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잔고장 없이 10년 넘게 탄 이노바를 처분했는데, 신차 구매 당시 가격의 절반 넘는 금액을 받았다. 물가 상승률을 감안해도 실질 가치의 40% 이상을 회수한 셈이다. 10년이 지난 중고차가 이 정도 가격을 유지한다는 사실은, 이 지역에서 토요타라는 브랜드가 얼마나 깊이 뿌리내렸는지를 보여준다.
아세안 주요 시장에서 토요타의 위상은 수치로 더욱 분명해진다. 2025년 인도네시아 자동차 시장은 소비 위축으로 전체 판매량이 약 80만 대 수준으로 감소했지만, 토요타의 지배력은 오히려 공고해졌다. 토요타는 도매 기준 약 25만 431대를 판매하며 31.2%의 점유율로 1위를 지켰다. 여기에 자회사 다이하쓰(Daihatsu)의 약 13만 대 판매량을 더하면 점유율은 47%를 넘어선다. 사실상 시장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태국에서도 약 34%의 점유율로 1위를 유지하고 있으며, 필리핀에서는 점유율이 46%에 이르러 신차 두 대 중 한 대가 토요타다.
이러한 토요타의 독주 비결은 치밀한 국가별 전략에 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Innova와 Avanza 같은 MPV 중심 전략으로 대가족 문화와 자영업 중심 경제 구조를 공략했다. 태국에서는 농업과 중소 상공업 비중이 높은 점에 착안해 픽업트럭 하이럭스(Hilux)를 전면에 내세웠고, 해당 세그먼트에서 40% 이상의 점유율을 확보했다. 필리핀에서는 소형 세단 비오스(Vios)를, 베트남에서는 코롤라 크로스(Corolla Cross)와 포르튜너(Fortuner)를 강화했다. 토요타는 아세안을 하나의 단일 시장으로 보지 않았다. 각국의 도로 사정과 소득 수준, 산업 구조를 세밀하게 분석해 제품 구성을 달리했다.
이 전략의 출발점은 반세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토요타는 1962년 태국에, 1971년 인도네시아에 생산 거점을 세웠다. 완성차를 단순 수출하는 대신 현지 조립과 부품 생산, 기술 이전을 선택했다. 현재 이노바와 아반자의 현지 부품 조달률은 80~95%에 달한다. 각국 정부와 협력해 기술 인력을 양성하면서 토요타는 외국 기업이 아니라 산업 생태계의 일부로 자리 잡았다. 전국 300여 개에 이르는 촘촘한 서비스 네트워크 역시 환율 변동이나 정책 변화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힘이 됐다.

반면 최근 몇 년 사이 동남아 현지 고객들과 교민들 사이에서는 한국 차에 대한 아쉬움도 들린다. 현대차와 기아차는 디자인과 상품성 면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지만, 서비스 인프라와 중고차 가치 측면에서는 여전히 과제를 안고 있다. 2025년 현대차의 인도네시아 판매량은 약 1만 9,000대 수준으로 감소했다. 일부 소비자들은 “중고차 가격이 기대만큼 나오지 않는다”라거나 “지방 도시에서는 서비스센터 접근성이 떨어진다”고 말한다. 동남아에서 자동차는 단순 소비재가 아니라 장기 보유 자산이다. 구매 이후의 유지·관리와 재판매 가치까지 포함한 총체적 경험이 브랜드를 결정한다.
중국 전기차 기업들의 공세도 변수다. BYD는 2025년 인도네시아에서 약 4만 6000대를 판매하며 6위로 급부상했다. 일본 브랜드 중심이던 시장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 그러나 전력 인프라가 충분하지 않은 동남아의 현실에서 토요타는 하이브리드(HEV) 중심의 점진적 전환을 택했다. 인도네시아에서 생산되는 이노바 제닉스(Innova Zenix) 하이브리드는 긴 대기 기간이 이어질 만큼 높은 신뢰를 받고 있다.
결국 동남아에서의 경쟁은 ‘최신 기술’이나 ‘화려한 옵션’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오랜 시간 현지 사회와 함께하며 부품과 서비스를 안정적으로 공급해 왔는지가 관건이다. 토요타는 신차 판매, 중고차 가치, 서비스 네트워크가 서로를 강화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이 구조는 단기 할인 정책이나 일시적 신차 효과로는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토요타의 사례는 우리 기업에 분명한 메시지를 던진다. 아세안 시장을 단기 실적의 공간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함께 산업을 키워가는 장기적 파트너십의 공간으로 볼 것인가? 현지화는 광고 문구가 아니라 공장과 협력사, 교육과 금융, 그리고 중고차 시장까지 포괄하는 전략이어야 한다. 오랜 시간 축적된 브랜드 신뢰는 결국 시장 점유율과 잔존 가치라는 숫자로 돌아온다.
동남아에서 토요타를 넘어서는 일은 단순히 더 싼 차를 내놓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그 장벽은 디자인이나 기술에서 비롯된 작은 차이가 아니라, 수십 년간 축적된 경험과 신뢰가 쌓아 올린 거대한 구조물에 가깝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모델의 빠른 출시가 아니라, 전국적인 서비스망 확충 및 인력 양성 등 더욱 정교한 현지화 전략이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이성득 인도네시아 UNAS경영대학원 초빙교수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
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