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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한 마디에 몸을 싣고, 취향 하나에 다시 가방을 싸다

입력 2026-03-05 14:37   수정 2026-03-05 14:38



여행이 번거로운 일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팬데믹 기간이 지나고 해외여행이 폭발했던 시기에 나는 아직 감을 되찾지 못하고 있었다. 드문드문 떠났고, 예전처럼 일 년쯤 지나면 밀려오던 갈증도 좀처럼 생기지 않았다.

“대만이라고? 타이베이?” 왕가위 영화에 뒤늦게 도착한 가족 구성원이 같이 가보자고 했다. 그렇게 따라나선 게 2년 전. 그 여행은 장국영과 양조위가 출연한 <해피 투게더>에서 시작했다. “둘이 홍콩을 떠나 대만까지 갔다더라”는 한마디에서.

한 도시에서 일주일을 머무는 일은, ‘찍먹’과 ‘효율’을 따지는 요즘 속도에선 기이한 사치다. 다른 건 몰라도 나는 로컬 여행 사이트에서 본 아리산은 꼭 가보겠다고 했다. 고산 지대로 기어오르는 협궤열차는 얼마나 낭만적인가. 열차를 타기 위해 태백산 고갯길 저리 가게 고속버스는 굽이굽이 올라가기도 하더라. 중간중간 차밭이고 커피밭이라는데, 나는 동행자 눈치를 실컷 봤다.

협궤열차는 사진처럼 고즈넉하지 않았는데, 당연하게도 ‘세계 3대 고산 협궤열차’란 카피에 이끌려온 사람들이 잔뜩이었다. 그러나 하늘을 찌르는 거대한 편백 삼림 속에서 2시간 트래킹은 다시 내 안의 여행 세포를 깨우기에 충분했다.

물론, 나이가 들수록 고생길은 더 고역이다. 길치인 나는 이 여행에서도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택시를 타지 않은 나를 “저주하며”, 숙소행 지하철을 갈아타러 지하도를 헤맸다. 가족이 매일 감탄하며 사 먹은 대만 편의점의 향내 강한 ‘장조림 계란(차예단)’ 냄새를 맡는 것도 고역이었고.



팍팍해도, 가보면 하나는 남는다

겨울이 물러가는 중이다. 비타민D가 만들어지길 바라며 동네 산책을 다닌다. 코스 중 하나가 근처 도서관인데 사서도 계절의 눈치를 챘는지 주목 도서에 여행서를 올려두었다. 『취향 가득, 타이베이』라니. 표지의 우거진 나무와 낡은 듯한 건물, 자전거가 ‘적당히 느림’ 그 자체다. 여행 다녀왔던 대만의 거리가 떠올라서 책을 빌려왔다. 큰 지도 대신 작은 취향을 모아둔 책이다. 거창한 명소보다는 마음이 먼저 가벼워지는 자리들.

이미 한 번 가본 도시라, 큰 기대는 없었다. 페이지를 넘기는데 둥먼(東門)역에 딱 눈이 간다. ‘엄마를 모시고 갈 때 숙소를 여기로 잡자.’ 그곳은 도심 공항과도 가깝고 나무가 우거진 공원에서 아침마다 나는 조깅을 할 테다. (사실 산책이라도 매일 가면 다행이다.) 바로 옆에 꽃시장과 옥시장도 있다고 하니, 싼값에 옥반지 하나 득템할지도 모른다. 물론, 어디서 또 편의점 계란 같은 장면이 튀어나올지도 모르지만.

저자는 이렇게 시작한다.

<i>“타이베이에 가고 싶다고 처음 느낀 건 대만 영화 두 편 때문이었다. <청설>에서 비 내리는 가로수길의 평범한 풍경, <별이 빛나는 밤>에서 깊은 밤 타이베이역 대합실의 주인공을 비추던 장면은 묘하게 마음을 흔들었다.”</i>
? 『취향 가득, 타이베이』에서 프롤로그 첫머리

이 책의 지은이도 영화 때문에 타이베이에 갔구나? 본토에서 떠나온 사람들이 많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어쩐지 이 도시의 정서가 조금은 이해되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이 역시 내 피상적인 어긋난 추측일지 모른다. 그러고 보니 <해피 투게더> 결말은 대만이 도착지가 아니라 경유지였을 뿐이었다. 그 정도면 떠날 이유로 충분하다.

정소연 에프엔미디어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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