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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은 들어오면 안돼요" … 경비원에 제지당했던 28세 최연소 교수

입력 2026-02-26 10:08   수정 2026-02-26 14:42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31)을 설명하는 한 줄은 ‘한국인 최초의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우승자’다. 2015년 세계를 놀라게 한 그는 2023년 연세대 음대 관현악과 최연소 교수로 임용됐다. 현재 그는 무대 위 ‘국가대표’ 연주자이자, 제자들과 함께 과정을 고민하는 ‘젊은 스승’의 길을 걷고 있다. 그런 그가 평소 가장 영감을 받는 공간은 어디일까. 최근 임지영을 만나 그에게 각별한 의미를 지닌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햇살 가득한 남향 방

“원로 교수님들이 오시면, 이 방은 정말 젊은 사람의 방 같다고, 화사해서 좋다고 하세요.”

서울 신촌 연세대 음대 338호. 임지영의 연구실은 깔끔하고 세련된 공간이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화사한 화이트톤의 색감. 조도가 낮고 엄숙할 것 같은 클래식 음악가의 방에 대한 편견을 단번에 깨뜨린다. 감각적인 오브제들은 마치 MZ세대의 세련된 인테리어 쇼룸을 연상케 한다. 디퓨저의 향기부터 디자인 가전까지, 모든 소품에 임지영의 취향이 투영됐다. 클래식 악기를 다루지만 동시대적 감각을 잃지 않는 그의 ‘컬렉션’이다.





임지영은 임용 직후 연구실을 고를 수 있는 선택권이 주어지자 주저 없이 이 방을 택했다. “날씨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이라, 햇볕이 쨍하게 비춰주는 남향을 선택했다”고 했다. 선택 이후에는 대공사가 이어졌다. 당시 해외에 머물던 그를 대신해 아버지가 직접 학교로 출근하며 인테리어 공사를 진두지휘했다.

“원래는 어둡고 낡은 방이었는데, 마루 철거부터 벽지, 블라인드까지 대대적으로 교체했어요. 아버지와 화상 통화를 하며 가죽 질감과 바닥 톤을 일일이 골랐죠. 학생들이 구경 오고 싶어 할 정도예요.”



공간은 작지만 효율적이다 . 피아노와 작은 쇼파, 책상, 책꽂이 정도만 뒀다. 서서 연주해야 하는 바이올린의 특성을 고려해 공간에 여유를 더했다. 책상 위 ‘칼각’으로 정돈된 연필 세 자루와 단정한 노트에서 그의 성격과 철저한 루틴이 엿보인다. 책장에는 교재인 악보 외에도 괴테의 ‘파우스트’, 조지 오웰의 ‘1984’ 같은 고전 문학, 그리고 ‘브람스 전문가’답게 다수의 브람스 관련 서적이 꽂혀 있다. 제들이 써준 롤링페이퍼, 피크닉 사진이 담긴 액자 등도 공간 곳곳을 채웠다.





파우스트를 읽고 피크닉 가는 수업

임지영의 수업은 권위를 걷어낸 유대감에서 출발한다. 제자들과 불과 4~10살 차이인 그는 스스로를 ‘함께 고민하는 선배’로 정의한다. “내 방법을 주입한다고 결과가 좋으란 법은 없어요. 학생들이 나이를 초월해 저를 믿어줘서 고마울 따름이죠.”

그가 가르치는 학생은 14명이다. 시험이 끝나면 북촌, 서촌이나 한강으로 피크닉을 떠난다. 캠퍼스 밖에선 '언니' '누나'처럼 편안한 멘토가 되기도 한다. 커리큘럼도 파격적이다. 바이올린 수업임에도 '파우스트'를 읽고 토론하며 독후감을 쓴다. “문학과 음악은 꽤 유사한 과정을 거치는 행위”라고 믿기 때문이다.

“‘파우스트’는 바이올린 핵심 레퍼토리이기도 하죠. ‘문장’의 의미를 곱씹는 독서의 과정은 음악의 ‘프레이즈’를 이해하는 시간과 같아요. 독서는 텍스트 너머를 탐험하는 가장 좋은 훈련 도구에요.”



고(故) 김남윤 교수의 제자였던 임지영에게 바이올린은 신앙이자 법이었다. 교수님의 레슨 호출 한 번에 모든 스케줄은 제쳐두고 달려가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지금 강단에서 마주하는 제자들은 이른바 ‘신인류’라고. “요즘 친구들은 우선순위가 다양해요. 음악을 전공하면서도 비즈니스를 꿈꾸고, 학점 관리나 시험공부에도 사활을 걸죠. 예전 같으면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저는 음대 다니면서 공대나 경영대 수업을 듣고 복수전공을 하는 친구들을 존중하고 긍정적으로 봐요. 졸업 후 각자의 길은 다를 수 있으니까요.”



“어떤 길은 잃어야 만날 수 있다”

그가 강단에 선 건 역설적으로 코로나19 팬데믹 덕분이었다. 공연이 멈추자 “음악을 계속하는 게 맞나”라는 불안이 엄습했다. 그때 발견한 돌파구가 ‘티칭’이었다. 무대 위에서 에너지를 쏟아내는 연주자의 삶과 제자들의 성장을 돕는 교육자의 삶이 균형을 이루면 좋겠다는 직감이 왔다.

임용 과정은 운명적이었다. 연세대와 접점이 전혀 없던 그는 우연히 신임 교원 채용 공고를 발견했다. 많이들 ‘스카우트 받았을 것’이라고 짐작하지만, 그는 서류부터 실기 면접까지 모든 절차를 통과해 자력으로 입성했다. 그때 임지영은 28세였다. 누가봐도 학생에 가까운 외모의 20대 음악가가 교수가 된 것. 임용 직후의 해프닝은 지금도 웃음을 자아낸다. 연구실 리모델링 현장을 지키던 그의 아버지를 신임 교수로 오해한 경비원이, 정작 뒤늦게 나타난 임지영을 향해 “학생은 들어오면 안 된다”며 제지한 것. 그는 “제가 교수예요”라고 답하며 수줍게 웃어야 했다.



임지영의 선택을 관통하는 철학은 명료하다. ‘유난 떨지 말자’는 것. 스승 김남윤 교수가 그의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우승을 두고 “김연아가 올림픽 금메달 딴 것과 똑같다”고 말했을 정도였지만, 그는 도취되지 않았다. 우승 직후에도 부모님은 그를 ‘대단한 우승자’가 아닌 ‘딸’로 대하며 중심을 잡아줬다. “부모님이 저를 하드코어로 키우셨어요. ‘네가 큰 콩쿠르에서 우승을 하든 말든 너는 내 딸이고, 동생의 언니고, 선생님의 제자일 뿐이다’라는 개념을 어려서부터 확실히 정립해주셨죠. 제가 (콩쿠르 우승했다고) 갑자기 대단한 존재가 되는 게 아닌거죠.”

어린 나이의 성공이 자칫 고립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경계하는 그는 화려한 솔리스트이면서도 따뜻한 교육자, 자녀, 친구로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려 애쓴다. “솔리스트라고 해서 유난스럽게 굴고 싶지 않아요. 연주자와 교육자 사이에서 건강한 ‘밸런스’를 유지하고 싶어요.”

이런 담백한 태도의 배경에는 동료들의 영향도 크다. 그는 이른바 ‘(한)예종 키즈’로 불리며 한국 클래식의 비약적인 성장을 상징하는 세대다. 피아니스트 조성진,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 첼리스트 문태국 등이 같은 세대다. 세계적인 콩쿠르를 휩쓸며 전성기를 맞은 2030 젊은 음악가들은 이제 한국 클래식계의 주역이 됐다. “함께 성장해온 동료이자 친구들이에요. 서로 음악을 존중하고 자극을 받으면서도, 무대 밖에서는 평범한 젊은이들처럼 소통하죠.”



30대 초반인 그가 꼽은 인생 최우선 순위는 의외로 ‘몸과 마음의 건강관리’였다. “건강에 관심이 정말 많아요. 어려서부터 앞만 보고 달려오다 보니 정신 건강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끼죠. 제 실제 나이는 서른을 조금 넘겼지만, 아마 신체적·정신적 피로도는 그 이상으로 소진했을 거예요. 이제는 멘탈과 체력 관리 없이는 연주와 교육이라는 이 막중한 일들을 도저히 소화할 수 없겠더라고요.” 그는 틈날 때마다 캠퍼스 곳곳을 하염없이 걷곤 한다. 격정적인 운동보다는 필라테스와 산책으로 정신적 활력을 찾는다.

임지영의 ‘자기만의 방’



임지영에게 연구실은 단순한 직장이 아닌 ‘쉼터’다. 강의가 없어도, 방학 때도 그는 매일 이곳으로 출근한다. “이곳은 제 안식처이자 쉼터, 연습실이자 모든 일상이 일어나는 곳이에요. 밤이든 낮이든 머리가 복잡해지면 이곳을 찾아요. 나만의 시공간에 진입하는 느낌이 들어 이제는 정말 집처럼 편안해요.”

‘무대’가 완성된 음악을 증명하고 쏟아내야 하는 공간이라면, 이 방은 그 ‘과정’ 자체가 존중받는 곳이라고 했다. 어린 시절부터 바이올린이라는 좁고 치열한 세계에만 매진해온 그에게, 종합대학의 캠퍼스를 누비는 일은 예기치 못한 기쁨이라고. 사람 구경을 좋아한다는 그는 연구실에서 창밖을 바라보거나, 캠퍼스 산책만으로도 큰 위안을 얻는다.

“브람스는 경이로워요”



임지영은 인터뷰 내내 ‘단단한 내면’과 ‘밸런스’를 강조했다. 매 순간 일희일비하지 않고 삶의 균형을 잡는 것이 결국 건강한 음악을 만든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는 미래의 음악가들에게 테크닉보다 중요한 것은 ‘열린 태도’라고 조언했다.

“누가 가르치느냐보다 중요한 건 귀를 여는 거예요. 내 생각과 반대되는 의견이라도 경청할 준비가 되어 있다면 음악은 반드시 성장해요. 사실 음악은 매일이 번뇌의 연속이거든요. 어제 되던 게 오늘 안 되는, 논리가 통하지 않는 영역이라 무너지지 않으려면 태도가 제일 중요해요.”

유난 떨지 않고 묵묵히 내면을 단련하는 것, 그리고 타인의 목소리에 귀를 여는 유연함. 임지영이 차세대 음악가들에게 건네는 키워드다.

인터뷰 말미, 대화는 자연스럽게 브람스로 향했다. 퀸 엘리자베스 콩쿨 결선 당시 우승을 안겨준 브람스는 여전히 연구실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모차르트, 베토벤 등 위대한 작곡가들은 늘 좋아하지만, 최근 어떤 기회로 브람스 협주곡을 하루 종일 수십 번이나 반복해서 들을 일이 있었어요. 여러 연주자의 각양각색 스타일을 들으며 때로는 납득하기 어려운 해석도 마주했지만, 결국 내린 결론은 하나였어요. 브람스의 곡은 정말 명곡이라는 것. 계속 들어도 그저 경이로울 뿐이었습니다.”

조민선 기자 sw75j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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