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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보이지 않는 국경, AI시대의 디지털 지도 전쟁

입력 2026-02-25 17:24   수정 2026-02-25 17:25



인공지능은 데이터를 먹고 자란다. 그중에서도 지도는 가장 느리게 만들어지고, 가장 오래 쓰이며, 가장 되돌릴 수 없는 데이터다. 데이터는 한 번 넘어가면 되돌릴 수 없다. 그래서 지도는 단순한 서비스가 아니라 국가의 전략이자 선택이 된다. 미래 사회의 국경선은 눈에 보이지 않는 데이터와 지도 위에 그려진다.

김인현 한국공간정보통신 대표는 30여년간 대한민국 공간정보 산업의 현장에서 연구·개발·운영을 수행해 온 실무자이자 경영자다. 도로명주소정보체계, 수도권 버스정보시스템, 국가공간정보통합체계 등 국가 핵심 공간정보 인프라 구축에 그의 손길이 닿아 있다. 그가 이번에 낸 신간 <디지털 지도 전쟁>은 인공지능 시대에 고정밀 공간 데이터는 누구의 손에 있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 책은 세계 주요 국가들이 어떤 방식으로 지도를 다루고 있는지, 플랫폼 기업들은 왜 지도에 집착하는지, 그리고 대한민국은 어떤 갈림길에 서 있는지 보고 앞으로의 방향을 제시했다.

지도 주권을 지킨 국가들

독일의 선택은 상징적이다. 2015년, BMW와 아우디, 메르세데스-벤츠는 노키아의 지도 사업부 HERE을 약 28억 유로에 공동 인수했다. 이는 자율주행 시대의 핵심인 고정밀 디지털 지도를 외부의 거대 기술 플랫폼에 맡기지 않고 독립적으로 확보하려는 전략적 결단이었다.

일본도 비슷한 길을 걸었다. 도요타, 혼다, 닛산 등 일본 자동차 기업들은 일본 최대 지도 기업인 젠린과의 협력, 그리고 다이내믹 맵 플랫폼 같은 합작 구조를 통해 고정밀 3D 지도를 자체적으로 구축하고 있다.

자율주행 시대의 지도는 비용이라기보다 경쟁력 그 자체다. '지도는 안보이자 밥이다'라는 말이 있다. 그리고 밥을 남에게 맡긴 산업은 언젠가 그 밥값(사용료, 규칙, 표준, 업데이트 주기)를 남이 정하는 구조로 들어간다.

고정밀 디지털 지도는 차선의 위치와 폭, 표지판의 방향, 신호등의 높이와 각도 같은 정보가 담긴다. 지도는 공간과 시간, 속성이 결합된 살아 있는 데이터가 되며 국가의 공간정보 인프라는 부처와 지자체, 공기업이 함께 사용하는 공통 자산이다.

위성영상은 단순히 ‘보지만’, 지도는 ‘연결한다’. 이 지도는 자율주행차의 눈이 되며, 공간에 시간을 더하면 4D 지도가 된다. 4D 지도는 "어디에 무엇이 있다"에서 멈추지 않고 "언제 어떻게 변하는지"까지 보여준다. 이 지점에서 지도는 살아 움직이는 기억이 된다.

소버린AI와 피지컬 AI시대, 지도를 어떻게 읽는가

이 책은 앞으로 소버린AI와 피지컬 AI 시대에 지도를 어떻게 설계해야 할지 내다봤다. 인트라맵 3DX나 탄소중립 실험실은 이런 미래를 들여다보는 작은 창이다.

인트라맵3DX는 사람 눈높이에서 도시를 보고, 바람과 햇빛이 움직이는 방향을 계산하며, 재난이 발생했을 때 상황이 어떻게 전개되는지를 미리 그려 보는 지도다. 이는 도시를 더 빨리 개발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도시를 더 오래 안전하게 유지하기 위한 지도다. 그늘과 바람, 재난을 시뮬레이션함으로써 도시의 미래를 그려볼 수 있다.

탄소발자국의 좌표화도 또 다른 가능성이 될 수 있다. 오늘날 측정·기록·검증(MRV)을 통해 탄소를 제대로 측정하고 기록할 수 있다. 1:5000 수준의 고정밀 디지털 국토 정보와 MRV가 결합되면 탄소는 추상적인 지표에서 구체적인 지표가 된다. 어느 항만에서 배출된 탄소가 어떤 도로를 따라 이동했고 어떤 공정과 소비를 거쳐 축적되었는지가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

앞으로 지도를 어떻게 지킬 것인지를 넘어 지도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는 다음 장의 시작이어야 한다. 저자는 인공지능 시대의 지도 경쟁은 더 조용하고 더 정밀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며, 공간정보가 기술을 넘어 제도와 책임, 권한의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고 강조한다.

구현화 기자 ku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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