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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곡물가 폭등과 인구변동의 고차함수 [김동욱의 세계를 바꾼 순간들]

입력 2026-03-02 09:00   수정 2026-03-05 15:40

인류사가 시작한 이래 1820년에 이르기까지 세계경제는 큰 변화가 없는, 장기간의 정체 상태였다. 이를 당대에 가장 설득력 있게 설명한 이는 토머스 맬서스(1766~1834)였다. <인구 관련 원칙에 대한 고찰>(1798)이란 책에서 맬서스는 19세기까지 1인당 총생산과 인구수가 정체됐다는 두 가지 현상이 공존했다는 사실을 집중적으로 분석했다.

맬서스는 농업생산이란 노동과 토지의 조합에서 비롯된다는 전제에서 논의를 시작했다. 토지는 고정 요소인 까닭에 인구가 증가하면 무조건 1인당 총생산이 감소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무역의 확대 등으로 ‘일시적’으로 생활수준이 향상되면 인구가 ‘일시적’으로 늘어나곤 했다. 생활의 여유가 아이를 더 낳도록 장려하는 효과를 불러왔고, 사망률을 낮추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구는 끝없이 늘어날 수 없었다. 수시로 1인당 총생산이 생계유지 수준으로 주저앉으면서 결국 사회는 과거 출발점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이른바 ‘맬서스의 덫’이 작동한 것이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정해진 운명의 반복 같았지만, 변화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실제 18세기는 의미 있는 변신이 일어난 세기였다.

무엇보다 ‘맬서스의 덫’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인구가 적잖이 늘었다. 18세기 100년 동안 유럽 인구는 9500만 명에서 1억4600만 명으로 증가했다. 세계 인구에서 유럽이 차지하는 비중도 1700년 17~18%에서 1800년에는 20% 내외로 높아졌다.

영국을 중심으로 도시화도 빠르게 진행됐다. 1600~1800년에 영국 인구는 111% 증가했다. 도시 인구 증가율은 600%까지 높아졌다. 그리고 이 같은 도시화 물결은 이 시기 벨기에, 프랑스 등 유럽 각지로 빠르게 확산했다.

그런데도 전체적으로 보면 ‘맬서스의 덫’은 여전히 매서웠다. 18세기 유럽에선 자연환경이 인구를 조절하는 ‘맬서스적 인구조정’이 두 번이나 크게 작동했다. 1740년대 초와 1770년대에 걸쳐 대규모로 사망자가 급증하는 ‘인구 청소’가 단행됐다. 첫 번째 맬서스의 함정의 거센 물결이 닥친 것은 1740년대였다. 유럽대륙 전체에서 1740년에는 전년에 비해 사망자 숫자가 21% 늘었다. 1742년에는 기록된 사망자 수가 1739년에 비해 24% 증가하며 정점을 이뤘다. 이는 인구 위기 발생 전인 1735년에 비해선 사망자 수가 43%나 늘어난 것이다.

사망률이 정점을 이룬 1740~1742년은 유럽 각지에 전염병이 번진 시기이기도 했다. 잉글랜드와 아일랜드, 프랑스, 네덜란드,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 스칸디나비아반도를 이질, 티푸스, 장티푸스, 천연두, 희귀 열병 같은 각종 전염병이 훑고 지나갔다.

설상가상 서유럽과 북유럽, 중부 유럽에서 흉작이 발생했다. 1693~1694년, 1708~1709년, 1740~1741년은 대흉작의 해로 기록됐다.

기상재해와 재난도 잇따랐다. 1700년대 초에는 도처에서 곡물가가 크게 올랐다가 급락하곤 했다. 한번 폭락한 곡물 가격은 차지인들이 차지료를 지불하는 것이 가능할 정도로 쉽게 오르지 않아 농지의 황폐화를 가져왔다. 그러다가 1740년대를 앞두고는 도처에서 곡물가가 일방적으로 인상됐다.

평균 곡물 가격은 1738년에서 1740년 사이에 60%나 뛰었다. 벨기에 등에선 1737~1738년보다 1740~1741년에 곡물 가격이 77.0% 상승했다. 덴마크에선 같은 기간 곡물가가 71.4% 올랐다. 핀란드는 67.1%, 스웨덴은 60.0%, 아일랜드는 56.7% 급등했다. 그리고 한번 높아진 곡물 가격은 1742년까지 떨어지지 않고 지속됐다. 몇몇 지역에선 곡물 가격이 두 배나 오르기도 했다.

이처럼 곡물 가격이 비싸지면서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장기 영양부족 상태가 야기됐다. 당시 저소득층은 유럽 인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던 만큼 인구의 절대다수가 굶을 수밖에 없었다. 18세기 중반 유럽의 상대적으로 가난한 국가들에선 음식물과 음료 소비에 드는 비용이 가계 전체 수입의 60~75%를 차지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 같은 곡물가 상승의 여파로 1735~1739년에 비해 1740~1742년의 사망률도 크게 높아졌다. 노르웨이 사망자 수가 81.0% 늘어난 것을 비롯해 핀란드 51.8%, 아일랜드 25.3% 등의 사망률이 높았다. 아일랜드·노르웨이·핀란드 등은 식량부족의 여파로 사망자 증가율이 당시 러시아와 한창 전쟁 중이던 스웨덴(22.7%)의 사망자 증가율을 크게 웃돌기도 했다. 전쟁보다 굶주림이 훨씬 무서운 재앙이었던 셈이다.

18세기의 두 차례 인구 위기에 대해 역사학자 존 포스트는 “곡물가가 2년 이상 50% 이상 급등할 경우 사망률과 질병 전염 비율이 따라서 급증했다”고 지적했다.

농경사회에서 인류는 굶주림을 피하기 어려웠다. 농업생산은 토지개간이나 토지개혁, 영농기술의 발전 등에도 불구하고 인구보다 훨씬 천천히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농경사회에 충격이 미쳤을 때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것은 사회적 약자들이었다. 그들은 문자 그대로 생존을 위협받고는 했다.

오늘날 세계에서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각종 원자재 가격이 상승하고 식량 수급난이 벌어졌다. 그리고 이처럼 급등하는 글로벌 물가는 많은 측면에서 과거 인류가 걸어온 질곡의 역사를 떠올리게 한다. 어쩌면 인류는 아직도 ‘맬서스의 덫’에서 완전히 빠져나오지 못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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