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잠했던 기업공개(IPO) 시장에 다시 활기가 돌고 있다. 연초 비수기와 한국거래소의 엄격한 심사 기조를 뚫고 공모 절차를 밟은 기업들이 잇달아 흥행에 성공하면서다. 오는 3월까지 바이오와 의료기기, 로봇 등 다양한 업종의 중소형주가 줄지어 공모에 나서며 투자심리를 자극할 전망이다.

24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이날 일반 청약을 마감한 레이저 장비 전문기업 액스비스와 브랜드 콘텐츠 기업 에스팀 두 곳에 12조원이 넘는 청약증거금이 몰렸다.
회사별로 살펴보면 액스비스가 약 9조원(경쟁률 2711 대 1), 에스팀은 약 3조7500억원(1960 대 1)이다. 전체 공모금액 규모가 액스비스가 265억원, 에스팀이 153억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공모금액의 수백 배에 달하는 자금이 몰렸다.
이 같은 열기는 지난 23일 청약을 마무리한 케이뱅크가 지폈다. ‘IPO 삼수생’이라는 우려 속에서도 케이뱅크는 10조원에 육박하는 증거금을 끌어모았다.
전례 없는 증시 호조세와 맞물려 공모주가 가장 확실한 수익처라는 인식이 시장 저변에 확산한 결과다. 실제로 지난해 10월 이후 신규 상장한 기업 23곳 중 22곳의 주가가 상장 당일 공모가보다 상승했다. 이들의 상장 첫날 평균 주가 상승률은 131.33%에 달했다.
IPO 공모 일정은 3월부터 더 본격화된다. 다음달 5일 카나프테라퓨틱스를 시작으로 최소 7개 이상의 일반 기업이 청약을 받는다. 신약 개발사인 카나프테라퓨틱스(공모가 하단 기준 공모금액 320억원)를 비롯해 아이엠바이오로직스(380억원), 인벤테라(143억원) 등 바이오 기업이 대거 대기 중이다.
의료기기 분야의 메쥬(225억원)와 리센스메디컬(126억원)도 각각 16일, 19일 청약에 나선다. 해외 송금 플랫폼 한패스(187억원)와 재활 로봇 전문 코스모로보틱스(221억원) 등 차별화된 사업 모델을 갖춘 이색 업종 기업들도 가세한다. 스팩(SPAC) 3곳을 포함하면 한 달 사이 10여 곳이 ‘릴레이 상장’에 나선다.
공모 시장에 온기가 돌고 있지만 상장 문턱을 넘은 기업들의 ‘희소성’은 과거 어느 때보다 커졌다. 한국거래소의 상장 심사 기조가 한층 깐깐해지면서 예비심사 단계에서 낙마하거나 발이 묶이는 기업이 속출하고 있어서다.
작년 4분기부터 심사 결과를 받은 기업 31곳 중 13곳(42%)이 자진 철회하거나 미승인 판정을 받았다. 이 밖에 25개 기업이 길게는 7개월 넘게 결과를 기다리는 ‘심사 정체’ 현상을 겪고 있다. 그 결과 올해 공모를 거쳐 상장한 곳은 지난달 말 코스닥시장에 입성한 덕양에너젠 단 한 곳에 불과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공모 절차를 밟는 중소형주들이 유동성을 독식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대형주가 중복 상장 논란과 기업가치 재산정 등으로 숨 고르기에 들어간 사이 공모주 펀드와 개인투자자의 자금이 확실한 상장 후보군인 중소형주로 집중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 증권사 IPO본부 관계자는 “투자처를 찾지 못한 시중 자금이 당분간 시가총액 1000억~3000억원 규모의 중소형 공모주로 몰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시장에서는 기업가치가 조 단위를 넘보는 대형 IPO 기업이 등장해야 IPO 시장으로 뭉칫돈이 쏠릴 것으로 보고 있다. 상반기 예비심사 청구를 저울질 중인 리벨리온과 소노인터내셔널을 비롯해 HD현대로보틱스, 무신사, 구다이글로벌, 업스테이지 등이 유력한 후보로 꼽힌다. IB업계 관계자는 “대어급 후보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해야 자본시장의 선순환 구조가 공고해지고 IPO 시장의 호황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최석철 기자 dolso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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