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형법 제98조(간첩) 개정안이 통과됐다. 반세기 넘게 ‘적국’에 묶였던 간첩죄 적용 대상을 ‘외국 또는 이에 준하는 단체’로 넓히는 내용이다. 이제 남은 관문은 본회의다. 현행 조항은 북한 외 외국 정보조직을 위한 국가기밀 유출을 간첩죄로 다루기 어렵게 해 ‘보이는 위협을 법이 따라가지 못하는’ 공백을 키웠다. 개정안(제98조의2)은 외국 등을 위한 국가기밀 탐지·수집·누설·전달·중개를 엄정히 규율해 방첩의 최소 억지력을 회복하려는 시도다.경제안보 관점에서도 절실하다. 반도체·인공지능(AI)·통신·배터리 등 전략산업의 핵심 자산은 설계·공정·장비제어·데이터로 확장됐고, 클라우드 협업과 공급망 연결이 깊어질수록 단 한 번의 침해가 연쇄 피해로 번진다. 레이더·RF 탐지, AI 표적 식별·추적, 재밍·스푸핑 방어 같은 기술적 방패가 필요하지만, 위협 행위를 명확히 규율하는 법적 방패가 함께 서야 시장이 커지고 투자도 선순환한다.
무엇보다 ‘적국’ 한정은 글로벌 정보전 현실과 맞지 않는다. 국제 공조와 해외 사업이 일상인 기업 환경에서, 법의 관할과 억지력이 현실을 따라가야 국가 신뢰와 투자 매력도가 지켜진다. 이번 개정은 기업 활동을 옥죄려는 것이 아니라 규범의 공백을 메워 정당한 연구·투자·국제협력이 흔들리지 않도록 하자는 데 의미가 있다. 기준이 분명하면 기업은 보안·인력관리·협력사 통제를 체계화할 수 있고, 정부는 핵심시설·연구현장에 대한 위험 평가 및 대응 훈련을 민관 합동으로 고도화할 수 있다.
이 같은 입법 성과가 여기까지 오기까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헌신한 이들이 있다. 특히 이종석 국가정보원장은 청문회 등에서 “현행법상 적국 외 외국을 위한 간첩행위를 처벌할 법적 근거가 부재해 관련 법령 정비가 시급하다”고 지적하며 입법 과정에서 국정원 의견을 적극 개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취임 이후 국회, 언론, 학계를 폭넓게 설득하고, 실무진과 함께 쟁점과 법리적 난관을 조율한 과정은 이번 개정 논의에 실절적 동력을 제공했다.
앞으로 중요한 것은 변화하는 위협 환경에 대응할 수 있도록 방첩 역량이 인력·기술·절차·통제장치를 갖춘 제도적 시스템으로 정착하는 일이다. 논의의 핵심은 형벌 강화가 아니라, 경제안보를 예측 가능한 제도 인프라로 끌어올리는 데 있다. 국회가 해야 할 일은 본회의에서 개정안을 책임 있게 매듭짓고, 정부가 해야 할 일은 통과 이후를 시장과 산업이 체감하는 실행 로드맵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핵심기술·데이터·공급망·핵심시설 보호를 하나의 정책 프레임으로 묶고, 위험을 조기에 탐지·차단할 수 있는 민관 협업 체계를 상시화해야 한다. 기업이 자율적으로 보안 투자와 내부 통제를 고도화하도록 표준·인증·보험·조달 등 시장 메커니즘을 정교하게 작동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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