 아래 230여 개의 현이 감긴 핀을 조이고 풀면서 최적의 음정과 음색, 잔향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그것을 ‘조율(調律)의 시간’이라고 부른다. 조율사를 ‘피아노 주치의’라고 부르는 이유다.


‘한국 최고의 피아노 조율사’로 불리는 이종열 명장(88). 지난 70년간 공연장에서 4만2000번 넘게 작업해 온 그는 여전히 국가대표급 현역이다. 이달 초 서울 예술의전당 피아노 보관실에서 한국경제 아르떼와 만난 그는 전날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와 협연하는 임윤찬의 피아노를 만지고 왔다고 했다.

“연주자가 원하는 소리를 말하면 머릿속에서 ‘이쪽 현을 더 조여야겠다’ ‘해머에 붙은 펠트를 몇 차례 찔러야겠다’ 같은 지침이 즉시 떠오릅니다. 좋은 소리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색감을 바꾸는 능력이야말로 오랜 경험의 산물이지요. 한번은 임윤찬 씨가 소리를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들어줄 수 있냐고 물은 적이 있어요. 바로 펠트 윗부분을 만져서 소리를 바꾸니 감사하다고 하더라고요. 연주자가 상상하던 소리를 제 손으로 실현할 때 큰 뿌듯함을 느끼죠.”

그의 손길에 놀란 연주자는 셀 수 없이 많다. 크리스티안 지메르만이 2003년 연주를 마치고 객석을 향해 “완벽한 조율로 최상의 피아노를 만들어준 미스터 리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격찬한 일화는 유명하다. 조성진은 그를 두고 “선생님이 조율해 주시면 피아노 음에서 빛이 나는 느낌이 든다”고 극찬을 남기기도 했다. 예브게니 키신, 라두 루푸, 루돌프 부흐빈더 등 명피아니스트가 모두 그의 손에 신세를 졌다.

이 명장의 재킷엔 늘 ‘피아노 조율 명장 제1호’를 증명하는 배지가 달려 있다. 2007년 정부의 ‘대한민국 명장’ 증서를 받았다. 30년 넘게 예술의전당 전속 조율사를 맡고 있는 그가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작업은 무엇일까.


“음의 높낮이를 맞추는 ‘조율’과 건반의 기능을 손보는 ‘조정’ 단계도 중요하지만, 가장 많은 시간을 들이는 건 단연 ‘정음(整音·voicing)’ 작업입니다. 피아노의 음색과 울림을 결정하는 단계거든요. 음정을 맞추는 일은 기계로도 할 수 있지만, 좋은 소리와 나쁜 소리를 순간순간 판단해서 소리를 열어주는 건 그럴 수 없어요. 청각이나 촉각 같은 감각에 온전히 의존해야 하죠.”

그의 왼손은 오른손보다 2㎝가량 더 길다. 왼손은 옥타브, 3도 화음 등 여러 건반을 동시에 치며 소리를 맞추기 위해 최대한 넓게 벌려야 하고, 오른손은 피아노를 고치기 위한 공구를 늘상 쥐고 있어 차이가 생긴 것. 하루에 적게는 두 대, 많게는 다섯 대의 피아노를 매만지는 그는 “고등학교 3학년 때 조율이란 구덩이에 빠져서 줄곧 헤어 나오지 못한 탓에 양손이 짝짝이가 된 줄도 모르고 살았다”며 웃었다.

이 명장이 건반과 인연을 맺은 건 동네 예배당에서 풍금을 치면서다. 불협화음을 고치기 위해 뚜껑을 열어본 것이 긴 여정의 시작이었다. 조율 학원이나 교육기관이 없던 시절이라 일본 서적을 사다가 일일이 번역하며 독학했고, 군 제대 후 서울의 피아노 공장에서 일하며 실무를 익혔다.

그에겐 어디를 가든 항상 들고 다니는 보물 상자가 있다. 일반적인 드라이버, 바늘, 핀셋, 멍키스패너는 물론 직접 개발한 피아노 조율 도구까지 전부 들어 있는 25㎏짜리 공구함이다. “매일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소리를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다 보니 그에 맞는 도구가 필요하더라고요. 최근엔 긴 막대에 스프링을 매달아서 손의 떨림을 상쇄하는 공구, 얇은 대 끝에 바늘을 설치해서 피아노 전체를 분해하지 않아도 소리를 빠르게 변화시키는 공구도 제작했어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저만의 발명품들이죠(웃음).”

뛰어난 조율이란 무엇일까. “피아니스트 러셀 셔먼이 제가 조율한 피아노에 대해 ‘대부분의 피아노 소리는 한 가지 성질을 띠는데, 이 피아노는 따뜻함과 웅장함을 모두 갖추고 있어 마음 가는 대로 표현할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건반 하나엔 한 소리만 있는 게 아니거든요. 똑같은 건반이라도 누르는 힘의 세기, 깊이, 터치감에 따라서 색채가 확연하게 달라질 수 있죠. 건반은 88개지만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소리를 만들어내는 일, 그게 ‘조율의 정수’라고 생각합니다.”

조율할 때 그의 습관은 두 눈을 감고 숨을 참는 것이다. 귀와 손의 감각을 제외하곤 외부에서 들어오는 신호를 전부 차단하기 위해서다. 아흔이 가까운 나이지만, 그 원칙은 변함이 없다.

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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