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2월 23일 14:10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전문경영인 체제를 표방해 온 한미약품그룹에서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이 대표이사를 배제하고 주요 의사결정에 직접 관여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지배구조를 둘러싼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박재현 한미약품 대표는 지난 1년간 원료 조달, 성추행 임원 처분 등 복수의 경영 사안에 신 회장이 과도하게 개입했다며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한미그룹 내부에서도 신 회장의 경영 개입에 대해 비판 여론이 확산하는 흐름이다.
한미 임원들 "부당한 경영 간섭 중단하라"
23일 투자은행(IB) 및 제약업계에 따르면 신 회장은 A 약품의 원료 공급 구조 재편을 추진하고 있다. A 약품은 한미약품의 핵심 품목으로 20년 가까이 복수의 국내 제조처를 통해 공급 안정성과 품질을 관리해왔다. 하지만 신 회장이 지난해 6월부터 원가 절감을 이유로 기존 공급처를 배제하고 중국산 원료 도입을 지시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제조·구매 의사결정에서 박 대표가 품질을 이유로 반대 의사를 밝혔음에도 신 회장이 추진을 강행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박 대표 측은 “제약은 가격 외에도 장기간 검증된 원료 안정성과 유전독성 불순물 관리 등 엄격한 기준이 전제돼야 한다”며 원료 변경에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해당 원료는 국내 유통 이력이 없고 추가 검증이 필요한 상황으로, 시험 생산과 허가 변경 검토가 병행되면서 오히려 비용 구조에 부담이 발생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한미약품 관계자는 “의약품 원료 변경은 단순한 가격 문제가 아니라 장기간의 품질 검증과 규제 리스크를 함께 고려해야 하는 전문 영역”이라며 “관련 경험이 없는 인사가 비용 논리만으로 방향을 정하는 것은 우려스럽다는 목소리가 내부에 적지 않다”고 말했다. 반면 신 회장 측에서는 해당 원료가 타사 대비 높은 가격에 구매된 것으로 감사 과정에서 확인돼, 정당한 조치를 취한 것이라는 취지의 주장을 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사내 성추행 임원 비위 의혹도 파장을 키우고 있다. 외부 공익 신고 플랫폼을 통해 접수된 제보를 계기로 회사 조사가 진행됐으며, 박 대표가 징계 절차를 추진했으나 신 회장이 이에 제동을 걸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신 회장 측은 관련 의혹에 대해 "사실관계가 잘못된 부분이 많다"며 "곧 기자회견을 열고 설명할 것"이라는 입장을 전했다.

한미그룹 임직원들은 신 회장이 오너처럼 독단적으로 경영에 관여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날 본사 로비에서는 한미약품 본부장 및 임원들을 중심으로 신 회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피켓 시위가 벌어졌고, 성명서를 통해 피해자와 구성원에 대한 공식 사과와 경영 간섭 중단을 요구했다. 아울러 이사회 차원의 견제 장치 마련도 촉구했다.
무색해진 머크식 경영...4자 연합 '흔들'
신 회장은 한미사이언스 지분 23.38%를 보유한 단일 최대주주다. 다만 한미그룹 모녀 측(송영숙 회장·임주현 부회장)과 사모펀드(PEF) 라데팡스파트너스 등이 결집한 연합 지분이 30%를 웃도는 구조여서 신 회장이 절대적 지배력을 행사하는 상황은 아니다. 한미약품은 한미사이언스가 지분 41%를 갖고 있으며, 신 회장 측은 약 9%를 별도로 보유하고 있다. 그는 한미사이언스와 한미약품에서 모두 기타 비상무이사로, 경영을 직접 책임지는 직함은 아니다. 그가 회장을 맡고있는 한양정밀은 한미그룹 내 원료 공급 계열사다.신 회장 측은 4자 연합 대표로서 전문경영인 체제를 지원하고 회사의 장기적 가치 제고를 위해 의견을 개진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그는 고(故) 임성기 창업주의 고향·고교 후배로 30여년간 오너 일가와 인연을 이어온 인물이다. 2020년 임 회장 별세 이후 한미그룹이 상속세 부담과 경영권 승계 문제에 직면하자 캐스팅보트로 부상했다. 이후 한미약품 그룹과 OCI그룹 통합 추진 과정에서 모녀 측과 형제 측(임종윤·종훈 이사) 간 갈등이 격화됐고, 당초 형제 편에 섰던 신 회장은 돌연 모녀 측으로 입장을 바꾸며 판세를 흔들었다.
신 회장은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명분 아래 모녀 및 라데팡스파트너스와 함께 이른바 ‘4자 연합’을 구성했고, 한미사이언스 지분을 20% 안팎까지 확대하며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후 장남 임종윤 사내이사가 보유 지분을 연합 측에 매각하고, 차남 임종훈 대표가 사임하면서 한미그룹의 경영권 분쟁은 일단락됐다. 이 과정에서 한미그룹이 내세운 해법이 이른바 독일 제약사 머크식 전문경영인 체제였다. 창업주 일가가 대주주로서 장기 비전과 소유권은 유지하되, 일상적인 경영 집행과 핵심 의사결정은 전문경영인에게 맡기는 구조를 뜻한다.
전문경영인 체제 도입 이후 지난 1년간 한미약품의 주가는 약 170%, 한미사이언스는 약 50% 뛰었다. 지배구조 불확실성이 해소됐다는 기대와 오는 10월 허가가 기대되는 비만 치료제 등 주요 파이프라인에 대한 기대감이 주가에 반영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러나 신 회장을 둘러싼 논란이 재점화되면서 시장에서는 다시 지배구조 리스크가 부각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 IB 업계 관계자는 "신 회장을 둘러싼 지배구조 논란이 어떻게 전개되느냐에 따라 4자 연합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고 말했다.
최다은 기자 max@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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