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모님이 유언 없이 세상을 떠나면, 남겨진 자녀들은 재산을 어떻게 나눌지 스스로 합의해야 한다. 합의가 이뤄지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법원이 나서서 상속재산을 분할하게 된다. 이때 법원은 단순히 재산을 균등하게 나누는 것이 아니라, 각 상속인의 '구체적 상속분'을 기준으로 판단한다. 협의분할은 내용에 특별한 제한이 없지만, 법원 분할은 법정상속분이라는 기준을 따른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르다.
법원이 상속재산을 나눌 때 기준이 되는 것이 '구체적 상속분'이다. 이는 법에서 정한 법정상속분을 기초로 하되, 피상속인으로부터 생전에 받은 증여나 유증 등 '특별수익'과 상속재산 형성에 기여한 '기여분'에 따라 수정된 개념이다.
계산 방식은 다음과 같다. 먼저 피상속인이 사망 당시 남긴 적극재산에 생전에 증여한 금액을 더한다. 이렇게 합산된 금액에 각 상속인의 법정상속분을 곱하여 기본 상속분을 산출한 뒤, 해당 상속인이 생전에 증여 또는 유증받은 특별수익 금액을 공제하면 그것이 바로 구체적 상속분이다. 특별수익을 이처럼 고려하는 이유는, 생전에 미리 받은 재산을 상속분의 선급(先給)으로 보아 공동상속인 간의 형평을 맞추기 위함이다. 다만 특별수익은 반드시 해당 피상속인으로부터 직접 받은 증여나 유증에 한정된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제 구체적인 사례를 보자. 부부 A와 B 사이에 자녀 C(첫째)와 D(둘째)가 있다. 가족들은 평소 '아버지 재산은 첫째 C가, 어머니 재산은 둘째 D가 갖는다'는 데 암묵적으로 동의해 왔다.
A가 먼저 세상을 떠나자, 상속인인 B·C·D는 협의를 통해 A의 전 재산을 C가 단독으로 상속받는 내용의 분할협의를 마쳤다. B와 D는 자신의 상속분을 사실상 포기한 셈이다. 수년 후 B마저 사망하자, D는 기존 약속을 근거로 B의 재산 전부를 자신이 상속받으려 했다. 그런데 C가 이에 반발하며 'B 재산의 절반은 내 것'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D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C가 아버지 A의 재산 전부를 가져갔으니, B의 상속에서도 특별수익자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얼핏 보면 그럴듯하지만, 원칙적으로는 그렇지 않다. C가 취득한 재산은 B의 재산이 아니라 A의 재산이므로, 이를 곧바로 B의 상속에서 특별수익으로 인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대법원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특별수익을 판단할 때는 법률행위의 형식적·추상적 성질에 그치지 말고, 실질적으로 피상속인의 재산을 감소시키는 무상처분에 해당하는지를 따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상속재산 분할협의를 통해 공동상속인 중 1인이 취득할 수 있었던 상속분을 포기하고 이를 다른 상속인이 취득하는 내용으로 협의가 이루어진 경우, 그 실질은 어느 공동상속인이 다른 공동상속인에게 자신의 상속분을 무상으로 양도한 것과 같다고 볼 수 있다.
대법원은 이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공동상속인이 다른 공동상속인에게 무상으로 자신의 상속분을 양도하는 것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유류분에 관한 민법 제1008조의 증여에 해당하므로… 위와 같은 법리는 상속재산 분할협의의 실질적 내용이 어느 공동상속인이 다른 공동상속인에게 자신의 상속분을 무상으로 양도하는 것과 같은 때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대법원 2021. 8. 19. 선고 2017다230338 판결)."
이 사건에서 A 사망 당시 각 상속인의 법정상속분은 배우자 B가 3/7, 자녀 C·D가 각 2/7이었다. B와 D가 자신의 상속분을 포기하고 C가 전체를 가져가는 협의가 이루어졌으므로, C는 B로부터 법정상속분 3/7에 해당하는 재산을 무상으로 양도받은 것으로 평가된다. 따라서 C는 B의 상속재산 분할 절차에서 이미 선급으로 받은 3/7 상당의 상속분은 제외하고,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만 상속을 받게 된다. D 입장에서는 이 법리를 적극 주장함으로써 B의 재산을 더 많이 분배받을 수 있는 법적 근거를 확보하게 된다.
그렇다면, B와 D가 분할협의가 아니라 법원에 상속포기 신고를 하는 방식으로 C가 단독 상속받았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이 경우에는 결론이 완전히 달라진다.
대법원은 상속포기를 분할협의와 명확히 구분한다. 상속포기는 상속 개시 시점으로 소급하여 효력이 생기며(민법 제1042조), 포기자는 처음부터 상속인이 아니었던 것으로 본다. 따라서 다른 상속인들의 상속포기로 인해 나머지 상속인의 상속분이 증가되더라도, 이를 특별수익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 대법원의 입장이다(대법원 2012. 4. 16. 선고 2011스191, 2011스192 판결).
결과적으로 C가 A의 재산 전부를 단독 취득했다는 점은 동일하지만, 그 경위가 '분할협의'냐 '상속포기'냐에 따라 B의 상속에서 특별수익 인정 여부가 완전히 달라진다. 분할협의를 통해 C가 단독 상속했다면 특별수익이 인정되고, 상속포기를 통해 단독 상속했다면 특별수익이 인정되지 않는다.
상속과 관련된 법률관계는 다양한 성격의 법률행위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사소해 보이는 선택 하나가 큰 차이로 이어지기도 한다. 상속재산 분할협의와 상속포기는 겉으로는 비슷해 보이지만, 법적으로는 전혀 다른 행위이며 그 파급 효과도 크게 다르다.
부모 한쪽이 사망할 때 이뤄지는 상속 합의가 훗날 나머지 부모의 상속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많은 사람들이 간과한다. '우리 가족끼리의 약속이니 괜찮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이 수년 후 법정 분쟁의 씨앗이 될 수 있다. 상속 절차를 진행할 때는 반드시 법률 전문가의 자문을 받고, 각 선택이 현재와 미래에 어떤 법적 효과를 낳는지 면밀히 검토한 뒤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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