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두 달 앞으로 다가온 한국은행 총재 인사 하마평을 취재하다 새삼스러운 사실을 확인했다. 외환위기 직후 한은법 개정으로 현행 체계가 자리 잡은 후 중도에 그만둔 총재가 없다는 점이다. 1998년부터 올해까지 28년간 임명된 한은 총재는 6명. 이창용 총재가 남은 두 달 임기를 채우면 전원이 법으로 보장된 4년 임기를 완주하게 된다. 이 중엔 정권 교체기 재임에 성공해 8년 임기를 채운 이주열 전 총재도 있다.총재뿐만이 아니다. 총재와 함께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6명의 금융통화위원회 위원도 대부분 4년 임기를 보장받는다. 재직 중 대통령실(현재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발탁된 박춘섭 전 위원 정도가 이례적인 사례다.
안정된 거버넌스는 일관성 있는 정책 기조와 조직 문화를 만든다. 한은은 임원과 주요 부서장을 자주 바꾸지 않는다. 내부 출신과 외부 출신이 번갈아 총재직을 맡는 것도 한은의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법률로 임기를 보장받는 부원장, 부원장보가 수장이 바뀔 때마다 관행적으로 일괄 사표를 내는 금감원과 다르다.
한은의 이런 조직 문화는 긴 호흡으로 정책을 펼 수 있게 해준다. 한은이 금리뿐 아니라 가계부채, 환율 등 주요 거시 정책에 대해 상대적으로 일관된 목소리를 낸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글로벌 관행도 다르지 않다. 제롬 파월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 “금리 인하 속도를 내라”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을 견뎌낸 것도 Fed의 독립적인 지배구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Fed 이사의 임기는 14년으로 비슷한 역할을 하는 금통위원 임기(4년)보다 훨씬 길다.
거시경제 방향을 좌우하는 정책일수록 장기적 시각으로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중장기 대책을 다루는 정부 조직이라면 한은 수준에 버금가는 거버넌스를 보장하는 게 바람직하다. 이런 조직과 제도를 단기간 만들기 어렵다면 주요 거시 정책 논의에 한은을 실질적인 당사자로 참여시키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 가령 가계부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정부 정책을 논의할 땐 한은의 목소리가 실질적으로 반영될 수 있어야 한다.
잘나가는 조직은 다들 엇비슷하지만, 문제가 반복되는 조직에는 대부분 지배구조상 결함이 있다. 다가올 한은 인사가 한은의 전통과 관행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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