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과 이스라엘의 대(對)이란 군사작전이 전격 단행되면서 글로벌 방산 시장이 요동치는 가운데, 대한민국 방위산업의 간판 한화그룹이 재계 판도를 뒤흔들고 있다.
지난 2월 28일(현지 시간) 발생한 이란 공습 이슈를 기점으로 방산주가 폭발적인 랠리를 이어가며, 3월 3일 종가 기준 한화그룹 상장 계열사 합산 시가총액은 178조원을 기록했다. 이로써 한화는 HD현대(171조원)를 제치고 삼성, SK, 현대차, LG에 이어 국내 재계 시총 순위 5위로 올라섰다.
이러한 수직 상승의 주역은 단연 한화에어로스페이스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4년째 장기화되는 엄중한 안보 현실 속에서 한화에어로의 성장세는 경이로운 수준이다. 2022년 2월 전쟁 발발 당시 5만원대에 불과했던 주가는 2026년 3월 3일 종가 기준 143만 2000원을 돌파하며 사상 최고가를 경신했다. 4년 만에 무려 2572%라는 기록적인 상승률을 보인 것이다.
2024년 말까지만 해도 42조원 수준이었던 그룹 시총이 불과 1년여 만에 178조원으로 급팽창하면서 “12년 전 모두가 만류했던 ‘빅딜’이 한국의 산업 지도를 바꿨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화의 퀀텀점프는 2014년 11월 삼성과의 2조원 규모 ‘빅딜’에서 시작됐다. 당시 삼성테크윈과 삼성종합화학 등 4개 계열사를 주고받은 이 거래는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두터운 신뢰가 밑거름됐다.
창업주 시절부터 3대째 이어져 온 두 가문의 우호 관계가 아니었다면 성사되기 어려운 거래였다. 당시 삼성은 전자·금융·IT 등 핵심 역량에 집중하기 위해 비주력 사업인 방산과 석유화학을 정리하고자 했고, 한화는 이를 그룹의 미래 성장동력으로 삼아 국내 1위로 도약하겠다는 전략적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
한화는 대규모 자금 부담을 덜기 위해 삼성테크윈은 2년, 삼성종합화학은 3년에 걸쳐 대금을 분납하는 파격적인 조건을 끌어냈다. 초기 ‘승자의 저주’ 우려와 달리 방산과 석유화학을 중심으로 한화그룹의 핵심 성장동력을 확보하며 성공적인 M&A 사례로 꼽힌다.

당시 재계 1위 삼성이 방산·화학 계열사를 정리하고 9위 한화가 이를 인수한다는 소식에 시장은 싸늘했다.
내부 경영진조차 천문학적 자금 부담을 우려하며 만류했지만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시선은 달랐다. ‘사업보국’을 경영철학으로 삼아온 김 회장은 삼성의 정밀기계 기술을 그룹의 미래 먹거리로 확신했다.
부친의 직관을 현실로 구체화한 것은 장남 김동관 부회장이었다. 하버드대 동문인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긴밀히 소통하며 막후에서 거래를 조율한 김 부회장은 인수한 자산을 그룹의 체질 개선과 연결하는 정교한 설계를 주도했다.
결국 김 회장이 뚝심으로 인수를 밀어붙인 빅딜은 방산 및 화학 기업으로 도약하는 신의 한 수가 됐다. 삼성엔 실탄을, 한화엔 글로벌 톱티어로 도약할 강력한 기반을 선사했기 때문이다.


물론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2015년 초 삼성테크윈(현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창원 공장은 매각에 반대하는 직원들의 목소리로 가득 차 있었다.
재계 1위 삼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용의 꼬리’로 살며 누렸던 자부심이 하루아침에 배신감으로 변하자 무노조 경영의 상징이었던 삼성맨들은 매각 반대 투쟁을 위해 창사 이래 처음으로 노조를 결성했다.
김 회장의 ‘신용과 의리’ 리더십은 여기서 빛을 발했다. 김 회장은 인수 현장을 직접 챙기며 “한화 가족이 된 여러분을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약속과 함께 ‘100% 고용 승계’와 ‘기존 처우 유지’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단순한 금전적 보상이 아니었다. 한화는 삼성에서 ‘비주력’으로 소외당하던 ‘삼성 후자’들에게 그룹의 ‘미래 핵심 인재’라는 자부심을 심는 데 주력했다.
삼성 시절의 삼성테크윈은 ‘관리의 삼성’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은 아픈 손가락이었다. 특히 현재 K방산의 아이콘인 K9 자주포는 당시 ‘부실 무기’라는 오명에 시달렸다. 2012년 중고 파워팩(엔진+변속기) 납품 의혹으로 검찰의 압수수색을 받는가 하면 엔진 캐비테이션(기포 발생 파손) 현상과 잇따른 내부 화재 사고로 인명 피해까지 발생했다.
결정적으로 2010년 연평도 포격전 당시 6문 중 2문이 기능 고장으로 작동하지 않으면서 전투 성능에 대한 전국민적 불신을 샀다. 당시 이건희 회장은 삼성테크윈 경영진단 결과를 보고받고 “삼성의 자랑이던 깨끗한 조직 문화가 훼손됐다”며 격노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회장의 질책에 당시 오창석 사장이 사퇴하는 등 경영진이 대거 교체됐지만 ‘전자’ 중심의 삼성 생태계 내에서 기계 기반의 방산 사업은 좀처럼 활로를 찾지 못한 채 겉돌았다.
삼성의 정밀기계 DNA와 한화의 불꽃 같은 추진력이 결합하자 화학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과거 품질 논란을 빚었던 K9 자주포는 한화의 전폭적인 R&D 투자와 공격적인 마케팅을 거쳐 글로벌 베스트셀러로 거듭났다.
삼성 시절의 뼈아픈 오답 노트를 바탕으로 기술력을 갈고닦은 결과 2021년 10%대에 불과했던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수출 비중은 2025년 53%를 기록하며 창사 이래 처음으로 내수를 추월했다. 지상 방산 부문만 떼어놓고 보면 수출 비중이 71%에 달한다.

삼성테크윈이 자주포와 엔진이라는 ‘심장’이었다면 삼성탈레스(현 한화시스템)는 레이더와 지휘통제 체계라는 방산의 ‘눈과 머리’를 담당했다. 프랑스 탈레스와의 합작사로 시작된 이들은 독보적인 기술력을 가졌음에도 삼성전자라는 거대한 태양에 가려져 빛을 보지 못한 케이스였다.
인수 후 통합(PMI) 과정에서 일부 진통을 겪기도 했지만 한화는 이들의 ‘소프트웨어 역량’에 주목했다. 김승연 회장은 단순히 무기를 만드는 제조사를 넘어 모든 전력을 연결하는 ‘초연결·초지능’ 방산 기업을 구상했고 그 핵심 기지로 한화시스템을 점찍었다.
이후 한화시스템은 삼성 시절 축적된 레이더 기술을 바탕으로 ‘KF-21의 눈’인 AESA 레이더 국산화라는 성과를 거뒀다.
삼성 시절 내부 시너지가 부족해 겉돌던 기술력이 한화에어로스페이스(지상)·한화오션(해상)이라는 강력한 플랫폼을 만나 비로소 ‘통합 전투체계’로 완성된 것이다. 현재 한화시스템은 저궤도 위성 통신과 도심항공교통(UAM) 등 그룹의 미래를 선도하며 시총 20조원을 돌파한 당당한 주역이 됐다.

삼성과의 빅딜이 ‘심장과 두뇌’를 얻은 사건이었다면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 인수는 한화 방산제국의 ‘마지막 퍼즐’을 맞춘 신의 한 수였다.
김 회장은 2008년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첫 번째로 시도했으나 당시 글로벌 금융위기와 자금조달 문제 등으로 인해 최종적으로 무산된 바 있다.
14년이 지난 2022년 마침내 인수에 성공하며 한화는 지상(에어로스페이스), 하늘과 우주(시스템·에어로), 그리고 바다(오션)를 잇는 명실상부한 ‘육·해·공·우주 통합 방산 기업’으로 거듭났다. 2026년 2월말 기준 한화오션의 시가총액은 43조8000억원을 돌파하며 그룹 내 방산 시너지의 파괴력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특히 지금 한화오션이 주목받는 이유는 미국의 해양 안보 전략인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프로젝트의 수혜 기업이기 때문이다. 미·중 갈등이 격화되면서 미국은 자국 내 함정 유지·보수(MRO) 역량의 한계를 느끼고 한국의 독보적인 조선 기술력에 손을 내밀기 시작했다.
한화오션은 미 해군 함정의 MRO 사업을 수주하며 북미 시장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했다. 이는 단순한 정비를 넘어 향후 미 함정 건조 사업 참여라는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로 연결되고 있다.
앞서 한화는 2024년 12월 미국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필리조선소를 1억 달러에 인수하면서 약 50억 달러(약 7조원)를 추가 투자해 연간 선박 건조 역량을 1~2척 수준에서 2035년까지 최대 20척까지 확대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해양 방산의 꽃인 잠수함 분야에서도 한화의 통합 포트폴리오는 빛을 발한다. 최근 한국형 핵잠수함 건조 논의가 급물살을 타면서 세계 최고 수준의 디젤 잠수함(장보고-III) 건조 능력을 갖춘 한화오션에 거는 기대는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여기에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리튬전지 체계와 한화시스템의 전투관리체계(CMS)가 한 배에 실리며 계열사 간의 시너지가 제품의 부가가치를 극대화하고 있다.
과거 대우조선해양 시절 만성 적자와 노사갈등으로 ‘부실 공룡’으로 불렸던 이곳은 한화의 DNA를 수혈받은 지 3년 만에 시총 43조원대 견실한 기업으로 탈바꿈했다.
김 회장은 특유의 의리의 리더십으로 현장을 보듬었고 김동관 부회장은 폴란드와 호주 등 주요 수주 현장을 직접 누비며 ‘글로벌 현장 경영’을 가동했다. 이러한 포트폴리오의 완성은 단순히 사업 영역의 확장을 넘어 ‘김동관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전략적 결과물로 풀이된다.
한화의 방산 포트폴리오 완성은 단순한 외형 성장을 넘어 김 부회장의 리더십을 공고히 하는 ‘전략적 승부수’이기도 했다.
김 부회장은 삼성 빅딜 실무를 시작으로 흩어져 있던 방산 계열사를 한화에어로스페이스로 통합하고, 한화오션 인수까지 성공시키며 육·해·공·우주를 잇는 방산 포트폴리오를 완성했다. 현재 178조원에 달하는 그룹 시가총액과 압도적인 수출 실적은 김 부회장의 경영 능력을 입증하는 강력한 트랙레코드로 꼽힌다.
한화그룹은 최근 한화에너지를 통해 (주)한화의 지분을 확보하고 인적분할을 통해 방산·조선 등 핵심 사업을 김 부회장에게 집중시키면서 형제간의 영역(차남 김동원 금융, 삼남 김동선 유통)을 명확히 구분했다. 이로써 김 부회장 중심 승계 구도에서 전략적 기반을 강화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때 삼성의 ‘천덕꾸러기’ 신세였던 방산 사업부는 한화의 미래를 책임지는 ‘알짜’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2025년 말 기준 지상 방산 수주 잔고는 37조2000억원에 달한다. 삼성 시절 4조원대에 불과했던 수주 규모가 12년 만에 10배 가까이 불어난 셈이다.
이는 향후 10년 이상의 안정적인 먹거리를 확보했음을 의미하며 한화오션과 한화시스템의 잔고를 합산할 경우 그 파괴력은 더욱 커진다.
파죽지세의 성장세 속에 한화그룹은 2030년까지 ‘글로벌 톱10’ 진입을 정조준하고 있다. 미국 군사 전문 매체 디펜스뉴스에 따르면 2024년 기준 한화의 글로벌 방산 기업 순위는 19위로 전년(24위) 대비 5계단 상승했다.
“미래를 좌우할 원천기술을 보유해야 100년 영속할 수 있다.” 김 회장이 2026년 신년사에서 강조한 화두는 한화가 단순 제조사를 넘어 ‘글로벌 토털 디펜스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 전환의 핵심은 12년 전 삼성으로부터 이식받은 ‘IT DNA’에 있다.
과거 한화가 잘 벼려진 ‘창과 방패(하드웨어)’를 만드는 대장장이였다면 삼성테크윈과 삼성탈레스를 흡수하며 얻은 정밀제어 및 소프트웨어 역량은 무기에 ‘지능’을 부여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독자 항공엔진 개발’에도 도전 중이다. 김 회장이 언급한 ‘원천기술 확보’의 핵심인 독자 항공엔진 개발은 한화가 글로벌 톱티어 반열에 오르기 위한 마지막 관문이다.
이는 한국항공우주산업(KAI)와의 전략적 파트너십 및 업계에서 꾸준히 거론되는 인수설의 핵심 배경이기도 하다. 만약 KAI까지 한화의 품에 안긴다면 ‘한국판 록히드마틴’을 향한 대장정은 사실상 마침표를 찍게 된다.
한화시스템과 한화비전은 AI와 디지털 기술을 무기체계에 이식하며 전장의 지능화를 주도하고 있다. 국내 첫 전투 로봇 양산과 AI 기반 연합 지휘통제체계(AKJCCS) 개발은 미래 전장의 판도를 바꿀 핵심 과제다.
드론과 무인 차량이 인간과 함께 작전하는 MUM-T(유무인 복합체계)는 현재 세계 주요 군사 강국에서 실전 배치 및 운용이 시작됐으며 한국군은 단계적인 실전 검증 및 전력화를 추진 중이다.
누리호 4차 발사 성공으로 증명된 우주발사체 기술과 저궤도 위성 통신망은 한화를 하드웨어 제조사를 넘어 미국의 안두릴이나 팔란티어 같은 글로벌 소프트웨어 플랫폼 기업으로 탈바꿈시키고 있다.
단순히 잘 만든 무기를 파는 것이 아니라 전장의 데이터를 장악하고 제어하는 ‘방산 OS(운영체제)’ 경쟁이 향후 한화의 승부처가 될 전망이다.
물론 넘어야 현실의 벽도 있다. 글로벌 톱티어의 상징인 항공엔진 국산화에는 천문학적인 R&D 비용과 장기간의 불확실성이 수반된다. KAI 인수설 관련해 독과점 논란 해소와 대규모 자금조달에 따른 재무적 부담도 김 부회장이 풀어야 할 숙제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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