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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을 넘는 콘텐츠 제작…한·일 합작의 성과와 과제 [김희경의 컬처 인사이트]

입력 2026-03-03 12:21   수정 2026-03-03 12:22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넷플릭스에서 2026년 1월 공개된 드라마 ‘이 사랑 통역 되나요?’엔 일본인 배우 후쿠시 소타가 나온다. 그는 여주인공 차무희(고윤정 분)를 좋아하게 되는 구로사와 히로 역을 맡았다. 카메오나 조연이 아니라 서브 남주에 해당한다. 이 작품에선 일본인 배우가 출연할 뿐만 아니라 차무희와 상대역인 주호진(김선호 분)이 처음 만나게 되는 배경도 일본으로 나온다.

최근 나온 드라마들에서 새롭게 나타난 현상 중 하나이다. 한국을 비롯해 다양한 국적의 배우가 출연하고 배경도 여러 국가로 설정된다. 제작진도 국적을 불문하고 모여 협업을 진행한다.
K콘텐츠의 글로벌 합작이 가속화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것은 일본과의 협업이다. 문화나 정서적으로 유사한 점이 많은 일본과의 글로벌 합작을 통해 콘텐츠 시장의 새로운 활로를 열고 있다. 국내 콘텐츠 산업이 살아남기 위한 자구책인 동시에 콘텐츠 영토를 확장하는 성장 전략이다.

작품 제작 전 과정을 양국이 함께

한·일 합작 방식은 과거와 크게 달라지고 있다. 판권이나 포맷 판매 수준에 머물지 않는다. 투자·기획 단계에서부터 제작·마케팅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 걸쳐 합작을 진행한다. 이는 단순히 협업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처음부터 단일 국가가 아니라 한·일 양국을 포함한 글로벌 영토를 대상으로 공동의 지식재산권(IP)을 개발하고 그 수익을 함께 나눈다. 그만큼 규모가 크면서도 양국의 제작 시스템을 정교하게 결합해야 하는 복잡하고 어려운 작업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한·일 합작은 갈수록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한·일 합작 작품은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지난해 6월 아마존프라임비디오에서 공개된 ‘내 남편과 결혼해줘’ 일본판은 큰 인기를 얻었다. tvN에서 흥행했던 한국 원작을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주연은 일본 배우 고시바 후우카, 사토 다케루가 맡았다. 제작도 한·일이 공동으로 진행했다. CJ ENM 재팬과 스튜디오드래곤이 기획하고 일본의 쇼치쿠가 제작했다. ‘더 글로리’ 등을 연출한 안길호 감독이 연출을 맡았고 드라마 ‘1리터의 눈물’을 쓴 오시마 사토미 작가가 극본을 집필했다. 이 작품은 구글이 공개한 ‘2025년 올해의 검색어’ 일본 드라마 부문 1위에 오르는 등 큰 성과를 내 한·일 합작의 성공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지난해 10월 공개된 넷플릭스 드라마 ‘로맨틱 어나니머스’도 배우 한효주와 오구리 슌이 함께 출연했다. 영화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의 쓰키카와 쇼 감독이 연출했으며 영화 ‘퐁당퐁당 러브: 더 무비’의 김지현 감독이 대본을 썼다. 이 작품 또한 호평을 받았으며 넷플릭스 상위권에 올랐다.

앞으로 나올 한·일 합작 콘텐츠도 많다. 올해 디즈니플러스에서 공개 예정인 ‘메리 베리 러브’도 한·일 합작에 해당한다. CJ ENM이 일본 지상파 방송사인 닛폰테레비와 공동 제작하는 작품이며 디즈니플러스의 첫 다국적 작품에 해당하기도 한다. 배우 지창욱과 이마다 미오가 출연한다. CJ ENM 글로벌콘텐츠제작팀 이상화 CP가 기획을 맡았고 드라마 ‘시맨틱 에러’의 김수정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극본은 드라마 ‘이혼보험’을 집필한 이재윤 작가가 쓴다. 여기에 일본 현지 제작진이 참여해 함께 드라마를 만든다.

일본 원작을 활용한 작품도 제작된다. 일본 SF 고전 영화 ‘가스인간 제1호’를 원작으로 한 넷플릭스 영화 ‘가스인간’도 한·일 합작으로 만들어진다. 영화 ‘부산행’의 연상호 감독과 일본 가타야마 신조 감독이 각각 극본과 연출을 맡았다. 오구리 슌과 아오이 유우가 출연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로드’는 한·일 합작 만화 ‘푸른 길’을 원작으로 한다. 배우 손석구와 나가야마 에이타가 주연을 맡았다. 드라마 ‘D.P.’의 한준희 감독이 연출한다.

제작비 상승으로 시작된 합작, 지속 가능하려면

이처럼 활발하게 진행되고 한·일 합작의 이면엔 산업 구조의 큰 변화가 자리하고 있다. 최근 국내 콘텐츠 산업의 패러다임은 완전히 급변하고 있다. K콘텐츠 열풍으로 글로벌 시장에선 전성기를 누리고 있지만 내수 시장에선 위기를 맞이했다. 특히 제작비 부담으로 악순환이 발생하고 있다. 넷플릭스를 비롯한 글로벌 OTT의 국내 진출 이후 제작비는 크게 상승했는데 급기야 최근엔 국내 방송사나 제작사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렀다. 가까스로 제작을 한다고 해도 해외 시장에서 크게 흥행하지 않고선 투자 수익을 회수하기 힘들다.

심지어 제작비 상승의 원인으로 지목됐던 글로벌 OTT조차 한국 콘텐츠 제작비를 부담스러워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한국에서 글로벌 대작을 다수 만들기보다 한국 창작진이나 배우를 활용하면서도 제작비 부담이 적은 다른 나라의 제작사 등과 함께 글로벌 단위로 작업을 진행하는 것을 선호하고 있다. 지금까지 나왔거나 앞으로 공개될 글로벌 합작 콘텐츠 대부분이 글로벌 OTT 작품인 것도 이와 연결된다.

제작비 가운데선 특히 배우 출연료의 영향이 크다. 국내에선 배우 출연료가 제작비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반면 일본에선 배우 출연료가 한국에 비해 낮은 편이다. 한국은 일본에 비해 적게는 3~4배 이상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배우들은 드라마나 영화 자체로 벌어들이는 수입보다 광고에 출연하여 버는 수입이 높은 편이다. 따라서 글로벌 합작을 통해 한·일 배우를 두루 쓰면 출연료 부담도 일정 부분 줄어든다. 이를 포함해 전체 제작비로 따지면 일본이 한국의 절반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한국 제작사나 글로벌 OTT 입장에선 한·일 합작이 생존을 위한 자구책이 된 상황이라 할 수 있다.

나아가 한·일 합작으로 그 이상의 효과도 낼 수 있다. 한국과 일본은 서로 문화나 정서가 비슷하기 때문에 큰 이질감 없이 협업이 가능하다. 일본 콘텐츠 시장의 장점도 흡수할 수 있다. 일본인들은 오늘날까지도 타국 콘텐츠보다 자국 콘텐츠에 대한 충성도가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일 합작 작품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갖고 소비하는 경향이 크다. 또한 과거 ‘겨울연가’ 사례에서 알 수 있듯 한번 흥행에 성공하면 오랜 시간 팬덤이 유지되어 큰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 측에서도 우리나라와의 협업을 중요한 기회로 삼고 있다. 일본은 내수 시장은 큰 편이지만 글로벌 시장에선 한국에 비해 뒤처지고 있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이에 따라 한·일 합작을 통해 글로벌 노하우를 익히고 세계 시장에 적극 진출하고자 한다.

생존을 위한 길이자 새로운 활로로 각광받고 있는 한·일 합작. 그러나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다. 한국 콘텐츠 업계와 일본 콘텐츠 업계는 ‘코피티션(Coopetition)’ 관계에 해당한다는 점이다. 코피티션은 ‘협동(Cooperation)’과 ‘경쟁(Competition)’의 합성어다. 양국은 아시아 콘텐츠를 대표하는 나라로서 치열한 경쟁 관계에 놓여 있다. 하지만 서로의 단점을 극복하고 글로벌 단위로 시장 규모를 확장하기 위해 협업을 선택하고 있다. 그렇다면 훨씬 더 꼼꼼하게 계약을 진행하고 IP에 대한 권리나 수익 배분 문제를 잘 살펴봐야 한다. 형식적인 협업에 그치지 않고 각자의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안도 심도 있게 고민해야 한다. 그렇게 됐을 때 비로소 한·일 협업의 의미가 살아나고 오랫동안 지속 가능한 글로벌 합작 모델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김희경 인제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영화평론가 kimhk@inje.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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