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색투명한 보석의 광채가 ‘정답’처럼 여겨지던 시대가 있었다. 극히 소량만 발견되어 왕족과 귀족의 전유물이었던 다이아몬드. 1860년대 남아프리카 광산이 발견되면서 비로소 공급량이 늘었다. 여기에 정교하게 설계된 마케팅 전략이 더해지면서, 다이아몬드는 영원한 사랑의 상징으로 자리잡아 독점적인 지위를 누렸다. 그러나 최근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랩 그로운 다이아몬드의 대중화와 함께 희소성의 정의가 흔들리고, 보석의 제왕이라는 명성에도 균열을 생겼다. 이러한 변화 속에 보석 시장은 변곡점 위에 서 있다. 봄이 오는 모습과 닮았다. 차가운 냉기가 물러나고, 공기의 결이 달라지며, 대지 아래 숨죽이고 있던 색이 천천히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다. 겨울이 절제된 무채의 계절이었다면, 봄은 다채로운 색이 되살아나는 시간이다. 최근 몇 년 새 하이엔드 주얼리 시장에서는 컬러 젬스톤이 다시 중심으로 돌아왔다. 유색 보석이 주목받는 이유는 취향이 다층화된 시대에 소비자는 더 이상 똑같은 선택을 원하지 않는 풍조와 무관치 않다. 또한 희소성이 높아 투자자와 컬렉터에게도 매력적이다.

루비, 사파이어, 에메랄드라는 전통적인 '빅3'의 아성을 넘어, 이제 전면에 등장한 것은 파라이바 투어멀린의 네온 블루, 모거나이트의 오렌지 핑크, 스피넬의 강렬한 레드와 핑크, 쿤자이트의 파스텔 핑크다. 올봄, 주얼리의 세계는 다시 색으로 피어난다.
산출량이 극히 제한적이다. 선명한 색과 높은 투명도를 동시에 갖춘 원석은 더욱 희소하다. 이 보석이 하이 주얼리에서 각광받는 이유는 단순히 희소한 색감 때문만은 아니다. 바다의 수평선과 열대의 빛을 동시에 품은 듯한 청명함 그리고 봄 하늘이 가장 맑은 순간의 컬러를 영구히 봉인하고 있어서다.

모거나이트라는 이름은 미국의 금융가이자 보석 컬렉터였던 제이피 모건(J. P. Morgan)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1910년대 초 연한 핑크색 베릴이 새롭게 주목받자, 모건의 후원과 공로를 기려 명명되었다. 미국 보석 문화와 컬렉팅 전통을 상징하는 이름이기도 하다. 투명도가 높고 비교적 큰 원석으로 산출되는 경우가 많아 볼륨감 있는 하이 주얼리 디자인에 적합하다. 은은하지만 분명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이유다. 모거나이트의 부드러운 색조와 로즈 골드가 만났을 때 색의 온기가 배가된다. 모거나이트의 부드럽게 번지는 오렌지 톤은 봄날 오후의 공기처럼 따뜻하고 여린 감성을 담고 있다.
스피넬은 오랫동안 루비의 그림자에 가려져 있던 ‘비운의 보석’이다. 과거에는 보석을 구분하는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루비와 동일한 보석으로 취급되었다. 실제로 영국 왕실 보석 중 ‘블랙 프린스 루비’로 알려진 보석이 실은 대형 레드 스피넬로 나중에 밝혀진 일까지 있다. 이름은 루비였지만, 본질은 스피넬이었다는 사실은 미운 오리 새끼의 운명을 닮은 이 보석의 색이 얼마나 아름답고 순수한지를 말해준다.스피넬은 레드를 포함하여 블루, 핑크, 오렌지, 퍼플, 그레이까지 폭넓은 색의 스펙트럼을 지닌다. 핑크 스피넬은 장미색 같은 로지 핑크와 마젠타에 이르기까지 미묘한 톤을 지니며, 부드러움 속에 생기를 머금는다. 최근에는 쨍한 핑크 스피넬이 젊은 컬렉터와 디자이너들 사이에서 특히 주목받고 있다. 강렬함과 우아함을 모두 품는다는 점에서 레드와 핑크 스피넬은 오늘날 컬러 젬 시장에서 가장 역동적인 존재라 할 수 있다.

이 보석이 ‘쿤자이트’라는 이름을 얻게 된 데에는 티파니의 수석 보석학자 조지 프레더릭 쿤츠(George Frederick Kunz)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쿤츠는 20세기 초 미국 캘리포니아 팔라 지역에서 발견된 분홍색 스포듀민을 보석으로서의 가능성을 지닌 광물로 주목한 이였다. 그는 이 광물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세상에 소개했다. 그의 공로를 기려 1902년에 쿤자이트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이후 쿤자이트는 미국 외 아프가니스탄과 브라질 등지에서도 산출되면서 점차 하이 주얼리 시장에서 존재감을 넓혀갔다.
봄이 오는 소리처럼 보석이 다시 저마다의 온도와 서사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컬러 젬스톤의 귀환은 보석의 언어가 다시 힘을 얻는 순간이다. 파라이바 투어멀린의 네온 블루, 모거나이트의 오렌지 핑크, 스피넬의 강렬한 레드와 핑크, 쿤자이트의 파스텔 핑크 등이 하이엔드 주얼리의 정점에 서 있음은 희소성의 재해석이며, 취향의 확장이다.
올 봄 주얼리는 더 이상 하나의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묻는다. 당신은 어떤 색으로 피어나고 싶은가. 다채로운 젬스톤의 색 위에서 숨죽였던 감각이 새싹처럼 고개를 든다. 그 순간 보석은 계절이 된다.
민은미 작가(주얼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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