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6,083.86
(114.22
1.91%)
코스닥
1,165.25
(0.25
0.02%)
버튼
가상화폐 시세 관련기사 보기
정보제공 : 빗썸 닫기

미술관, ‘불후의 성역’ 허물고 ‘소멸의 시학’을 세웠다

입력 2026-02-25 08:48   수정 2026-02-25 08:49



위대한 예술에는 으레 ‘불후(不朽·썩지 아니함)’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창작의 아름다운 순간을 영원히 기억하고 싶었던 인류는 언젠가부터 예술에 부패와 소멸을 허락하지 않기로 했다. 그 영생을 보고 느끼는 공간이 미술관과 박물관이다. 예술성과 역사성을 두루 갖춘 작품을 모은 이곳은 박제된 시간을 파는 장소로 존재의 의미를 찾아왔다.

부패와 소멸이 내쫓긴 불후의 성역을 찾은 관람객들은 종종 이런 물음을 던진다. ‘미술은 왜 영원해야 할까.’ 그도 그럴 것이 사라지고 작별한다는 게 꼭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곰팡이가 피고, 부서지고, 언젠가 흙으로 돌아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순환의 이치다. 김치나 막걸리의 발효처럼 썩는 대신 삭는 개념으로 접근하면 소멸은 또 다른 탄성, 혹은 농익음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이런 물음에 응답하는 전시가 지금 서울에서 열리고 있다. 서울 소격동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소멸의 시학: 삭는 미술에 대하여’다. 미술관이 금기로 여겼던 소멸을 전시장 한복판에 내세웠다. 데이미언 허스트와 서도호의 개인전 등 올해 굵직한 전시를 예고해 눈길을 끈 국내 유일 국립미술관의 색다른 시도라는 점에서 애호가들의 관심을 끈다.

순백의 성역을 뒤덮은 흙더미

국내외 15인(팀)의 회화, 조각, 설치 등 50여 점이 관객과 만난다. 전시를 기획한 이주연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의 말을 빌리면 “언젠가 썩어 갈 운명을 시인하는 작품, 차라리 무엇도 남기지 않기로 마음먹은 작품, 자신의 분해를 공연히 상연하는 작품들”이다.

이은재의 그림 ‘이제 근대 모서리를 닦아라-서문’(2023)부터가 그렇다. 이 작품은 누가 팔아달라고 사정해도 작가가 “팔 수 없다”고 거절하는 그림이다. 나무 패널에 달걀노른자를 재료 삼아 그렸기 때문이다. 언뜻 중세 유럽의 템페라 기법을 부린 듯하지만, 부패를 방지하는 안료를 섞지 않는 반항을 부렸다. 서서히 바래갈 운명이라 오래 두고 볼 그림이 아닌 것이다.



미국과 독일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아사드 라자의 ‘흡수’는 전시의 가장 파격적인 장면 중 하나다. 192㎡(60평)짜리 커다란 방 하나를 흙으로 가득 채웠다. 서울대 토양생지화학 연구실과 함께 닭 뼈, 커피 찌꺼기, 솔잎과 은행 껍질, 택배 상자, 튀김 부스러기 등 서울에서 발생하는 폐기물로 만든 ‘네오소일(neosoil)’이다. 미술관에 흙이 들어왔다는 사실부터가 전시 긴장감을 높인다. 온·습도 유지와 미세먼지, 세균 차단에 적잖을 비용을 들이는 미술관에 있어 온갖 미생물 집합체인 쿰쿰한 흙은 있어선 안 될 대상이기 때문이다.

2년 전 베니스 비엔날레 일본관 작가로 선정됐던 유코 모리의 ‘분해’(2025)는 부패와 소멸이 또 다른 생성의 시발점임을 암시한다. 죽은 사람의 몸이 썩어가는 아홉 단계를 그린 일본 전통 불화 ‘구상도’에서 영감을 받은 이 작품은 익어가는(부패해 가는) 과일에 전극을 꽂아 수분 변화를 빛의 깜박임, 소리의 음정의 높이로 보여준다. 물질에 깃든 에너지를 새롭게 환기하는 셈이다.



“미술관, 불후의 경계 넘어야”

전시는 여느 미술관에서 볼 수 없는 작품을 눈에 담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불후를 유지하려 시간과 돈을 쏟는 매뉴얼이 친환경적 창작을 지향하고,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그린 뮤지엄’ 등 21세기 들어 미술관이 맞닥뜨린 새로운 과제와 상충할 수 있음을 느낄 때 비로소 전시를 제대로 즐길 수 있다.

약간의 이해를 돕자면, 이 학예연구사는 작가그룹 라이스 브루잉 시스터즈 클럽(RBSC)이 2023년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에 선보였던 ‘우무피막’(2023)이 기획 계기가 됐다고 밝힌다. 부산 영도 앞바다에서 채취한 우뭇가사리로 만든 설치 작품인데 지속가능한 재료인데다, 해녀 노동의 산물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또 전시가 종료되면 낙동강 하구로 돌아가 물살이의 먹이가 되는 친환경 개념을 아울렀다. 그런데 정작 미술관에서 반입에 난색을 표하는 ‘문제적 작품’ 취급을 받았다고 했다.

이 학예연구사는 “곰팡이가 자라 미술관 전체를 오염시킬 수 있다는 우려에 반입까지 상당한 논란이 있었다는 것”이라며 “미술관은 지속 가능성을 지향하는데, 막상 자연에서 왔고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진 작품은 들어오기 곤란하다니 모순이었다”고 설명했다.



하드웨어적 측면에서의 질문도 던져볼 수 있다. 전시에 나온 김방주의 ‘벌목과 불’(2026)은 지난해 열린 블록버스터 전시 ‘김창열 회고전’ 당시 가벽, 구조물 등으로 쓰였던 폐목재를 태워 불꽃으로 만드는 일련의 과정이 작품이다. 불후의 명작을 위해 온갖 쓰레기와 탄소를 배출하는 미술관의 자원 낭비라는 숙제를 시각적으로 각인시킨다.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오랫동안 미술관은 위대한 예술 작품이 변치 않고 지속되는 데 관심을 가져왔지만, 앞으로는 그런 경계를 넘어야 할지 모른다”고 했다.

시간과 여유가 허락한다면 전시는 두 번 봐도 좋다. 미술관 정원에 놓인 고사리 작가의 ‘초(草)사람’ 때문이다. 잡초를 베어 눈사람 형태로 뭉쳤다. 3개월여의 전시 동안 햇살과 비, 바람을 맞으며 조금씩 분해돼 삭아갈 예정이다. 전시는 5월 3일까지.

유승목 기자


관련뉴스

    top
    • 마이핀
    • 와우캐시
    • 고객센터
    • 페이스 북
    • 유튜브
    • 카카오페이지

    마이핀

    와우캐시

    와우넷에서 실제 현금과
    동일하게 사용되는 사이버머니
    캐시충전
    서비스 상품
    월정액 서비스
    GOLD 한국경제 TV 실시간 방송
    GOLD PLUS 골드서비스 + VOD 주식강좌
    파트너 방송 파트너방송 + 녹화방송 + 회원전용게시판
    +SMS증권정보 + 골드플러스 서비스

    고객센터

    강연회·행사 더보기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이벤트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공지사항 더보기

    open
    핀(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