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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칼럼] 유관순 딥페이크 유감

입력 2026-03-01 17:39   수정 2026-03-02 00:11

유명인 이미지를 조작하는 ‘딥페이크’가 등장한 것은 19세기다. 노예제를 폐지한 미국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이 암살당한 1865년, 군복을 입고 위엄 있는 자세를 취한 그의 판화가 만들어졌다. 1852년 제작된 미국 정치인 존 캘훈의 초상화 얼굴을 링컨으로 교체했다. 영웅적인 이미지가 부족하다는 문제를 ‘얼굴 바꿔치기’로 해결한 것이다.

이 판화가 딥페이크라는 사실은 60여 년이 지난 1929년 드러났다. 헝가리 출신 사진 편집자가 링컨 판화의 조작을 밝혀냈다. 링컨의 업적을 빛내기 위해 노예제를 옹호하고 미국 남부의 연방 탈퇴를 주장한 민주당 정치인 캘훈을 활용했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오픈AI가 글을 영상으로 바꿔주는 인공지능(AI) 도구인 ‘소라(Sora)’를 공개한 2025년, 흑인 차별 반대를 주장한 인권 운동가 마틴 루서 킹 주니어의 명연설 ‘I Have a Dream(나는 꿈이 있어요)’을 왜곡한 가짜 영상이 나돌기 시작했다. 영상 속 킹은 인종차별적 욕설을 외치고, 우스꽝스러운 춤도 췄다. 킹의 유족은 오픈AI에 소송을 불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여론이 악화하자 오픈AI는 킹과 관련한 검색어 입력을 차단했다. 아울러 역사적 인물의 정치적·인종차별적 왜곡을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3·1운동의 주역인 유관순 열사를 조롱하는 딥페이크 영상이 국민의 공분을 사고 있다. 틱톡을 통해 유통되고 있는 가짜 영상 속 유 열사는 일장기에 애정을 표하고 방귀를 뀌어 그 추진력으로 우주로 향한다. 표현의 자유로 보기엔 도가 지나치다.

문제는 국내에서 영상 제작자를 단죄할 근거가 없다는 데 있다. 사자명예훼손죄는 명백한 허위 사실 적시에 한정해 적용된다. 원색적 조롱이나 구체성이 떨어지는 욕설만으로는 처벌이 쉽지 않다. 보호 대상을 생존 인물로 한정한 모욕죄 역시 적용이 불가능하다. 딥페이크 기술의 발달 속도를 법체계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3·1절 주간을 맞아 다양한 기념행사가 열리고 있다. 항일 운동을 이끈 위인들의 초상권 보호 방안을 마련하는 게 기념행사보다 시급해 보인다.

송형석 논설위원 clic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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