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다섯 살인데요…. 지난 4년 동안 아픈 아빠 모습만 보여준 게 제일 마음에 남아요.”30대 초반인 K는 대장암을 처음 진단받았을 때 이미 암이 전신으로 퍼져 있었다. 그럼에도 지난 몇 년간 그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항암치료를 받으면서도 일상을 유지하려 애썼다. 그러나 최근 뼈로 전이가 진행되면서 통증이 심해졌다. 통증 조절을 위한 방사선 치료를 했고, 다행히 통증은 줄었다.
병동 상담실에서 다시 만났다. 나는 K에게 이렇게 물었다. “지금 상태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나요?” 그는 더 이상 효과적인 치료가 어렵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두 번째 질문을 던졌다. “병이 더 진행되면 무엇이 제일 두려운가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는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딸에게 아프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통증에 대한 두려움과 동시에 아버지라는 역할의 무게가 느껴졌다. 그날 나는 마지막 질문을 하지 못한 채 상담실을 나왔다. 원래 던지려던 질문은 이것이었다. “그 목표를 위해서 포기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고, 또 포기할 수 없는 건 무엇일까요?” 이 질문은 외과 의사이자 작가인 아툴 가완디가 제안한 방식이다. 의료진이 답을 제시하는 대신, 환자가 스스로 자신의 상황을 생각하게 만드는 질문 방법이다.
의사가 환자에게 하는 질문에는 두 종류의 문(門)이 있다. 한 번에 열어젖히는 여닫이문과 조금씩 밀어 보며 다가가는 미닫이문이다. 정보를 전할 때는 여닫이문이 필요하다. 하지만 삶의 방향을 함께 고민해야 하는 순간에는 미닫이문을 선택하게 된다. 환자의 준비를 살피며, 열었다가 다시 닫을 줄 아는 문이다.
치료가 어려워지는 시점에 의사의 역할은 달라진다. 암 치료가 더 이상 의미를 갖지 못하는 순간이 온다. 그때 필요한 것은 무의미한 치료가 아니라, 남아 있는 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지에 대한 선택을 돕는 일이다. 이 상황에서 필요한 것이 바로 세 가지 질문이다. 지금 자신의 상태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앞으로 무엇이 두렵고 무엇을 바라는지, 그 목표를 위해 포기할 수 있는 것과 포기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인지.
K는 퇴원을 앞두고 나에게 다시 물었다. “예전에 효과가 있었던 항암제를 다시 쓰면 안 되나요? 기대는 크지 않지만, 조금이라도 늦출 수 있다면요.” 나는 더 이상의 치료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가완디는 말한다. 궁극적인 목표는 ‘좋은 죽음’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좋은 삶’을 살도록 돕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떠올리며, 이번에는 질문을 미루지 않으려 한다.
K에게, 그 세 번째 질문을 한다. 이 세 가지 질문은 환자에게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질병’이라는 말을 각자의 문제나 일로 바꿔 읽어도, 질문은 그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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