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와 중앙노동위원회는 2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노조법 2·3조 현장 안착을 위한 공동 브리핑’을 열어 이 같은 내용의 ‘원·하청 상생 교섭 절차 매뉴얼’을 발표했다. 개정 노조법은 근로계약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하청 노동자의 근로 조건을 ‘실질적·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하는 원청을 사용자로 보는 게 핵심이다. 매뉴얼은 원청을 상대로 교섭을 요구하는 노조가 여럿일 때 교섭 단위를 어떻게 결정할지 기준을 제시했다.
고용노동부는 이번 매뉴얼에서 ‘노조법이 규정한 교섭 창구 단일화 원칙을 고수한다’는 기존 입장을 뒤집었다. 지난해 발표한 지침에서는 ‘원·하청 공동교섭 모델’을 내세웠는데 이번 매뉴얼에서는 “원청 노조는 교섭 당사자가 아니므로 하청 노조와 원청 노조 간 교섭 단위 분리 절차를 거칠 필요가 없다”고 못 박았다. 고용노동부는 입장 변경과 관련해 “하청 노조의 교섭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법조계 "노조법 1대1 원칙 무력화…위헌 시비 제기될 가능성 크다"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는 2011년 7월 한 사업장에 2개 이상의 복수노조가 허용되면서 도입됐다. ‘교섭대표노조’를 뽑아 사용자는 대표노조하고만 교섭하면 된다는 게 골자다. 사용자가 개별 노조마다 따로 교섭에 응해야 하는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도입됐다.
정부는 이번 매뉴얼에서는 원청 노조와 하청 노조 간 교섭 단위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교섭창구 단일화 자체가 필요 없다고 봤다. 같은 원청 기업을 상대로 교섭을 요구하는데도 원청 노조와 하청 노조의 교섭 단위가 ‘다르다’고 해석했기 때문이다. 1사 1교섭체계인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를 중심으로 한 노사 협상 틀이 15년 만에 깨진 셈이다.
하청 노조끼리의 교섭 단위 분리도 자유로워졌다. 정부는 지난 24일 국무회의에서 의결한 시행령에서 ‘하청 간 교섭 단위’ 분리 요건으로 이익대표 적절성, 노동조합 간 갈등을 제시했다. 하청 노조가 “(다른 노조와) 상급 단체가 다르거나 갈등이 있어서 단일 대오 형성에 부적절하다”는 주장만 해도 독자적 교섭권을 확보할 길이 열렸다는 뜻이다.
법조계에선 이런 정부의 해석 방침이 노조법에 명시된 교섭창구 단일화 원칙을 무력화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양주열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현행법은 근로조건 차이나 교섭 관행 등을 분리 요건으로 명시하고 있는데, 시행령이 법에도 없는 ‘노조 간 갈등’ 등을 교섭단위 요건으로 내세운 것은 의문스럽다”고 지적했다.
김희성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노동위원회 판단과 법원 판례에 따라 제도 충돌과 법적 분쟁이 급증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이광선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도 “시행령과 매뉴얼이 노조법의 위임 한계를 넘어선 것으로 위헌 시비가 제기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이는 노동계 교섭권 확대에 무게를 둔 정책 전환으로 현 정부의 노동정책 기조와도 맞물린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달 타운홀 미팅에서 하청 노동자 처우 개선과 관련해 “민간 영역은 정부가 직접 강제하기 어렵고, 실질적 방법은 노동운동 활성화”라고 언급했다. 공공부문 하청에는 ‘적정임금’ 정책, 민간부문에는 노란봉투법을 통한 교섭력 강화로 임금 격차를 줄이겠다는 투트랙 전략으로 분석된다.
박수근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원청이 교섭 의무가 없다고 회피하면서 하청 근로자들이 불법 투쟁으로 내몰린 게 노동 현장 악순환의 원인”이라며 “사업주도 (교섭에서) 노력하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기 때문에 나쁘지 않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입장문을 통해 “정부가 원청 노조와 창구 단일화는 할 필요가 없다고 한 점은 나아지긴 했다”면서도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 자체의 완전한 폐기를 주장했다.
업종별 사용자 집단을 상대로 한 ‘산별(산업별) 교섭’의 마중물이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하청 노조끼리 ‘직무’ ‘고용형태’ 등 다양한 단위로 교섭집단을 형성해 원청을 압박하는 구조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산별 교섭은 노동계의 숙원이다. 다만 일부 중소기업엔 원·하청 교섭 분리가 도움이 된다는 의견도 있다. 한 중소기업 하청업체 대표는 “원·하청이 묶여 교섭 기준이 정해지면 하청 독자적으로 임금 정책을 펴기 어려워진다”고 했다.
곽용희/박진우 기자 ky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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