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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GX는 기후정책 넘어 산업전략…정밀한 증거기반 정책이 핵심”

입력 2026-02-28 06:00  

[한경ESG] 넷제로 인텔리전스 국제포럼



넷제로 달성을 위한 ‘정밀 정책’과 ‘증거기반 실행’이 한국형 녹색전환(K-GX)의 성패를 가를 핵심 과제로 떠올랐다. 27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카이스트녹색성장지속가능대학원이 주최하고 국내외 전문가들이 참여한 ‘넷제로 인텔리전스 국제포럼’에서는 한국과 일본의 GX(그린 트랜스포메이션, 녹색 전환) 추진 현황을 공유하고, 탄소가격제·배출권거래제(ETS) 안정화, 자발적 탄소시장(VCM) 신뢰 제고, 전환금융 조달 및 거버넌스 설계를 집중 논의했다.

개회 발언에 나선 엄지용 카이스트 녹색성장기술대학원 교수는 “K-GX는 단지 기후 정책이 아니라 산업전략과 국가경쟁력을 새롭게 설계하는 전환 프로젝트”라며 “의욕만으로는 부족하고 책임성과 정책 효과를 담보하는 증거기반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넷제로 인텔리전스’를 “정책 효과를 통합적으로 분석해 최적의 실행 효과를 도출하고, 탄소중립 정책의 정밀성을 높이는 지능형 의제”로 규정하며 녹색혁신과 시장혁신을 포럼의 핵심 화두로 제시했다.

탄소가격·VCM·녹색산업정책…도구는 갖췄다, 관건은 설계

기조강연에 나선 조세프 앨디 하버드 케네디스쿨 교수는 녹색대전환의 핵심 도구로 탄소가격제(carbon pricing), 자발적 탄소시장(VCM), 녹색산업정책을 꼽았다. 그는 “공공과 민간이 함께해야 정책·기술·시장 혁신이 가능하다”며 “배출 감소는 필요조건이지만, 사회적 지지를 얻으려면 녹색전환이 경제적 기회로 작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앨디 교수는 탄소가격제가 기술혁신을 촉진하는 메커니즘을 강조했다. 규제가 ‘일괄 적용’의 한계를 갖는 반면, 탄소가격은 기업이 비용 효율적인 감축 수단을 스스로 찾게 해 혁신을 유도한다는 논리다. 다만 그는 “투자 관점에서 가장 큰 장애물은 가격 변동성”이라며, 시장안정화 장치의 투명성·예측가능성이 투자 지연을 막는 핵심이라고 지적했다.

포럼에서는 한국 ETS의 구조적 강점과 과제도 함께 도마에 올랐다. 앨디 교수는 한국 ETS가 “경제 전체 배출의 상당 부분을 포괄하는 체계”라고 평가하면서도, “기업의 청정기술 투자는 대규모 자본지출(CAPEX)인 만큼, 탄소가격의 단기 급등락은 투자 판단을 늦춘다”고 진단했다.

이어진 대담에서 그는 “ETS에는 정량적 목표(총량)가 있어야 하지만, 혁신을 만드는 건 가격 인센티브”라며 “시장은 일정 범위의 변동성을 허용하되, 규칙 기반으로 배출권 공급 조정이 예측 가능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저가격(바닥가격) 등 제도 설계를 예로 들며, 정부의 ‘재량적 개입’이 커질수록 시장 신뢰가 떨어질 수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자발적 탄소시장(VCM)에 대해서는 “더 야심찬 목표를 가능하게 하는 장점”과 함께 품질 리스크 관리가 핵심 쟁점으로 제기됐다. 앨디 교수는 저품질 오프셋 사용이 법적 문제를 넘어 기업의 평판 리스크로 직결될 수 있다고 지적하며, 추가성(additionality), 영구성(permanence), 누출(leakage) 등 검증 체계 강화를 주문했다. 원격탐사·데이터 기반 MRV(측정·보고·검증) 고도화가 신뢰를 떠받칠 기반으로 언급됐다.

“규제와 지원을 일체형으로”…정부 K-GX 구상 ‘단계적 의무화’ 예고

이날 토론 세션에서는 정부가 준비 중인 K-GX 제도 구상도 공유됐다. 김병훈 K-GX 부단장은 “규제로서의 GX 정책 틀을 마련하되, 규제와 지원을 일체형으로 설계해 추진하려는 방향”이라고 설명했다.

김 부단장에 따르면 정부 구상은 2026년부터 의무 제도를 본격화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우선 전력·발전 사업자 등 발전 부문에 ‘옥션(경매) 제도’를 도입하고, 이후 기업 단위로 연간 10만 톤 이상의 CO₂를 배출하는 사업장을 단계적으로 포괄하는 방식이 논의되고 있다.

대상 기업은 약 300~400개 수준, 배출 포괄 범위는 약 60% 내외가 될 것으로 예측했다. 그는 “제도적 기반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전환이 지속되기 어렵다”며 “R&D, 재정, 금융, 세제 등 가용한 정책수단을 총력 동원하는 접근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포럼에서는 K-GX에 대한 산업계 요구로 ▲기술개발·설비투자 지원 ▲전환금융 활성화 ▲저탄소 제품 시장 구축 ▲특별법·제도 마련 등이 제시됐다. 김 부단장은 “R&D·재정·금융·세제 등 가용 수단을 총동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히로미치 나카하라 일본 경제산업성 GX그룹 부국장이 발표한 한·일 GX 비교 세션에서는 일본이 중점 분야 선정과 대규모 연구개발 펀드, 규제와 지원을 결합한 성장지향형 전략을 추진한다는 내용이 공유됐다. 패널들은 “정책·제도가 투자의 예견가능성을 어떻게 담보하느냐가 핵심”이라고 입을 모았다.

거버넌스 논의에서는 K-GX 추진조직이 갖춰야 할 조건으로 ▲혁신지향성 ▲범정부 추진체계 ▲정권 교체에도 흔들리지 않는 지속가능성이 제시됐다. 일부 토론에서는 해외 사례를 들어 “독립성과 안정적 재원, 의회의 뒷받침이 장기 프로젝트를 가능하게 한다”는 취지의 의견도 나왔다.

“목표는 확고하게, 방법은 유연하게”…증거를 ‘정책의 언어’로

포럼을 관통한 메시지는 ‘유연성’과 ‘학습’이었다. 2050 탄소중립 목표는 흔들림 없이 가져가되, 데이터와 평가를 통해 방법을 계속 업데이트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앨디 교수는 “목표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되, 방식은 더 많은 정보를 얻으며 바뀔 수 있어야 한다”며 “투명한 공유는 단지 공개가 아니라 정보를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강조했다.

엄지용 교수는 “목표를 세우는 것만큼 제도를 만드는 일이 혁신을 만든다”며 “K-GX 로드맵을 앞둔 지금, 안정적이고 신뢰 가능한 탄소가격 신호, 검증 가능한 VCM, 평가 가능한 산업정책이 함께 설계돼야 한다”고 정리했다.

구현화 기자 ku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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