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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각한 상황"…독기 품은 삼성, 판 뒤집은 '파격 결단' [황정수의 반도체 이슈 짚어보기]

입력 2026-02-23 08:05   수정 2026-02-23 09:28


"H가 우리를 경쟁사로 생각하지 않는다. 삼성은 위기감이 없고 혁신을 잃었다고 한다." (2024년 5월 DS부문 전략 회의, 전영현 삼성전자 부회장)

HBM 품질(퀄)테스트 통과 지연과 노조 파업으로 삼성전자 반도체 위기론이 최고조에 달했던 2024년 5월. 신임 반도체(DS)부문장으로 전격 투입된 전 부회장은 사업부별 긴급 회의를 소집했다.
초기 개발 단계 1c D램 투입 '승부수'
DS부문 현황 파악을 마친 전 부회장은 "생각했던 것보다 심각하다. 고대역폭메모리(HBM)는 빙산의 일각"이라고 일갈했다. 그리고 현재 전 부회장을 상징하는 슬로건으로 자리 잡은 '기본'과 '근원 기술력 회복'을 주문했다. HBM 시장에서 잃은 신뢰를 되찾기 위해선 삼성의 간판 제품이자 HBM의 기본 재료(코어 다이)로 쓰이는 D램부터 살려야 한다고 판단했다.

오래지 않아 전 부회장은 첫 번째 선택의 갈림길에 섰다. 개발 중인 HBM4(6세대 HBM)의 코어 다이로 어떤 D램을 쓸 것인지에 관한 결정이다. 보통의 경영자였다면 당시 주력 제품인 10나노 4세대(1a) 또는 10나노 5세대(1b) D램을 쓰는 전략을 택했겠지만, 전 부회장은 다른 결정을 내렸다. 초기 개발 단계이던 10나노 6세대(1c) D램을 투입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삼성전자 관계자가 한 말이다. "내부에서 1c D램을 HBM4에 적용하는 것에 대한 비관론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 부회장이 '경쟁사와 같은 제품을 써서 어떻게 이기겠느냐'고 되물었죠. 그때부터 1c D램 개발이 본격화했습니다."


HBM 역전의 필살기로 1c D램을 선택한 전 부회장은 두 달 뒤 조직개편을 단행한다. HBM개발팀을 정식 조직화한 것. 사실 삼성전자 DS부문엔 전 부회장이 부문장으로 취임하기 전부터 엔비디아 납품을 지상 과제로 삼은 HBM3E TF팀과 차세대인 HBM4 개발팀을 별도로 뒀다.

전 부회장은 HBM개발팀을 신설하면서 조직과 인력을 강화했다. HBM 설계·공정·패키징 전문가를 한데 모았다. 그리고 D램 설계 전문가로 꼽히는 손영수 부사장을 팀장으로 선임해 D램 개발을 총괄하는 황상준 D램개발실장(부사장, 현재 D램개발담당)을 보좌하게 했다. 또 HBM4 목표 성능을 '극한 수준'으로 상정하고 전작 대비 2배의 인력을 투입했다. 개발 기간도 2배로 늘렸다.
HBM3E의 교훈...'고성능, 전력 안정성'에 올인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다. 2024년말까지 코어 다이로 쓴 1c D램 성능이 생각보다 올라오지 않은 것. 전 부회장은 1c D램 '재설계'를 주문하고 30명의 에이스 엔지니어를 투입했다. 성과가 나왔다. 약 10개월 만에 성능과 수율이 올라온 것. 지난해 10월 30일 삼성전자는 당시 평가액으로 총 5억원이 넘는 자사주를 '개발 과제 목표 달성 인센티브' 명목으로 30명에게 지급했다.

삼성전자는 전 세대(HBM3E)에서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재설계 등을 통해 HBM의 '전력 소모를 줄이고 제품 성능을 개선하는 데' 올인했다. 업계에선 대표적인 기술로 'TSV(칩 간 수천~수만 개 구멍을 뚫고 전극을 연결하는 수직관통전극 기술) 데이터 송수신 저전압 설계' 적용과 '전력 분배 네트워크(PDN) 최적화'를 꼽는다.

삼성전자는 HBM4의 가장 밑단인 '베이스 다이'에 파운드리 공정을 활용한다는 점을 이용해 전력 안정성을 좌우하는 파워 커패시터를 극대화했다. 로직 공정 기반 MIM(metal insulator metal) 커패시터를 새롭게 적용한 점도 삼성전자가 HBM4에 적용한 주요 개선 사항으로 꼽힌다. MIM 캐패시터는 '금속?절연막?금속' 구조의 커패시터로, 면적 대비 정전용량(전하를 저장하는 능력)이 높아 전압·온도 변화에도 성능이 안정적인 전력 안정화 소자다.

PDN은 HBM이 고속 동작 상황에서도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기술이다. 설계 최적화를 통해 기존 세대 대비 성능을 극대화했다. PDN 성능 개선을 위해 삼성전자는 'power TSV' 배치를 최적화한 것으로 알려졌다.전 세대 대비 에너지 효율을 약 40% 개선했으며, 열 저항 특성은 약 10%, 방열 특성은 약 30% 향상시켰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일찌감치 HBM 베이스다이에 최첨단 공정인 4㎚ 파운드리를 적용하기로 한 것도 이 같은 전력 안정성과 고성능 설계를 뒷받침하기 위한 목적이었다"고 설명했다.

동시에 대형 고객사 엔비디아와의 소통도 강화했다. 황상준, 손영수 부사장 등 개발 전문가뿐만 아니라 이창수 메모리사업부 전략마케팅실 부사장, 윤하룡 DS부문 미국법인(DSA) 부사장도 고객사와 수시로 회의하고 요구 조건을 개발팀에 전달하며 가교 역할을 했다.
'신의 한 수' 된 MIM 커패시터, PDN 적용
시장은 삼성전자 편이었다. 엔비디아는 전통적인 경쟁 관계에 있는 AMD와 구글 등 빅테크의 맞춤형 AI 가속기를 설계하는 브로드컴, 마벨 등을 압도할 수 있는 AI 가속기를 원했다.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최고의 성능과 전력 안정성을 갖춘 HBM을 요구했다. HBM4의 동작 속도를 JEDEC 기준(초당 8Gb)을 뛰어넘는 10~11Gb 이상으로 원한 게 대표적이다.

1c, 4nm 등 당시 HBM에서 쓸 수 있는 최신 공정을 쓴 삼성전자는 11.7Gb/s를 안정적으로 달성했다. 최대 속도는 초당 13Gb까지 나왔다.

모험보다 안정을 택한 경쟁사는 HBM3E에서 검증된 1b D램에 TSMC의 12㎚ 공정을 써 HBM4를 개발했다. 삼성전자가 연이어 엔비디아 퀄에서 떨어지는 상황에서 굳이 무리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삼성전자의 기술력이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올라오고, 엔비디아가 요구 성능을 계속 올리면서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경쟁사들의 제품 최적화 과정은 이전 세대와 달리 길어지고 있다.
'최대 수익' 전략에 따라 HBM4 공급량 늘릴 수도
현재까지 결과만 보면 HBM4에선 삼성전자가 치고 나가는 모습이다. 지난 12일 업계 최초로 엔비디아의 베라 루빈용 HBM4를 패키징을 담당하는 TSMC에 보낸 게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엔비디아는 HBM4의 등급을 '10Gb대'와 '11Gb 이상' 2개로 나눠 베라 루빈 모델별로 차등 적용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삼성전자는 HBM4가 회사의 '최대 수익'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전제로, HBM4를 기존 계획 대비 더 적극적으로 생산해 고객사에 공급하는 전략을 세웠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현재로선 엔비디아의 HBM4 제1공급사는 SK하이닉스가 될 가능성이 크지만 삼성전자가 HBM4용을 포함한 1c D램 증설에 적극적인 게 변수"라며 "엔비디아의 HBM4 등급 전략과 HBM 공급사의 제품 최적화 성공 여부에 따라 최종 공급 물량이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HBM 열전 <5회>에서 계속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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