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해진 트랙이 없다는 건 역설적으로 어디든 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최수연 네이버 대표가 유홍림 서울대 총장, 김종섭 총동창회장과 함께 서울대 졸업식 축사 연단에 섰다. 40대(1981년생) 여성 현직 기업인이 졸업식에서 축사를 낭독한 건 서울대가 1946년 개교한 이후 처음이다. 서울대는 최 대표를 선정한 이유에 대해 “공학과 법학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차세대 리더로 평가받으며, 소버린 AI(인공지능)를 주도해왔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서울대 졸업식 축사는 학계 원로, 과학기술 분야의 거장, 국가 지도자 등이 맡아왔다. 미국 대학에선 현직 젊은 기업인의 축사가 드물지 않게 이뤄진다. 스티브 잡스가 2005년 애플 현직 최고경영자(CEO)로서 스탠퍼드대 졸업식 축사를 맡았다. 대학 졸업장도 없던 잡스는 ‘Stay hungry, stay foolish(항상 갈망하고, 바보처럼 도전하라)’라는 명언을 남겼다. 1984년생인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현 메타) 창업자는 중퇴자임에도 불구하고 2017년 하버드대 졸업식 연단에 섰다. 이 같은 미국 대학의 졸업식 문화는 2000년대 이후 혁신 기술과 기업가정신을 강조하는 시대정신을 반영한 것이다.
다소 긴장한 듯한 표정으로 연단에 선 최 대표의 핵심 메시지는 ‘실패’였다. 그는 “오늘 이후 여러분 앞에는 수많은 실수와 실패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며 “제 자신의 대학 생활과 커리어 역시 완벽한 설계와는 거리가 멀었고,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2000년 서울대 지구환경시스템공학과에 입학한 최 대표는 대학 시절을 “적성이 맞지 않아 다른 단과대 수업을 기웃거렸다”고 회상했다. 2005년 NHN(현 네이버)에 입사한 후에도 첫 부서인 홍보실에서 “하루에 자료를 10번 이상 다시 쓴 날도 있었다”고 말했다. 서울대 로스쿨 도전에선 고배를 마셨다. 그럼에도 최 대표는 “계획대로 되지 않았기에 오히려 상상하지 못했던 더 많은 기회를 만났다”며 “자신감이 없었기에 손에 쥔 작은 것을 내려놓을 수 있었고, 운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기회가 오면 최선을 다해 잡으려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 “여러분이 마주할 세상은 제가 졸업할 때와 비교도 안 될 만큼 빠르게 변하고 있다”며 대응 키워드로 ‘엉덩이의 힘’과 ‘친절’을 제시했다. “남들이 지루해하고 포기하고 싶어 할 때 끝까지 파고드는 집요한 성실함이 무기”라며 “결정적인 순간 믿을 수 있는 사람은 가장 똑똑한 사람도, 목소리가 큰 사람도 아니라 타인에게 공감하고 배려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최 대표는 지난해 12월 제34회 다산경영상(전문경영인 부문)을 받기도 했다. 다산경영상은 탁월한 경영 실적과 훌륭한 기업 문화를 일궈낸 기업인에게 한국경제신문이 수여하는 국내 최고 권위의 상이다. 생성형 AI 격변기 속에서 ‘온서비스 AI’ 전략을 주도하며 네이버를 국내 플랫폼 기업 최초 매출 10조원 시대로 이끈 공로를 인정받았다. 글로벌 빅테크 중심의 AI 경쟁 구도 속에서도 기술·데이터·플랫폼을 함께 보유한 독립적 사업 모델을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안정훈 기자 ajh632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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