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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보면 코스피 5000 이후가 보인다

입력 2026-03-04 06:00  

[한경ESG] 커버 스토리 - 거침없는 코스피 밸류업 이끈 주역은


“일본에서의 교훈은 지배구조 개혁의 길이 길고 구불구불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에 따른 보상은 크다.”

지난해 7월, 영국의 AVI 글로벌 트러스트(AVI Global Trust)를 이끄는 조 바우언프로인트(Joe Bauernfreund) 펀드매니저가 한국 시장에 남긴 말이다. 그는 8년 전 일본 시장에 투자를 확대하기 시작해 ‘AVI 재팬 오퍼튜니티 트러스트(AVI Japan Opportunity Trust)’를 설립했고, 현재 포트폴리오의 18%를 일본에 배분하며 큰 성과를 거뒀다. 그런 그가 한국 주식의 70%는 장부가치 이하에서 거래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 포트폴리오의 3%를 한국에 신규 배분하기 시작했다.

“한국이 ‘넥스트 재팬(next Japan)’이 될 수 있다”는 그의 발언은 글로벌 투자업계가 한국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정책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일본이 먼저 보여준 밸류업의 경로

일본의 사례를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23년 도쿄증권거래소(TSE)가 주가순자산비율(PBR) 1배 미만 기업에 PBR 개선 계획 제출을 요구한 이후, 프라임 상장사의 91%, 스탠더드 상장사의 50%가 관련 내용을 공시했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공시에 그치지 않았다.

2025년 상반기에만 10대 행동주의 펀드가 6조1000억 엔(약 57조 원)을 일본 주식에 투입했으며, 자사주 매입 공시도 14조6000억 엔으로 전년 대비 8% 증가했다. 일본 기업들의 자기자본이익률(ROE)은 10.2%까지 상승하며 ‘밸류업’이 실제 행동으로 이어졌음을 증명했다.

핵심은 10년에 걸친 점진적 개혁이었다. 2014년 스튜어드십 코드, 2015년 지배구조 코드, 2023년 PBR 개혁까지 단계적으로 제도적 기반을 다졌다. 여기에 행동주의 펀드의 활동이 촉매제로 작용했다. 블룸버그 집계에 따르면 2024년 일본에서 진행된 주주행동주의 캠페인은 152건으로, 연간 행동주의 캠페인 건수 기준 3위 시장인 영국의 3배에 달한다. 오아시스 매니지먼트(Oasis Management) 같은 펀드들이 지배구조 개선을 통한 가치 발굴에 집중하며 일본은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행동주의 시장으로 성장했다.



한국, 압축적 개혁과 코스피 5000의 의미

그렇다면 한국은 어떨까. 지난해까지 회의론이 짙었던 것이 사실이다. 정권 교체에 따른 정책 불연속성 우려, 재벌 중심 지배구조의 근본적 한계 등이 장벽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2025년은 분수령이 됐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상법 개정이 현실화되면서 구조적 변화의 동력이 마련된 것이다.

2025년 7월 이사의 충실의무가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됐고, 9월에는 자산 2조 원 이상 상장사에 대한 집중투표제가 의무화됐다. 이는 일본의 지배구조 코드가 10년에 걸쳐 제도적으로 정착시킨 내용을 한국이 법제화를 통해 압축적으로 추진하고 있다는 의미다. CNBC에 출연한 플래쉬라이트캐피탈파트너스의 이상현 대표는 “한국은 일본보다 직접적인 접근법을 택했다. 법률 제정을 통한 개혁”이라고 평가했다.

행동주의 펀드의 활동도 급증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2018년 16건에 불과했던 공개 캠페인이 2024년 78건으로 약 5배 늘었다. 얼라인파트너스 같은 국내 행동주의 펀드가 성장하는 한편, 영국의 팰리저캐피털 같은 글로벌 펀드도 한국 시장에 진입하고 있다. 특히 2025년 스튜어드십 코드 개정으로 239개 기관이 중대재해 발생 기업 등에 대해 경영개선 요구나 투자 철회를 할 수 있는 명시적 권한을 갖게 되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ESG 투자자의 관점에서 이 변화는 세 가지 함의를 갖는다. 첫째, 지배구조(G) 개선이 더 이상 선언적 수준에 머물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다. 상법 개정과 행동주의 확산으로 소액주주 권익 보호가 법적 실효성을 갖추기 시작했다. 이는 지난 1년간 밸류업이 ‘배당 확대’에 치우쳤다는 비판에 대한 구조적 해법이 될 수 있다.

둘째, 자기자본비용(COE)을 넘어서는 ROE를 달성해야 한다는 본질적 과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러나 177개 밸류업 공시 기업 중 이러한 구체적 목표와 이행 점검 체계를 보여주는 곳은 아직 소수에 그친다. 셋째, 글로벌 자금의 한국 유입 가능성이다. 앞서 언급한 AVI 글로벌뿐 아니라 글로벌 자산운용사 캐피털그룹(Capital Group)은 한국이 일본의 발자취를 따라 주주가치를 발굴할 수 있을지를 주요 리서치 주제로 다루고 있으며, 맥킨지(McKinsey) 역시 한국이 일본과 동일한 구조적 도전에 직면했지만 지배구조 개혁과 주주환원 강화로 대응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2025년 11월 현재 밸류업 ETF의 외국인 거래대금 비중이 출시 초기 대비 3배 이상 증가한 것은 이러한 글로벌 관심이 이미 자금으로 전환되고 있다는 신호다.

물론 리스크도 있다. 177개 사가 밸류업 공시에 참여했으나 전체 상장사 대비로는 여전히 소수에 그쳐 중소형주 확산이 과제이며, 상법 개정에 대해 한국상공회의소 조사에서 상장사 76.7%가 기업 성장을 저해할 수 있다고 우려를 표명한 점도 간과할 수 없다. 한국의 재벌 구조는 일본의 분산된 소유구조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

코리아 프리미엄의 조건

그럼에도 방향성은 분명하다. 일본이 10년에 걸쳐 이룬 밸류업을 한국은 법제화와 시장의 압력을 통해 보다 압축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코스피 5000시대를 열며 밸류업 지수가 134.9%의 상승률로 시장을 견인하고 있는 지금, 투자자에게 요구되는 것은 과도기에서 실질적 변화를 만들어내는 기업과 형식적 공시에 그치는 기업을 구분하는 안목이다. COE를 넘어서는 ROE, 구체적 이행 계획, ESG경영의 내실화를 갖춘 기업이 결국 코리아 프리미엄의 주인공이 될 것이다. 글로벌 펀드매니저들이 한국을 ‘넥스트 재팬’으로 주목하는 지금, ESG 투자자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김준섭 KB증권 ESG리서치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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