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대미 투자는 선택이 아니라 의무를 이행하는 것입니다.”지난달 28일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이건희 컬렉션’ 갈라 행사에 참석한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은 단상에 올라 이같이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관세 인하를 대가로 투자를 약속했으니 의무라고 표현했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외국 기업 관계자를 앞에 두고 투자를 ‘독촉’하는 것은 묘한 위화감을 불러일으킨다. 지금까지 세계 각국은 투자를 유치하려고 노력했지, 독촉한 적은 별로 없다. 투자란 기본적으로 자발적인 선택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는 미국에 투자를 많이 하다 보니 중간재 수출이 늘어난 측면이 있지만 트럼프 정부는 아무리 설명해도 ‘우리가 알 바 아니다’는 태도를 유지했다. 지난달에도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우리 정부 고위 관계자에게 쪽지를 꺼내 무역적자 수치를 보여줬다. 다시 한번 “중간재가…”라며 해명을 시도했지만 그리어 대표는 “(대미투자특별법 통과 등이 해결되지 않으면) 감정 없이 관세를 올릴 수 있다”고만 답했다.
미국이 관세 협상을 통해 원하는 것은 결국 대미 투자다. 정부 측 자금이 들어가는 부분이 있더라도 궁극적으로 일선 기업이 나가서 적절한 사업 프로젝트를 만들어가야 하는 일이다. 정부가 100% 돈을 댄다고 가정해도 프로젝트가 실패하면 기업은 타격을 입는다. 격변하는 시기일수록 기회비용은 더 크다. 한·미 동맹의 미래는 양측 모두에 윈윈이 되는 프로젝트를 얼마나 잘 찾느냐에 달려 있다.
기업이 우려하는 것은 ‘떠밀린’ 투자다. 투자를 통해 성장할 수 있다면 왜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트럼프 정부는 민간의 투자를 기대하고 요구하면서도 이들이 마음 편히 투자하지 못하게 하는 장치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기업들은 투자했다가 지분을 달라고 하지 않을지, 통행세를 달라고 하지 않을지 우려한다. 조지아주에서 벌어진 한국인 구금사태의 기억도 선명하다. 상황에 따라 경영 효율화를 할 수 있을지도 자신하기 어렵다. 작년 말 미국 국방수권법(NDAA)은 조선소 고용과 관련한 보호 조항을 한층 강화했다. 한국 기업이 정부에 종속된 존재인 듯 여기는 것도 마음이 편치 않다.
미국은 세계 1등이면서도 더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이 큰 나라다. 상대를 후려쳐야만 잇속을 챙길 수 있다는 트럼프 정부의 접근법이 기업들을 망설이게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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