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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낼 땐 0%·도착 땐 폭탄?"…수출기업 관세 리스크에 '초비상'

입력 2026-02-26 11:45   수정 2026-02-26 12:14


“오는 7월 이후 관세가 추가로 붙으면 비용은 누가 부담합니까.”

최근 수도권의 한 자동차 부품 업체 임원은 미국 바이어와의 화상회의에서 이 같은 질문을 받았다. 현재는 15%의 한시 관세가 적용되고 있지만, 선적 이후 미국 통관 시점에 새로운 관세가 부과될 가능성이 거론되자 계약서의 ‘리스크 배분’ 조항이 협상의 핵심 쟁점으로 떠오른 것이다.

이 임원은 “추가 관세를 전제로 비용 분담 구조와 가격 조정 조항을 전면 재검토하고 있다”며 “계약서 문구 하나가 수익성을 좌우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미국 연방대법원이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에 기반한 상호관세에 제동을 건 이후, 미 행정부는 대체 근거로 무역법 제122조, 제301조, 제232조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현재는 122조에 근거한 10%의 한시 관세가 150일간 적용 중이지만, 해당 조치는 추후 15%로 인상된 뒤 7월 만료 예정이다. 동시에 301조·232조 조사 절차가 병행되고 있어, 만료 직후 보다 지속적이고 센 관세 체계로 전환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업계에서는 향후 반년 사이 관세 체계가 두세 차례 바뀌는 ‘과도기’에 진입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선적 땐 0%, 통관 땐 고율…시차 리스크 부각
기업들이 가장 우려하는 지점은 선적 시점과 미국 통관 시점 간 시간차다. 한국에서 제품을 출하할 당시에는 관세가 없거나 낮았더라도, 미국 항만에서 통관하는 시점에 301조나 232조 관세가 발효되면 새로운 세율이 적용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 관세는 통상 미국 수입자가 통관 시 세관에 납부하는 구조다. 그러나 관세 인상은 곧 수입자의 총비용 상승을 의미하고, 이는 가격 재협상 과정에서 수출 기업에 전가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연간 물량을 고정가로 확약한 계약은 관세 변동분을 즉각 반영하기 어렵다. 이 경우 수출 기업이 마진을 흡수하거나, 납기 이후 사후 정산 협상에 들어가야 하는 부담을 떠안게 된다.

김세진 법무법인 세종 통상산업정책센터장은 “최근 관세 체계 전환을 전제로 계약 구조와 통관 일정 관리에 대한 문의가 빠르게 늘고 있다”며 “이 과도기에 수출 물량 계획과 거래 구조, 계약 조건을 어떻게 재설계하느냐에 따라 기업 실적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전략산업 '복합 리스크' 직면
자동차 부품, 2차전지 소재, 반도체 장비, 철강 업계의 긴장감은 특히 크다. 이들 산업은 대미 수출 비중이 높을 뿐 아니라 301조·232조 적용 가능성이 직접 거론되는 분야다. 더구나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반도체지원법(칩스법)에 따른 투자 인센티브와 관세 부담이 동시에 작용하는 구조여서 복합적인 비용 분석이 요구된다.

예컨대 미국 현지 투자로 세액공제나 보조금을 받더라도, 완제품이나 핵심 부품에 고율 관세가 부과되면 전체 사업 수익률 계산이 다시 흔들릴 수 있다. 관세와 인센티브를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양면 계산’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다.

타이어, 석유화학, 기계장비, 가전 업계도 122조 만료 이후 301·232조 적용 관세로 전환될 경우 세율이 추가 상승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 만료 이전 선적을 앞당겨 물량을 소화할지, 계약서에 가격 자동 조정이나 재협상 조건을 명시할지에 따라 손익이 크게 달라질 수 있어서다.

조선 기자재, 태양광, 의약품, 화장품 등은 301조 신규 조사나 232조 적용 품목 확대 여부가 최대 변수다. 특정 품목이 ‘국가 안보’ 범주에 포함될 경우 고율 관세가 부과될 수 있어 산업 전반에 연쇄적 파급효과가 예상된다. 김세진 센터장은 “잠재적 관세 대상이 될 가능성을 전제로 거래 구조와 HS코드 분류를 미리 점검해둘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계약 단기화 확산 전망…생산·투자 전략도 재조정
이 같은 불확실성 속에서 기업들은 ‘계약 단기화’라는 현실적 선택지를 검토하고 있다. 1년치 물량을 고정가로 묶기보다는 분기 단위로 조건을 재설정하거나, 관세 발효 시점에 따라 부담 방식을 자동 조정하는 구조로 계약의 ‘호흡’을 짧게 가져가려는 움직임이다.

다만 자동차·기계 등 설비집약적 산업은 일정 수준 이상의 물량이 확보돼야 생산계획과 원가 구조를 안정적으로 설계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고민이 깊다. 계약을 단기화하면 관세 리스크에는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지만, 그만큼 가동률 관리와 중장기 투자 판단의 불확실성은 커질 수밖에 없다.

업계 관계자는 “지금은 관세가 언제 어떤 방식으로 바뀌더라도 손익을 방어할 수 있는 계약 구조를 만드는 게 핵심”이라며 “관세 불확실성이 해소되기 전까지는 수출 계약 자체가 기업 리스크 관리의 최전선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은 기자 hazz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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