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2월 27일 17:10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담은 상법 개정이 이뤄지면서 국내 주요 그룹 지주사들에 비상이 걸렸다. 인수합병(M&A)이나 지주사 전환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얻게 된 비자발적 자사주까지 소각 대상에 포함되면서, 경영권 방어막이 옅어졌을 뿐 아니라 세금 폭탄이라는 이중고를 안게 됐기 때문이다.
비자발적 자사주 강제 소각 후폭풍
27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이번 상법 개정에 따라 가장 직접적인 타격을 입는 곳은 자사주 비중이 높은 지주사들이다. 주요 그룹 지주사격 회사 중 자사주 비중이 가장 높은 곳은 최근 분기보고서 기준 롯데지주(27.5%)이며, SK(24.8%), 두산(17.9%), KCC(17.2%), 영원무역홀딩스(14.0%) 등이 뒤를 잇는다. 현 주가 기준으로 SK㈜의 자사주는 약 7조원, 롯데지주는 1조원 규모에 달한다.그동안 자사주는 경영권 분쟁 시 우호 세력에게 넘겨 의결권을 되살리거나, 인적분할 과정에서 신설 법인의 신주를 배정받아 지배력을 강화하는 소위 ‘자사주의 마법’을 부릴 수 있는 카드였다. 계열사 편입시 현금 대신 지급할 수도 있어 지배구조 개편에 유용했다.
앞으로 18개월 내에 이를 전량 소각해야 함에 따라 대주주 입장에서는 경영권 방어의 최후 보루이자 지배구조 개편의 지렛대 역할을 할 수 있었던 수조원 규모의 자사주를 강제로 소각하거나 처분해야하는 셈이다.
이번 상법 개정으로 상장사는 자기주식을 신규 취득할 경우 1년 이내에 소각해야한다. 임직원 보상 등 예외적인 경우에만 보유와 처분이 허용되며, 기존 보유분에 대해서는 18개월의 소각 유예 기간이 부여된다. 예외적으로 보유하거나 처분할 때에는 매년 주주총회를 통해 보유 및 처분 계획을 승인받도록 했다.
이번에 개정된 상법은 자사주의 취득 목적과 관계없이 모든 보유 물량을 동일하게 규율하기로 했다. 재계는 그간 인수합병(M&A)나 분할·합병 과정에서 발생한 비자발적 자사주만이라도 의무 소각 대상에서 제외해달라고 요청해왔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소각시 ‘세금 고지서’
비자발적 자사주도 소각 대상에 포함되면서 이에 따른 세금 부담도 논란거리다. 자사주를 소각할 때 소각 시점의 주가가 최초 취득가보다 높으면 그 차액을 기업의 이익으로 보고 법인세를 부과한다. 일반적인 자사주 소각은 이미 세금을 낸 이익금으로 산 주식을 없애는 것이라 법인세 부담이 없지만, 합병 등으로 생긴 자사주는 다르다. 대표적 사례로 SK㈜이 꼽힌다. SK㈜이 보유한 자사주(24.8%) 중 약 60% 이상은 과거 SK C&C와 합병하며 발생한 물량이다. 당시 합병으로 생긴 장부상 이익(합병차익)에 대해 과세는 미뤄졌지만, 이번 법 개정으로 이를 소각하면 세무상으로는 주식을 처분한 것과 동일하게 보아 미뤄뒀던 이익이 확정돼 과세 대상이 된다.
이 경우 SK㈜가 내야할 세금 규모는 5000억원을 웃돌 것으로 추산됐다. 롯데지주와 HD현대, 한화 등 과거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자사주를 취득한 다른 기업들도 비슷한 처지다.
재계 관계자는 “정부가 경영권 방어 수단을 뺏으면서 동시에 천문학적인 벌금까지 매기는 격”이라며 “유동성이 부족한 중견그룹 지주사들은 세금을 내기 위해 자사주를 소각하며 핵심 자산까지 매각해야 하는 상황에 몰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자사주를 처분해서 생긴 이익이나 손실은 법인세 계산 시 익금이나 손금에 반영하지 않도록 하고 이를 과거 사례에도 소급 적용한다는 내용을 담은 법인세법 개정안도 국회에 발의됐다. 당초 상법 개정과 함께 패키지로 진행될 것으로 전망됐으나 이번에 별다른 논의가 이뤄지지 않아 후속조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세무법인 관계자는 “아직 자사주 소각 유예 기간이 18개월 남아있긴 하지만 실무적으로 세법상 과세 기준 등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세워져야 현장의 혼란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최석철 기자 dolso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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