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들어 부쩍 술에 대한 보도가 많이 보인다. 그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MZ세대가 술을 적게 마신다는 내용이다. 질병관리청의 국민건강통계에 따르면 2024년 20대(만 19세 포함)의 하루 주류 섭취량은 64.8g으로, 2023년(95.5g)에 비해 1년 새 30% 이상 급감했다. 이는 60대의 하루 주류 섭취량(66.8g)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술을 즐기는 기성세대와 달리, MZ세대가 이토록 술잔을 들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히 경기가 안 좋거나 건강을 생각해서일까? 그 이면에는 주목해야 할 깊은 사회적 변화와 새로운 시장의 가능성이 숨어 있다.

①'우리'라는 집단 의식의 약화와 '각자도생'
과거의 음주 목적 중에는 '함께 가자'는 의식이 매우 강했다. 내가 취하면 너도 취하고, 서로의 흐트러진 모습까지 공유하며 유대감을 쌓던 시대였다. 영화 <백드래프트>의 명대사 "You go, we go(네가 가면 우리도 간다)"처럼 끈끈한 관계를 추구했고, 실력이 조금 부족해도 공동체 안에 있으면 함께 살아남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지금은 공동체가 나를 책임져주지 않는다. 정보가 투명해지면서 더 뛰어난 인재가 나타나면 언제든 대체될 수 있고, 더욱 '실력'으로만 평가받는 시대가 되었다. 결국 내가 나를 전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각자도생'의 상황에서, 술로 이어지는 깊고 밀착된 유대관계는 더 이상 필수적이지 않다.
최근 취업하는 MZ세대들은 게다가 팬데믹을 거치면서 회식이라는 문화를 접하지 못했다. MT, 신입생환영회 등 모두가 취소되던 시기. 수업도 비대면으로 단체로 사람을 만나는 기회가 적었다는 것. 이러한 경험치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본다.

② 레토르트, 밀키트 식품의 역습과 자영업의 위기
2020년도 이전만 하더라도 주류 매출의 약 60%가 요식업에서 발생했다. 하지만 최근 평범한 식당들은 큰 위기에 처해 있다. 그 주요 원인 중 하나는 레토르트와 밀키트 식품의 역습이다. 과거에는 순대국이나 설렁탕을 먹으려면 무조건 식당에 가야 했지만, 지금은 상온 보관이 가능한 고품질 레토르트 제품이 너무나 잘 나온다.
가격은 30~50% 저렴하고, 식품공학의 발달로 맛과 보존성도 뛰어나다. 냉동식품 역시 떡볶이, 피자, 치킨까지 식당 퀄리티를 구현해냈다. 여기에 밤 11시에 주문해도 다음 날 새벽에 도착하는 물류 시스템까지 갖춰지며 굳이 식당에 갈 이유가 줄어들었고, 이는 자연스럽게 술 소비의 감소로 이어졌다. 여기에 늘어나는 MZ세대의 1인가구. 식당에서 혼자서 밥을 먹느니 괜찮은 퀄리티라면 그냥 집에서 먹겠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으로 보여진다.
③사람과의 연락조차 줄어드는 AI 시대
이제 AI는 업무를 진행하는데 있어서 필수불가결한 존재로 가고 있다. 그런데 이 AI로 인해 역설적으로 사람에게 연락하는 일이 줄었다. 법률, 부동산, 세금, 건강은 물론 인생 상담까지 AI와 나누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문제 해결을 위해 사람을 찾아가 조언을 구하고 술 한잔하며 위로를 받았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성을 덜 느낀다.
고민을 나눌 연락 자체가 줄어드니 술 마실 기회도 사라지는 것이다. 여기에 MZ세대의 AI 구독 비용은 주머니 사정을 더욱 얇게 만들어 잉여 자금을 마르게 한다. 술 소비로 갈 수 있는 여유가 물리적으로 차단되는 셈이다.
④술 마실 돈으로 투자하는 시대
요즘 모임의 주된 화두는 단연 주식과 AI, 그리고 자산이다. 화폐 가치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상황에서 투자를 하지 않으면 '벼락거지'가 된다는 불안감이 팽배하다. 이런 심리는 소비 패턴을 바꿨다. 당장의 즐거움을 위해 돈을 쓰기보다는 미래를 위한 투자에 우선순위를 둔다. "이 돈이면 차라리 우량주 주식을 한 주 더 사겠다"는 무의식이 술 소비를 억제하고 있다.
①폭탄주는 죽었다
과거 한국 음주 문화의 미덕으로 통용되던 과음과 폭음의 시대는 이제 종말을 고했다. 사실 이는 2019년에 이미 제시되었던 화두이나, 현시점의 대중에게는 더욱 절실한 가치로 다가온다. 이제 무분별한 폭음은 단순한 개인적 실수를 넘어 사회적 비난의 대상이 되는 '사회적 악', 나아가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하는 '개인의 악'이라 간주될 만큼 도덕적 기준이 엄격해졌기 때문이다.
②한 잔의 미학
우리는 오랫동안 초면인 사람과 인사할 때 "주량이 어떻게 되느냐"고 묻는 것에 익숙했다. 술을 많이 마시는 능력이 곧 사회성이 좋다는 의미로 해석되던 시대의 유물이다. 하지만 지금의 시장은 다르다. 이제는 섭취하는 양보다 얼마나 다양하고 깊이 있게 주종을 경험하고 즐기는지가 그 사람의 안목과 품격을 결정한다. 즉, 주류 소비의 헤게모니가 '양의 시대'에서 '질의 시대'로 완전히 이동한 것이다.
③시간의 가치를 담은 가벼운 취기
사회가 고도화될수록 개인에게 부여된 시간의 가치는 더욱 희소해진다. 과음은 술을 마시는 당장의 즐거움보다 그다음 날의 컨디션과 시간을 앗아가는 '시간 도둑'과 같다. 여기에 할증된 택시비나 숙박비 등 불필요한 비용과 사회적 리스크를 고려할 때, 현대인들은 자신의 시간과 자산을 지키기 위해 리스크가 적은 가벼운 취기 중심의 선택을 선호하게 되었다.
④신뢰를 기반으로 한 '안심 주류'
사회 전반에 확산된 '안심 케어' 트렌드는 주류 시장에도 깊이 침투했다. 이제 술 역시 내 몸에 해롭지 않아야 한다는 인식이 기본이다. 무알코올, 저도수, 제로 슈거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 사양이 되었으며, 소비자들은 무감미료와 좋은 원재료를 직접 확인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누가,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만들었는가'라는 제조 과정의 투명성과 신뢰가 주류 선택의 가장 중요한 척도가 되었다.
⑤묵힌 술의 연금술
팬데믹 전후로 불어닥친 소장 붐은 역설적으로 시장의 정체를 불러왔다. 대중의 술장고와 와인 셀러는 이미 포화 상태에 이르렀고, 더 이상 술을 들여놓을 물리적 공간이 없는 상태다. 이제는 장식장 속에 갇혀 있던 술을 과감히 꺼내 마시며 시간이 흐르며 완성된 술맛의 깊이를 감상해야 한다. 이러한 '묵힌 술의 연금술'을 즐기는 문화적 흐름이 형성되어야 시장의 재구매가 일어나고 선순환이 시작될 수 있다. 이를 위해 '어떻게 즐길 것인가(How to Enjoy)'에 대한 콘텐츠적 접근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질 전망이다.

⑥관계의 밀도를 높이는 '나눔의 헤리티지'
혼밥과 혼술이 늘어난 근본적인 배경은 "너와 마시느니 차라리 혼자 마시는 것이 낫다"는 심리적 저항에 있다. 인간관계가 더욱 고도화되고 복잡해지면서, 웬만큼 깊은 사이가 아니면 동석하여 술을 마시는 행위 자체가 불편함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뒤집어 생각하면, 지금 내가 함께 술잔을 기울이기 위해 만난 사람 자체가 이전보다 훨씬 귀한 존재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사람이 귀해진 만큼, 우리는 그 소중한 인연과 더욱 가치 있는 술을 나누고자 하는 헤리티지를 추구하게 된다.
⑦대체 불가능한 로컬, 고향의 가치
로컬(지역)은 그 이름만으로도 타 지역이 흉내 낼 수 없는 대체 불가능한 가치를 지닌다. 최근 활성화된 고향사랑기부제는 이러한 흐름을 가속화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특정 지명에 기부하고 받은 포인트로 그 지역의 전통주를 경험하는 과정은, 소비자가 이전에는 몰랐던 지역 술의 매력을 새롭게 발견하는 기회가 된다. 이는 향후 지역 기반의 전통주 구독 서비스로 이어질 수 있는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이며, 우리의 뿌리를 확인하는 문화적 행위이기도 하다.
⑧프리미엄 가성비와 똑똑한 소비자
팬데믹 기간을 거치며 주류 애호가들의 지적 수준과 안목은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이제 소비자들은 화려한 수식어와 마케팅 기법에 쉽게 속지 않는다. 가격 대비 품질이 월등한 '가성비'를 철저히 따지되, 동시에 그 제품만이 가진 독보적인 차별점과 '프리미엄'이 공존하는 제품에만 기꺼이 지갑을 연다. 영리해진 대중은 이제 제품의 본질적인 가치를 정확히 꿰뚫어 보고 있다.
⑨결국은 똘똘한 한 병
결과적으로 2026년의 소비자는 자신의 건강을 배려하는 가벼운 취기, 그리고 술에 담긴 맥락과 서사를 중시한다. 소중한 사람과 나눌 가치가 충분하며, 나 자신의 취향을 대변할 수 있는 '가장 나다운 한 병'이 시장의 주권을 잡았다. 이를 ‘똘똘한 한 병’이라 정의하고자 한다.
이 한 병은 결코 비싼 가격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 똘똘한 한 병은 이미 우리의 셀러나 장식장 안에서 우리의 손길을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던 술일지도 모른다.
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