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D램 기업 CXMT가 내수를 넘어 글로벌 반도체 업계의 판을 흔들고 있다.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한국 기업이 주도해온 고부가 메모리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고, 애플이 아이폰과 아이패드에 CXMT 메모리 탑재를 검토 중이라는 보도까지 나오면서다. 한국이 기술 격차 유지를 위해 차세대 D램·HBM 투자와 산업안보 차원의 대응 전략을 동시에 강화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실패 속에서 생존한 메모리 기업이 중국 최초의 D램 제조사 CXMT다. CXMT의 중국명 '창신메모리' 한자인 '창(?)'은 '길다', '장기적이다'라는 뜻으로 지속적인 투자와 장기 성장을 의미한다. '신(?)'은 '금(金)' 세 개가 겹친 글자로 막대한 자본, 재정적 축적을 상징한다. 회사명은 국가 주도의 장기적인 투자로 메모리 굴기를 실현하겠다는 시 주석의 의지가 담긴 셈이다. CXMT는 이름처럼 2019년 허페이에서 DDR4 양산을 시작하며 "중국은 절대로 D램을 만들 수 없다"는 서방 세계의 고정관념에 깨뜨렸다. CXMT는 지난해 글로벌 D램 시장 점유율 5%를 기록하며 '메모리 3사(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에 이어 업계 4위에 올랐다.


CXMT의 초창기 전략에서 자주 언급되는 대목이 있다. 2009년 파산한 독일 메모리 기업 키몬다의 D램 관련 특허를 대규모로 확보했다는 점이다. CXMT는 설립 초기 키몬다가 보유하던 D램 설계·공정 관련 특허 포트폴리오를 매입하고 엔지니어들을 대거 흡수해 기술 기반과 공정 노하우를 다졌다. 관련 특허는 이후 CXMT가 DDR4 양산 단계로 진입하는 데 기술적 변곡점이 된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CXMT는 공정 고도화 과정에서 한국의 영업 기밀과 인력을 빼가기도 했다. 일부 인력이 국내 기업의 영업비밀을 유출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실형을 선고받았다.
기술적으로 보면 CXMT는 현재 15~17나노미터(㎚·1나노는 10억분의 1m)급 공정에서 DDR5와 LPDDR5X 메모리를 대량 생산하는 단계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험실 수준의 시제품이 아니라 공장에서 일정한 품질로 지속 생산이 가능한 수준에 도달했다는 뜻이다. 15~17nm 공정은 최첨단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메모리 산업에서는 충분히 상용 경쟁이 가능한 공정 구간으로 평가된다. 지난해 하반기 기준으로 CXMT는 초당 8000메가비트(Mbps) 속도의 DDR5, 초당 1만667Mbps 속도의 LPDDR5X 제품 양산에 들어갔다고 전해진다. 이는 최신 서버, AI 가속기, 고성능 모바일 기기에서 요구하는 기본 성능 사양을 충족하는 수준으로 "중국산이라 성능이 낮다"는 인식을 뒤집을 수 있는 지점에 도달했음을 의미한다.
주목할 부분은 수율이다. DDR5 수율이 80% 수준까지 올라왔다는 평가는 투입한 웨이퍼 10장 중 8장 이상이 판매 가능한 제품으로 나온다는 뜻이다. 메모리 공정에서 수율은 곧 원가와 직결된다. 수율이 낮으면 아무리 많이 생산해도 적자를 면하기 어렵지만 80% 수준에 도달하면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고, 장기적인 증설을 검토할 수 있는 단계에 들어선다. CXMT가 단순히 '만들 수 있다'는 수준을 넘어 '지속적으로 팔 수 있는 제품을 만들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이같은 변화는 단기간에는 위협이 크지 않아 보일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중국 내수 시장을 중심으로 영향력이 누적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가볍게 볼 수 없는 신호로 해석된다.

CXMT의 주요 고객사는 레노버, 화웨이, 알리바바 등 중국 주요 정보기술(IT) 기업들이다. 미국의 제재로 인해 중국 기업들은 CXMT의 메모리 채택을 확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심지어 최근 D램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자 애플이 아이폰과 아이패드 등 자사 제품의 부품 가격을 조금이라도 낮추기 위해 그동안 쳐다보지 않았던 CXMT의 메모리 채택을 고려한다는 얘기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해외 IT 온라인 매체인 WCCFTech는 지난 17일 애플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이 내놓는 강경한 가격 협상 전략에 맞서 애플이 중국 업체와 손을 잡는 대응책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현재 메모리 가격을 고려하면 올해 흑자폭을 확대는 물론이고 고객도 더 늘릴 가능성이 높다.
CXMT는 이처럼 시장 상황에 좋을 때 증시에 상장해서 대략 6조원 정도에 자금을 조달한다는 계획이다. 이렇게 조달한 자금은 베이징에 팹 2를 증설하고 2025년 착공에 들어간 상하이 신규 팹 및 패키징 시설에 투입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제재로 네덜란드 ASML이나 미국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의 첨단 장비 도입이 어려워지자 베이징 팹은 중국산 노광·식각·증착 장비를 대거 투입해 실제 양산에 적용하는 '실험장' 역할을 하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비효율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중국 반도체 장비 생태계 전반을 끌어올리는 효과를 노린 포석이다.
CXMT의 장비 발주 재개 조짐에 국내 장비업계도 공급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주성엔지니어링과 넥스틴, 미래산업 등이 CXMT에 장비를 공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성엔지니어링은 반도체 웨이퍼 표면에 얇고 균일한 막을 쌓는 원자층 증착(ALD) 장비를, 넥스틴은 웨이퍼 표면의 미세 결함을 검사하는 장비를, 미래산업은 패키징이 완료된 칩을 검사하는 장비를 공급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CXMT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양분하고 있는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에도 도전했다. 업계에 따르면 CXMT는 올해 D램 생산을 위한 웨이퍼의 20%를 HBM3(4세대 고대역폭메모리) 제조에 투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HBM3 이전 세대까지만 해도 한국 기업과 CXMT의 기술 격차는 4년 정도로 평가됐지만 HBM3부터 3년 이내로 좁혀진 것으로 여겨진다. 상하이에 건설 중인 패키징 시설은 HBM 양산을 염두에 뒀다는 후문이다. CXMT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화웨이 등 중국 내 AI 칩 설계 기업을 대상으로 HBM3 샘플을 공급했다고 밝히며, 2027년까지 HBM3E 양산을 목표로 제시했다. 초기 수율과 신뢰성에서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은 높지만 과거 DDR4가 그랬듯 시도 자체가 위협이 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수익성보다 다음 다운사이클을 겨냥해 HBM·차세대 D램 공정(R&D) 투자를 더 늘려 기술 격차를 유지해야 한다"며 "정부는 CXMT는 이제 단순한 중국 로컬 업체가 아니라 국가 전략으로 키워지는 경쟁자인 만큼 인력 유출 방지와 핵심 공정·장비 기술 보호를 산업안보 차원에서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강경주 기자 quraso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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