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자사주 관련 상법은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1년 대대적으로 개정됐다. 기업이 배당가능이익 한도 내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자사주를 취득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등 규제를 대폭 완화했다. 당시 개정은 기업의 경영 자율성을 확대한 조치로 평가받았다.
25일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한 3차 상법 개정안(자사주 소각 의무화)은 기업 경영에 더 큰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시장에선 상장사가 보유한 자사주 140조원 가운데 올해에만 최대 60조원어치가 소각되면서 주가 상승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 일각에선 신규 자사주 매입이 줄고 합병이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날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어선 3차 상법 개정안의 핵심은 신규 자사주를 1년, 기보유 자사주를 1년6개월 내 의무 소각하도록 규정한 것이다. 자사주를 교환·상환 대상으로 한 사채를 발행하지 못하도록 하고 질권 설정도 막았다. 법안 성안을 주도한 민주당 K-자본시장 특별위원회의 오기형 위원장은 입법 취지를 통해 “특정 주주의 이익을 위해 자사주가 악용되는 사례를 막아야 한다”고 설명했다.하지만 보유와 처분을 완전히 막은 것은 아니다. 임직원 보상 등 일정 사유와 기타 정관에서 정하는 사유에 근거해 주주총회에서 해마다 주주 동의를 받도록 했다. 이때는 ‘자기주식보유처분계획’ 작성이 필수다. 처분 시에도 주주의 비례적 이익을 따지는 등 요건을 엄격히 했다. 정해진 법을 어기면 이사에게 5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경제계 요구 사항이던 비자발적 취득 자사주도 결국 소각 대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다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통과 과정에서 소각 절차를 일부 간소화하는 ‘보완책’이 마련됐다. 합병 등에서 원치 않게 취득한 자사주는 이사회 의결만으로 소각이 가능하도록 한 것이다. 주총 특별결의·채권단 동의 등 자본금 감소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돼 분쟁 소지는 줄었다는 평가다. 통신·방송·항공 등 외국인 투자제한 업종은 3년의 처분 기한이 부여되는 등의 수정안도 담겼다.
상장사들은 혼란에 빠진 모습이다. 당장 3월 정기주총 시즌을 앞두고 자사주 보유·처분을 위해 정관을 변경하려는 기업들이 문제가 된다. 김춘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정책1본부장은 “적정 사유를 작성하고 주총 특별결의를 거쳐 주주를 설득해야 하는데 당장 법에는 신기술 도입, 재무구조 개선 등의 예시밖에 없다”며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가이드라인 자체가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소액주주의 관심사가 단기 주가 상승에 몰린 만큼 어떤 내용을 써도 지지를 얻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도 기업들의 고민거리다. 자연히 신규 자사주 취득이 위축될 것이란 우려도 작지 않다. 신영증권 등 대주주 지분율이 낮고 자사주가 많은 기업은 행동주의 펀드의 공격이 몰릴 가능성도 제기된다.
합병 등 기업들의 사업 재편이 줄어들 것이란 분석도 제기된다. 권재열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통상 합병 등으로 비자발적 자사주를 취득할 때는 해당 자사주에 질권을 설정해 담보를 잡고 금융사에서 돈을 빌려 매입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라며 “질권 설정이 막히면 재무구조가 취약한 상장사들은 변화하는 경영 환경에 맞춰 기업구조를 유연하게 바꿀 수 없게 돼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시은 기자 s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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