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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길선 前 현대중공업 총괄회장 "산업은 언제든 방향 바뀐다…현장과 기술 모르는 경영은 필패"

입력 2026-03-01 17:08   수정 2026-03-02 00:30


“조선은 같은 답을 반복하는 산업이 아닙니다.”

최길선 전 현대중공업 총괄회장은 조선업을 이렇게 정의했다. 배 한 척, 도면 한 장, 공정 하나까지 매번 조건이 달라지는 터라 정답이 있을 수 없다는 뜻이다. 1973년 울산 조선소에서 시작해 한국 조선업이 세계 1위로 도약하기까지 현장을 묵묵히 지킨 최 전 회장은 “산업은 언제든 방향이 바뀌기 때문에 결국 살아남는 건 사람과 기술적 사고”라고 강조했다.

▷왜 공대, 그중에서도 조선해양공학을 택했습니까.

“1970년대 초반엔 이과에서 공부하면 공대에 가는 게 자연스러웠어요. 나라 전체가 산업화를 목표로 움직이던 시기였죠. ‘공학자가 곧 국가의 진로’라는 분위기가 사회에 깔려 있었습니다.”

▷첫발을 디뎠을 때 어떤 느낌이었나요.

“1973년 3월 23일로 기억합니다. 울산 조선소에서 첫 철판을 자르던 날이었죠. 신입사원에 현장직도 아니었는데 현장이 궁금하더라고요. 배를 짓는 일은 책상 위 도면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철판이 잘리는 순간부터 비로소 현실이 된다는 걸 그때 처음 실감했습니다.”

▷입사 직후 오일쇼크를 겪었습니다.

“유가가 배럴당 2달러에서 14달러로 뛰었습니다. 울산 미포조선소는 초대형 유조선(VLCC)을 만들기 위해 설계된 조선소였는데 이 여파로 발주가 10년 가까이 멈췄어요. VLCC를 짓기 위해 만든 독(선박건조장)에선 작은 배를 지어야만 했습니다. 레이아웃이 전혀 맞지 않았죠. 소형선과 벌크선을 억지로 끼워 맞추듯 만들어야 했습니다.”

▷아주 긴 10년이었을 것 같습니다.

“설계는 수시로 바뀌고, 자재는 맞지 않고, 공정은 늘 엇갈렸습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이렇게는 안 된다’는 얘기가 나왔죠. 하지만 그 과정에서 설계 변경 하나가 현장 전체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공정 하나가 어긋나면 문제가 어디까지 번지는지를 몸으로 배웠습니다.”

▷정주영 선대회장의 현장 경영도 이 시기였습니다.

“맞아요. 정주영 회장님이 가장 싫어한 건 ‘공장이 비는 것’이었어요. 독이 비어 있으면 자정에라도 현장으로 내려왔어요. 정 회장께선 독이 ‘왜 비어 있느냐’가 아니라 ‘지금 당장 어떻게 채울 거냐’를 물었죠. 수천억원을 들여 만든 설비를 놀리는 건 죄에 가깝다고 보셨거든요. 당시엔 버티는 게 목표였지만, 돌아보면 그 10년이 혹독한 훈련 기간이었네요.”

▷강재 관리 업무를 맡으면서 시야가 크게 달라졌다고 들었습니다.

“강재 관리는 선박 건조에 쓰일 철판의 수급부터 배치, 공정 투입 시점까지를 한 번에 보는 일입니다. 선박 건조의 출발점이죠. 어떤 철판이 언제, 어떤 규격으로, 어느 공정에 들어가느냐가 조금만 흔들려도 절단·조립·독 일정이 전부 멈춥니다. 그런데 당시엔 설계·자재·현장이 각자 다른 숫자를 보고 있더군요. ‘조선은 철판 자체를 관리하는 문제가 아니라 도면·자재·일정을 하나로 묶어 관리하는 문제’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때부터 조선을 데이터산업으로 보게 됐습니다.”

▷결정적인 계기가 일본 조선소 방문이었다고요.

“1990년대 일본 조선소를 보면서 확신이 섰습니다. 특히 가와사키 조선소가 인상적이었어요. 블록 단위로 설계·자재·공정을 쪼개고, 전부 번호와 코드로 관리하고 있더군요. 어느 블록에 어떤 자재가 들어가고 공정이 어디까지 왔는지가 숫자로 바로 보였습니다.”

▷그 경험을 국내 조선소에 적용했군요.

“조선업 세계 1위이던 일본의 방식을 어떻게든 따라가려고 했어요. 우선 설계·자재·현장이 같은 언어를 쓰게 만들었어요. 도면 번호가 자재 발주로, 그 번호가 현장 공정으로 그대로 이어지도록 구조를 바꿨습니다. 감으로 맞추던 걸 숫자로 통제하는 방식이었죠.”

▷일본은 한국에 추월당했는데요.

“일본은 자국 선주 중심이라 표준화된 배를 반복 생산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설계와 공정을 정해놓고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었죠. 이에 비해 한국은 수출 비중이 높아 선주 요구에 따라 설계를 계속 바꿔야 했습니다. 처음엔 비효율처럼 보였지만, 그 과정에서 복잡성을 관리하는 능력이 쌓인 거예요. 나중에 보니 그 차이가 격차로 나타났습니다.”

▷경영 판단도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일본은 생산을 줄였지만 우리는 반대로 갔습니다. 경기는 돌고, 살아남는 쪽이 다음 사이클을 지배한다고 봤거든요. 결과적으로 한국이 조선업에서 세계 1위로 올라서는 분기점이 됐습니다.”

▷당시 기술적 강점은 무엇이었나요.

“설비를 늘린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생산 방식의 전환이었습니다. 배 위에서 하던 일을 땅에서 미리 끝내는 구조로 바꾼 거죠. 선행 의장에서 시작해 블록 의장, 종합 의장으로 발전하면서 독에서는 조립만 하면 되는 체계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때부터 생산성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있나요.

“컨테이너선 해치 커버가 대표적입니다. 예전에는 해치 코밍, 커버, 작동 장치를 따로 만들어 배 위에서 하나씩 조립했습니다. 그런데 공장 안에서 조립과 작동 시험까지 모두 끝낸 뒤 통째로 올리자는 아이디어가 나왔어요. 배 위 작업을 거의 없앤 셈이죠. 현장은 180도 달라졌습니다. 배 위 작업은 위험하고 공수도 많이 듭니다. 땅에서 끝내면 안전도 강화되고 품질도 안정됩니다. 결국 속도와 품질이 동시에 좋아졌어요.”

▷중국의 부상도 지켜보셨죠.

“중국이 가격과 물량을 무기로 급성장했습니다. 국가가 조선소 건설부터 금융, 발주까지 전폭적으로 밀어줬죠. 표준선은 가격 싸움이 됐고, 그 구조에선 우리가 아무리 공수를 줄여도 불리할 수밖에 없었어요. 생산성으로 일본은 이겼지만, 중국과 같은 방식으로는 더 이상 경쟁이 안 됐습니다. 그러면서 질문이 바뀌었습니다. ‘우리가 쌓아온 시스템을 이제 어디에 써야 하느냐’는 겁니다.”

▷그 답이 해양플랜트였습니까.

“자연스럽게 그렇게 갔죠. 선행 의장과 블록 의장 같은 생산 방식은 의장 비중이 높은 산업일수록 효과가 큽니다. 해양플랜트는 선체보다 설비가 훨씬 복잡한 구조물이에요. 배보다 ‘땅에서 끝내야 할 게 많은 산업’이죠. 우리가 쌓아온 공정 역량을 가장 잘 쓸 수 있는 분야라고 봤습니다.”

▷해보니 무엇이 가장 어려웠나요.

“표준화에 실패했어요. 선박은 설계와 자재까지 표준화돼 있지만, 해양플랜트는 프로젝트마다 조건이 전부 달랐습니다. 설계가 바뀌면 자재와 공정이 함께 흔들렸고, 유가가 오르면 발주하고 떨어지면 취소하는 구조에서 같은 문제가 반복됐어요.”

▷위기를 겪으며 얻은 교훈은 무엇인가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리스크 관리의 문제였다는 것을 깨달았죠. 조선은 표준 설계와 공정이 있어 원가를 예측할 수 있지만, 해양플랜트는 설계가 조금만 바뀌어도 자재와 공정 전체가 흔들립니다. 표준화와 데이터 관리 없이 외형만 키우면 결국 감당할 수 없게 됩니다. 이 경험을 통해 ‘아무리 기술이 뛰어나도 시스템으로 통제되지 않으면 산업이 될 수 없다’는 걸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최근 조선업계의 인력 문제가 심각한데요.

“2014년 20만 명이 넘던 근무 인력이 지금은 절반 이하로 줄었어요. 산업을 최선두에서 이끌 공학 인재도 마찬가지입니다. 공학 인재 부족의 핵심은 비전과 보상 문제입니다.”

▷그래도 공대에 가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산업 경쟁력은 공대생이 만듭니다. 한국 산업은 그렇게 성장해왔어요. 다만 그만큼 대접해줘야 합니다.”

▷공대 출신 경영자의 강점은 무엇이라고 봅니까.

“현장과 설계를 압니다. 그러면 거짓말을 할 수 없어요. 문제를 구조적으로 볼 수 있다는 얘기죠.”

▷앞으로 한국 조선업의 핵심 과제는 무엇인가요.

“친환경 연료 전환, 자동화, 생산성 향상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공학 인재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 이뤄져야 합니다. 그게 없으면 산업은 유지되지 못합니다.”

최길선 前 총괄회장은…

△1946년 전북 군산 출생
△1969년 서울대 조선공학과 졸업
△1972년 현대중공업 입사
△현대중공업 생산기획담당 이사·전무이사
△1997년 한라중공업 사장
△2001년 현대중공업 사장
△2004년 현대미포조선 사장
△2005년 현대중공업 사장
△2014년 현대중공업 조선·해양·플랜트 부문 총괄회장


안정훈 기자 ajh632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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