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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순의 시인은 말한다…떠나봐야 보인다, 마음 속 천국…

입력 2026-02-26 16:33   수정 2026-02-26 16:34


“여행이라기보다는 학습이었어요. 내 문학 여정에 큰 도움이 됐어요.”

팔순의 시인은 도리어 가르침을 받았다고 했다. ‘풀꽃시인’ 나태주(81)는 6년간 매달 후원해온 소녀 네마 니코데무를 만나기 위해 지난해 편도로 20시간 이상 걸리는 탄자니아에 다녀왔다. 43년간 교직 생활을 한 시인은 국제구호개발 비정부기구(NGO) 월드비전과 함께 1주일간 그곳에 머물며 현지 아이들에게 일일 수업을 했다. 그는 이 같은 여정을 시 134편과 연필화 62점으로 그려내 여행 시집 <돌아보니 그곳이 천국이었네>를 최근 펴냈다. 충남 공주 나태주풀꽃문학관을 지키다가 신간 관련 일정으로 서울을 찾은 그를 서울 중림동, 어른을 위한 그림책방 ‘소나기서점’에서 만났다.
“시인이라는 걸 잊어야 시를 쓴다”

“탄자니아, 사실 어이없는 여정이었어요. 짐작도 안 되고 불편하고 불안했어요. 흔히 탄자니아에 간다고 하면 킬리만자로나 사파리를 얘기하는데 나는 흙먼지 날리는 사막, 마을 우물, 애들 학교랑 시골집만 보고 왔으니…. 그런데 참 도움이 됐어요. 사진작가 후지와라 신야가 말했듯이 ‘내가 나한테 지는 법을 배우기 위해’ 필요한 여행이었어요.”

떠나와야 보이는 것이 있다. 나태주는 “탄자니아에 가서 보니 한국이 물질적으로나 생활 여건 측면에서나 천국이었는데 사람들 마음은 지옥에 살고 있다”고 했다.

“한국에 와서 돌이켜 보니 물질적인 건 부족해도 서로 나누며 살 줄 아는 탄자니아가 천국 같아 보였어요. 그래서 시집 제목을 ‘돌아보니 그곳이 천국이었네’로 지었죠. 결국 마음속에 천국을 건설해야 해요. 그 과정에 도움을 주는 게 문학이라고 생각합니다.”

‘나태주가 나태주에게 지는 법’이 필요했던 건 그가 유독 사랑받는 시인이라서다. “자세히 보아야/예쁘다//오래 보아야/사랑스럽다//너도 그렇다.” 그의 대표작 ‘풀꽃’은 시집 한 권 안 사본 사람조차 전문을 외운다. 그는 흔치 않게 살아서 자신의 이름을 딴 문학관과 문학상을 갖는 영광까지 누리고 있다. “내 문학 세계를 기리는 전집, 문학관, 문학상, 문학축제까지 생기니 내심 부담스럽더라고요. 오죽하면 문학관을 열 때 딸(나민애 서울대 교수)이 그러더라고요. ‘아빠는 이제 화석이 돼야 해요.’ 지난해 7월 문학관을 증축하고서는 그 부담이 굉장히 커서 벗어버리고 싶었어요.”

그는 “좋은 시를 쓰려면 ‘시인’을 내려놔야 한다”고 말하는 시인이다. “저는 어딜 가서 한 번도 ‘시인 나태주입니다’ 하고 인사한 적이 없어요. ‘저는 공주에서 오늘 기차 타고 왔고요, 시를 쓰고 있는 나태주라고 합니다’ 이렇게 인사하죠. 내가 시인이라는 걸 잊어버려야 새 시가 나오는 거예요.”
그리움의 시인
나태주 시에서 주요한 소재가 ‘풀꽃’이라면 주된 정서는 ‘그리움’이다. 인간은 뭔가를 상실한 뒤에야 소중함을 깨닫는다. 그가 미리 정해둔 묘비명은 “많이 보고 싶겠지만 조금만 참자”라고. 그는 독자를 향한 끝없는 그리움으로 시집과 산문집, 동화집, 시화집 등 지금껏 200여 권을 냈다. 인공지능(AI)과의 문답을 담아내는 모험도 주저하지 않는다. ‘풀꽃시인’이라는 호칭이 비좁게 느껴지지는 않는지 묻자 그가 답했다. “조금 섭섭하죠. 풀꽃은 너무 작잖아요. 그래도 뭐 그렇자고 하니까 어쩔 수 없는 거죠.” 자세를 고쳐 앉은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사람들이 ‘풀꽃’이라는 시에 감응하는 건 시대적 요구가 있어요. 그동안 큰 것, 멀리 있는 무언가만 경쟁적으로 좇다가 이제는 반대로 작은 것, 가깝고 오래되고 흔한 것을 사랑하자는 움직임이 있는 거죠. 그런 데서 나는 희망을 봐요.”

특유의 정겨운 말투는 자신의 시론을 말할 때면 매서울 정도로 단호했다. “시에는 세 단계가 있어요. 초기 시는 내 샘물을 길러서 쓰는 거고, 점점 다른 사람의 물을 받아 웅덩이가 커지죠. 내 문제만 쓰는 게 아니라 다른 이들의 마음을 쓰는 거예요. 거기서 더 커져서 저수지, 그러나 나의 고유한 샘물에서 여전히 물이 솟는 상태이기를 바라요. 나의 개성을 잃지 않으면서 보편성을 얻는 단계를 꿈꾸는 거죠.”

주위 문인에게 “나 형은 이제 그만 써도 되지 않느냐”는 푸념을 들으면서도 다작을 불사하는 그는 ‘개구리알론’을 들려줬다. “개구리가 알을 한 번에 400개 정도 낳는대요. 100개는 뱀이 잡아먹고, 100개는 쥐가 먹고, 100개는 죽고, 남은 100개는 산다는 거죠. 시도 많이 써서 고르는 편이 좋겠습니다.”

그는 출판사 편집자, 특히 젊은 여성 신인 편집자의 말을 따르는 게 철칙이라고 했다. 주요 독자층을 생각해서다. 다음 시집으로는 ‘음악 시집’을 준비 중이다. 시를 읽으면서 그 시를 토대로 만든 노래를 함께 감상할 수 있도록 QR코드를 새겨 넣겠다는 구상이다. 휴대폰으로 쓰고 읽는 시다. 평소 시상이 떠오르면 스마트폰에 메모해두는 시인은 이날 기차에서도 시를 하나 적어뒀다고 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공주로 돌아가는 기차에서도 그는 시를 썼을 것이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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