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그렇다, 봄은.
반짝 따뜻한 미소를 보였다가 다시 차갑게 얼굴을 굳히기를 거듭하며 사람의 참을성을 시험한다.
사실 제가 무엇이 급하겠는가. 오로지 기다리는 사람이 조바심 날 뿐.
그렇게 오다 말다 하는 것처럼 보이는 봄이지만, 결국 오지 않은 해는 없었다.

“머언 들에서
부르는 소리
들리는 듯
못 견디게 고운 아지랑이 속으로
달려도
달려가도
소리의 임자는 없고,
또다시
나를 부르는 소리,
머얼리서
더 머얼리서
들릴 듯 들리는 듯……”
개강 직후의 쌀쌀한 캠퍼스에서 친우들과 이 노래를 부르곤 했다. 일제강점기에서 해방 직후까지 활동한 시인 윤곤강의 시에 최병철이 곡을 붙인 ‘아지랑이’다.
후일 작곡가를 만나 ‘이른 봄이면 늘 이 노래를 불렀다’고 했더니 그는 내 손을 꼭 잡았다. 그는 누구나 봄을 기다리던 2025년 이른 어느 날 아지랑이 너머로 떠났다.
퇴계 이황은 한시 춘일계상(春日溪上·봄날 시냇가에서)에서 이른 봄의 흥취를 이렇게 읊었다.
“눈 녹고 얼음 풀리니 시내 맑게 흐르고
은은한 실바람에 버들가지 둑을 스치네
병 앓다 일어나 보니 그윽한 흥 넘치고
향긋한 풀 싹트려 하니 더욱 아름답구나”

빅토르 위고는 ‘겨울이 지나고’에서 ‘밤은 사라지고, 겨울은 달아나고, 이제 빛이,/들판에서, 숲속에서, 어디서나 맨 먼저 찾아온다’고 노래했다. 영국 시인 크리스티나 로제티도 ‘봄’에서 죽음을 뚫고 다시 일어나는 생명의 장엄함을 그렸다.
“겨울 내내 서리에 잠겼던,
씨앗들, 뿌리들, 열매의 씨들,
무엇이 그들의 수액을 끌어올려
새순을 돋게 할까,
여린 초록의 끝,
잎이든, 잎새든, 껍질이든,
땅 아래 터져 나오는
숨겨진 생명을 알리며,
죽음이 무덤 속에서 키워낸 생명.
바람이 부드럽게 불어 녹이고,
비가 내려 흠뻑 적시고,
햇님이 때때로 깨어나 내려다본다.
어린 풀이 들판에 돋아나고,
여린 잎이 이른 산울타리 나무를 덮고,
씨앗, 뿌리, 열매의 씨,
물이 차오르며 부풀어, 새순을 내밀고,
곱슬머리 고사리 길가에 돋아나고,
새들이 노래하며 다시 짝을 짓는다.”
이 계절의 화창한 날이면 슈만 교향곡 4번의 마지막 악장으로 이어지는 현과 금관의 장엄한 연결구를 떠올리곤 한다.
스무 해 전, 라인 강변의 밋밋하고 높은 언덕들이 갈색에서 푸른색으로, 마침내 울긋불긋한 꽃들의 색채로 피어나는 광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았다. 라인 강변의 뒤셀도르프에 살았던 슈만도 그 장엄한 생명의 부활을 보았을 것이다. 슈만에게는 ‘봄의 교향곡’이라고 불리는 교향곡 1번이 있지만, 내게는 이 곡이 그에 못잖은 ‘봄 교향곡’이다.
로제티가 시 ‘봄’에서 언급했듯이 봄의 정경을 바꾸는 가장 큰 감각은 다시 돌아와 소식을 전하는 새들의 노래다.
영국 근대 작곡가 랄프 본 윌리엄스의 ‘종달새의 비상(The Lark Ascending)’은 3월 초 하늘 높이 날아올라 길게 지저귀는 종달새의 노래를 그린다. 2006년 김연아 선수가 피겨 시니어 무대에 데뷔하면서 배경음악으로 선보였던, 이후 그의 장려한 비상을 예고한 작품이기도 하다.
19세기 영국 시인 조지 메레디스가 쓴 같은 제목의 긴 시를, 본 윌리엄스는 바이올린 독주와 관현악의 어울림으로 표현했다. 시의 일부만 옮기면 다음과 같다.
“솟구쳐 오르며 선회하기 시작하고,
끊김없이 수많은 고리로 이어진
은빛 소리의 사슬을 드리운다,
짹짹거림, 휘파람, 흘리는 소리와 떨림,
서로 얽혀 넓게 퍼져나가며,
잔물결이 잔물결 위로 말려들고
소용돌이가 소용돌이 속으로 휘감기는
물결 아래 물살의 보조개처럼,
급히 달려가는 음표들의 무리,
빠르게 흘러 거의 하나인 듯하지만,
떨리는 소리 변주되어 반복되고
날아가면서 울리고 머무른다.”
종달새는 그 아름다운 소리만큼이나 하늘 높이 솟아오르는 자태로도 수많은 예술가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모양이다. 메레디스와 비슷한 시기의 독일 낭만주의 소설가 겸 시인 뫼리케도 시 ‘종달새’에서 비슷한 정경을 표현했다.
“도랑과
잿빛 울타리 사이를,
외투 깃을 세우고,
두 손을 주머니에 찌른 채,
나는 이른 삼월 아침을
어슬렁거린다.
(중략)
갑자기?하나의 소리!
머뭇거리듯, 여리게, 떨리는 환희가,
천천히,
점점 더
높이
솟아오른다!
나는 구름 속을 찾는다.
내 머리 위로,
빙빙 돌며, 사라지듯, 팔락거리며, 복된 날개로, 눈에 띄지 않을 듯,
검은 점처럼,
퍼덕이며,
점점 더
밝아지는 빛줄기 사이,
저
첫 종달새!”

이렇게 연한 햇살이 새순을 간지럽히는 시기에 떠올리는 또 하나의 선율이 슈베르트의 가곡 ‘봄의 믿음(Fruhlingsglaube)’다.
‘봄의 신앙’이라고 번역되기도 했지만, 종교적 신앙이 아니라 결국 봄은 오고 말리라는 믿음을 표현했으니 ‘봄의 믿음’으로 부르는 것이 더 적당할 듯하다. 독일 낭만주의 시인이자 문학사가, 언어학자인 울란트의 시에 곡을 붙였다.
“부드러운 바람들이 눈을 떠서
밤낮으로 속삭이며 불어온다
곳곳에서 무언가를 만들어낸다
오, 싱그러운 향기여, 오, 새로운 소리여!
자, 가련한 마음이여, 불안해하지 말라!
이제 모든 것이 바뀔 것이다.
세상은 날마다 더 아름다워지고
무엇이 될지 아무도 모른다.
꽃피움은 끝나지 않는다.
가장 먼, 가장 깊은 골짜기도 꽃을 피운다
자, 가련한 마음이여, 고통을 잊어라!
이제 모든 것이 바뀔 것이다.”
이 노래에는 유난히 ‘미래’와 ‘확신’을 강조하는 조동사들이 눈에 뜨인다.
모든 것은 새로워질 것임에 틀림없고(muss), 모든 것이 새로워질 것이며(wird) 꽃의 피어남은 끝이 없을 것(will)이다.

아직 오지는 않은 일이지만, 의심할 필요 또한 없다. 매년 거듭해 경험한 환희이고, 이 세상이 끝나지 않는 한 바뀌지 않을 일이기에.
슈베르트는 이 시에 달콤하면서도 엄숙한 기운이 묻어나는 선율을 붙였다. 가련한 마음을 표현할 때 살짝 어두운 단조로 바뀌었다가 다시 피어나는 봄을 노래할 때는 계절에 대한 이 ‘믿음’이 일종의 종교적인 신앙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예전처럼 ‘봄의 신앙’으로 불러도 괜찮은 걸까?
노래 마지막에 확인하듯 되풀이되는 가사를 다시 곱씹어 본다.
‘이제 모든 것이 바뀔 것이다.’
유윤종 음악평론가·클래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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