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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금 뿌려도 소비 부진 지속…돈 안쓰는 이유 뭘까

입력 2026-02-23 16:57   수정 2026-02-24 00:11

“먹거리, 옷, 화장품 다 줄였다.” 소비 부진이 지속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한 최근 기사 제목이다. 지난해 승용차 판매를 제외한 소매 판매가 전년보다 0.7% 줄어 4년 연속 감소했다고 한다. 승용차를 포함해도 소비 증가 폭은 0.5%에 그친다. 작년 3분기 소비 쿠폰 효과가 나타나기도 했지만, 이내 사그라졌다. 전반적인 경기 침체로 소비가 부진한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공짜 돈’까지 나눠줬는데도 소비가 늘지 않은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 돈이 있으면 쓴다
상식적으로 소득이 증가하면 소비도 늘어나는 것이 자연스럽다. 소득과 소비의 당연해 보이는 관계를 이론화한 것이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절대소득가설이다. 케인스는 가처분소득이 소비를 결정한다고 봤다. 쓸 수 있는 돈이 많아지면 돈을 많이 쓴다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어 보이는 직관적인 가설이다.

절대소득가설은 정부의 경기 부양책을 지지한다. 소득과 소비가 정비례한다면 경기 부양책, 그중에서도 소비 쿠폰처럼 가계 가처분소득을 직접적으로 늘려주는 정책은 소비 증가로 즉각 연결될 것이다.

절대소득가설은 케인스가 활약한 대공황 시기의 산물이다. 케인스가 보기에 가계 소비가 위축된 이유는 너무나도 분명했다. 대량 실업으로 소득이 줄었으니 쓰고 싶어도 쓸 돈이 없었던 것이다. 이런 시대적 배경에서 케인스는 절대소득가설을 근거로 정부가 돈을 쓰고 일자리를 만들어 가계 소득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자 지극히 당연해 보이는, 그래서 완벽한 것 같았던 절대소득가설의 허점이 드러났다. 우선 소득 변동 폭에 비해 소비 변동 폭이 크지 않았다. 소득이 늘거나 줄어도 소비는 비교적 일정한 수준에서 유지되는 ‘소비 평활화’가 관찰됐다. 또 소득 수준이 같아도 개인마다 소비 수준에 꽤 큰 차이가 나타났다.
◇ 꾸준히 벌어야 쓴다
이런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여러 경제학자가 다양한 가설을 제기했다. 그중 한 사람이 밀턴 프리드먼이다. 그가 보기에 ‘돈이 생기면 돈을 쓴다’는 절대소득가설의 가정은 너무 단순했다. 프리드먼은 소비자가 지금 당장의 소득 수준만이 아니라 앞으로 벌어들일 것으로 예상되는 소득까지 감안해 현재의 소비 규모를 결정한다고 봤다.

그러면서 소득을 항상소득과 임시소득으로 구분했다. 항상소득은 장기간 지속적이고 정기적으로 발생하며 예측 가능한 소득이고, 임시소득은 일시적 성격의 예측 불가능한 소득이다. 매달 받는 월급이 항상소득이라면 연말에 받는 성과급은 임시소득에 가깝다.

프리드먼은 소비 수준을 결정하는 것은 임시소득이 아니라 항상소득이라고 봤다. 이 같은 프리드먼의 이론을 항상소득가설이라고 한다. 이에 따르면 소비 쿠폰 같은 정책은 소비 진작 효과가 없다. 합리적 소비자는 소비 쿠폰이 일회성이라는 점을 감안해서 소비 규모를 일정 수준으로 제한할 것이다. 프리드먼의 이론 체계에서 소비가 증가하려면 일자리가 많아지고, 월급이 오르고, 장사가 잘돼야 한다. 또 일회성 지원보다는 영구적 세율 인하가 효과적이다. 세율을 낮추면 항상소득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 젊을 땐 덜 쓴다
소비 쿠폰 같은 정책의 효과를 제한하는 중요한 요인이 한 가지 더 있다. 급속한 고령화다. 프랑코 모딜리아니는 ‘나이에 따른 소득의 변화’가 소비에 영향을 미친다고 봤다. 그는 사람의 일생을 놓고 봤을 때 소비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평생 해야 하는 반면, 소득은 청장년기에만 얻을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따라서 현재 소득 수준이 높다고 해서 그에 비례해 소비 수준을 높일 수는 없다. 소득이 사라질 노후를 미리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현재 소득뿐 아니라 평생 소득까지 감안해 소비 규모를 결정한다는 모딜리아니의 주장을 생애주기가설이라고 한다. 오늘날 시각에서 보면 생애주기가설은 그냥 뻔한 얘기 같다. 하지만 모딜리아니가 이 주장을 처음 제기한 1950년대 중반에는 획기적인 이론이었다. 생애주기가설에 따르면 한국 같은 초고령사회에서는 노후에 대한 불안이 소비를 제약한다.

극심한 경기 침체기엔 소비 쿠폰 같은 비상약이 필요하다. 그러나 고용 불안과 노후 불안을 해소하지 못하면 일회성 정책은 언 발에 오줌 누기에 그친다는 것이 소비 이론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이다.

유승호 경제교육연구소 기자 ush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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