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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년전 왕실의 보석…찬란한 빛에 매혹되다

입력 2026-02-26 17:01   수정 2026-02-27 01:17

230여 년 전, 프랑스혁명의 거친 물결 속에 왕실 보석이 자취를 감췄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보석 약탈 사건으로 기록된 1792년 9월의 이 사건은 파리 콩코르드광장 옆, 지금의 오텔드라마린에서 벌어졌다. 그로부터 두 세기 넘게 흐른 지금, 왕실 보물창고이던 그 자리에 보석들이 돌아왔다.

카타르 왕실의 알 타니 컬렉션과 영국 빅토리아&앨버트박물관(V&A)이 공동 기획한 ‘왕가의 보석들(Dynastic Jewels): 권력, 명성 그리고 열정 (1700~1950)’ 전시 이야기다. 이번 전시는 역사적 보석들이 어떻게 권력의 상징이 됐는지, 신흥 부호들이 보석을 통해 어떤 명성을 얻고자 했는지 그리고 왕실의 사적인 사랑이 어떻게 보석에 박제됐는지를 깊이 있게 조명한다.

역사는 또 한번 되풀이됐다. 애초 전시의 핵심이던 외제니 황후의 진주 티아라 등 석 점은 작년 루브르박물관 도난 사건으로 인해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다. 140여 점의 보석이 모인 이번 전시는 영국 왕실 컬렉션, 루브르, 까르띠에·쇼메·멜레리오·반클리프아펠의 헤리티지 컬렉션에서 대여한 작품으로 이뤄졌다. V&A와 알 타니 컬렉션 소장품 대부분은 파리에서 처음 선보인 것이다.

인간은 왜 이토록 작고 단단한 광채에 자신의 영혼과 역사를 투영해 왔을까. ‘소장품이 된 보석’은 누군가의 권력이었고, 때론 간절한 사랑의 증표였고, 어쩌면 생존을 위한 마지막 자산이었을지도 모른다. 수백 년의 풍파 속에서 주인은 바뀌고 왕조는 몰락했을지언정, 그 찬연한 빛만은 박제된 채 살아남아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오늘날 우리가 보석을 탐하는 이유는 단순히 그 희소성 때문이 아니다. 유한한 삶을 사는 인간이 무한한 시간에 가닿기 위해 남긴 ‘가장 단단한 기록’을 마주하고 싶어서가 아닐지. 소장품이 된 보석들은 파란만장한 삶의 궤적을 담아낸다. 보석의 광채 뒤에 숨은 인간사의 가장 뜨거웠던 장면을 마주하는 시간이다.

같은 맥락에서 우리가 현대의 보석을 소장한다는 건 수만 시간 공정 끝에 탄생한 미학적 정수를 몸에 입는다는 뜻이다. 박물관 유리창 너머로 감상하던 예술을 내 일상으로 끌어들이는 가장 능동적인 예술의 향유이자 새롭게 쓰일 서사의 시작이다.
권력의 무게 나폴레옹의 왕관…사랑의 증표 빅토리아의 반지
원석의 탄생부터 제국의 몰락까지…도슨트로 나선 알 타니 컬렉션 디렉터
프랑스 파리 콩코르드 광장의 오텔드라마린에서 열리고 있는 ‘왕가의 보석들’ 전시는 보석이 되기 전, 원석에서 시작한다.

전시는 4개 갤러리로 구성됐다. 첫 번째와 두 번째 갤러리는 원석 그 자체와 티아라의 역사에 집중한다. 골콘다의 별(57.31캐럿), 브리올렛 오브 인디아(90.38캐럿) 등 역사가 새겨진 원석들과 함께 19세기부터 아르데코 시대까지 11점의 티아라가 연대순으로 펼쳐진다. 세 번째 갤러리는 보나파르트·로마노프·영국 왕실 세 왕조의 보석을 나란히 놓고 권력과 사랑이 어떻게 한 점의 보석에 응축되는지를 보여주며, 마지막 갤러리는 왕조의 몰락 이후 보석이 어떻게 이동했는지를 살펴본다. 1937년 나와나가르 마하라자가 까르띠에에 의뢰한 루비 목걸이와 파티알라 목걸이가 전시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이번 전시의 핵심이 된 ‘알 타니 컬렉션’은 현 카타르 국왕의 사촌이자 미술품 수집가인 셰이크 하마드 빈 압둘라 알 타니의 소장품들. 그는 전시를 열며 “이 보석들은 권력과 명성의 상징이자, 역사의 위대한 순간을 함께해 온 유산”이라고 했다.

한국경제 아르떼 독자들을 위해 알 타니 컬렉션의 디렉터인 아민 자퍼 박사가 섹션별로 직접 해설에 나섰다. 그는 V&A 큐레이터와 크리스티 인터내셔널 아시아 미술 디렉터를 거쳐 알 타니 컬렉션을 이끌고 있는, 동서양 왕실 문화사 전문가다.


▷이 전시가 유럽뿐 아니라 아시아 관람객에게도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아시아 문명에서 보석은 단순한 장신구가 아닙니다. 특히 인도에서는 보석이 우주의 행성들과 연결돼 있다고 믿습니다. 행성의 에너지가 보석에 깃든다고 보는 거죠. 사람들이 보석을 몸에 지니는 것은 자신을 보호하고, 힘을 얻고, 때로는 치유하기 위해서입니다. 현대 유럽에서는 이런 믿음이 인도만큼 직접적이진 않지만 보석이 일종의 부적처럼 상징적 의미를 가진다는 점은 다르지 않아요. 지구상에 존재하는 것 중 가장 작은 부피에 가장 큰 가치가 응축된 것이니까요.”

▷전시 공간인 오텔드라마린에도 특별한 의미를 뒀다고요.

“이 건물은 예전에 왕실 보석들을 보관하던 곳이었습니다. 먼저 과거 프랑스 왕실 소유였던 보석들을 보여주는 데 집중했어요. 관람객들이 이 보석들이 ‘원래의 집’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느끼기를 바랐습니다. 인도산 다이아몬드의 중요성도 강조했습니다. 18세기 중반까지 전 세계의 위대한 다이아몬드는 모두 인도에서 나왔거든요. 당시 인도에선 빛의 굴절과 반짝임을 극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원석이 가진 본연의 무게를 최대한 살리는 것을 우선시했습니다.”

Power 보석, 권력을 입다

▷티아라가 탄생한 역사적 배경이 인상적입니다.

“이 공간의 핵심은 티아라의 사회적·정치적 역할입니다. 오늘날 왕실 행사에서 티아라는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형식이 만들어진 건 사실 나폴레옹 시대입니다. 혁명 이후 새로운 질서를 세우려 했던 나폴레옹과 마리 에티엔 니토가 고대 그리스·로마 여신상을 참조해 만들어낸 것이죠. 당시 유행한 ‘엠파이어 스타일’ 드레스는 화려한 무늬를 걷어내고 우아한 주름과 드러난 목선을 강조했습니다. 보석을 주인공으로 세우기 위한 철저한 기획이었죠. 그 결과 티아라와 목걸이, 귀걸이, 팔찌를 세트로 갖추는 ‘파뤼르(parure)’ 문화가 완성됐고, 이는 19~20세기 유럽 상류층의 표준이 됐습니다. 조세핀 황후의 진주 목걸이와 나폴레옹의 대관식 검이 나란히 놓여 보석이 어떻게 국가의 위엄을 완성했는지 보여줍니다.”

Prestige 보석, 이름을 빛내다

▷보석이 권력의 언어라면, 신흥 부호들에게는 또 다른 의미였겠지요.

“맞습니다. 보석은 사회적 위치를 눈앞에 확인시켜 줍니다. 때로는 감탄을, 때로는 묵직한 위압감을 불러일으키면서요. 이런 속성은 19세기 말 미국의 ‘도금 시대’에 더욱 노골적으로 나타났습니다. 1903년 까르띠에가 제작한 맨체스터 티아라가 그 단면을 잘 보여줍니다. 쿠바계 미국인인 콘수엘로 이즈나가는 막대한 자본으로 영국 귀족 가문에 입성한 이른바 ‘달러 프린세스’였습니다. 1000개가 넘는 다이아몬드가 박힌 티아라는 그가 새로 얻은 신분을 세상에 알리는 수단이었습니다. 도금 시대에 루이 16세 스타일을 선택한다는 건 자신을 고위 귀족과 동일시한다는 의미였고요. 미국이나 인도, 중동의 부호들이 궁전을 지을 때 베르사유를 모델로 삼는 것과 같은 이치죠. 혁명 이전 프랑스의 양식은 권력과 권위를 상징하는 가장 강력한 언어였으니까요.”

Passion 보석, 사랑을 새기다

▷‘보석은 감정적 매개체’라는 말이 전시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같네요.

“맞습니다. 보석은 본질적으로 매우 감정적인 물건입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마다 보석을 주문하고, 건네고, 교환하기 때문이죠.”

▷빅토리아 여왕과 앨버트 공의 보석 이야기가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사촌 관계인 두 사람은 깊은 사랑 끝에 결혼했습니다. 앨버트 공은 결혼 직후 여왕을 위해 사파이어 코로넷을 직접 디자인했고, 5년 뒤에는 에메랄드 티아라의 도안도 손수 그렸습니다. 지금도 도면이 남아 있죠. 이번 전시는 185년 만에 두 보석을 한 공간에서 다시 만나게 했습니다. 앨버트 공은 왕비의 배우자로만 남은 분이 아니었습니다. 1851년 런던 대박람회를 주도한 기획자였고, 그 박람회에 출품된 보석들이 훗날 V&A의 초기 수집품이 됐습니다. ‘예술과 디자인의 최고 산물을 전시하고 보존한다’는 V&A의 핵심 사명이 보석에서 시작된 셈이죠.”

그 이후, 보석 권력의 이동

▷1차 세계대전 이후 어떤 변화가 생겼나요.

“1차 세계대전 이후 러시아, 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오스만 제국이 잇따라 무너졌습니다. 그 빈자리를 미국의 신흥 부호들이 채웠고, 이란·인도·태국 왕실이 새로운 주요 고객이 됐습니다. 1930~1940년대 유럽이 불황과 전쟁의 그림자 속에서 과시적 소비를 줄이는 동안, 아시아 왕실은 까르띠에와 반클리프 아펠에 전례 없는 규모의 주문을 쏟아냈습니다. 그 흔적이 마지막 전시실에 담겨 있습니다.”

▷셰이크 하마드는 어떤 기준으로 컬렉션을 수집하나요.

“특별한 규칙은 없습니다. 가장 중요한 건 작품이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는 겁니다. 재료의 특성과 디자인이 어떻게 어우러지는지를 중점적으로 봅니다.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인 까르띠에 나와나가르 루비 목걸이(1937)가 대표적입니다. 이 목걸이를 찾기 위해 수년을 공들이셨어요. 왕실 소장품에서 나온 ‘피전 블러드’(pigeon blood·최상급 루비) 119개를 한꺼번에 만나는 건 극히 드문 일입니다. 그 희귀성 하나만으로도 압도적인 가치를 지닙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이 가는 작품은 무엇인가요.

“모든 작품이 소중해 고르기가 쉽지 않지만, 정서적으로 가장 가까이 느껴지는 건 더프린 가문의 보석입니다. 이 보석의 주인인 더프린 후작부인이 2년 전 세상을 떠났는데, 저의 아주 가까운 친구였지요. 이렇게 유물의 이력을 살피는 건 중요합니다. 누가 소유했고 누가 착용했는지를 알 때, 사회적·감정적 가치가 비로소 온전해지니까요.”

파리=김인애 아르떼 객원기자/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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