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한남동 타데우스 로팍 전시장 한가운데 놓인 김주리 작가(46)의 설치 작품 ‘모습(某濕)’은 ‘숨 쉬는 작품’이다. 거대한 흙덩이 두 개가 전시장의 습도에 따라 물기를 흡수했다가 내뱉기를 반복하기 때문이다. 흙은 모든 생명의 근원이자 삶의 터전이며 죽은 후 돌아가는 곳. 김 작가는 이런 속성을 흙 작품의 변화로 보여준다. 그의 작품은 전시에 맞춰 매번 새로 제작됐다가 폐막 후 해체한다. 작품 자체가 태어나고 변하고 사라지는 순환을 거치는 것이다.
타데우스 로팍에서 한국·일본·필리핀 출신 작가 4인의 신작 총 20여 점을 모은 단체전 ‘거리의 윤리’가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갤러리는 ‘거리감’이라는 단어로 이들의 작품세계를 묶었다.
예컨대 2010년 송은미술대상 대상 수상자인 김주리는 흙이 물을 만나 뭉쳤다가 갈라지고 흩어지는 과정을 통해 생명의 순환을 표현한다. ‘데저트’ 연작에서는 돌·벽돌·폐유리 가루를 물감처럼 사용해 물과 만난 가루들이 무게대로 가라앉은 흔적을 화면에 남겼다. 갤러리는 “만들어진 모양이 허물어지며 가루로 돌아가는 시간의 감각이 작품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필리핀 출신 작가 마리아 타니구치(45)의 작품은 멀리서 보면 거대한 검은 평면 같다. 하지만 가까이 가면 수천 개의 벽돌 같은 모양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연필로 윤곽을 잡고 작은 붓으로 한 칸씩 채워 완성하는 이 연작은 2008년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같은 작품이 1미터 거리와 10센티미터 거리에서 완전히 다른 얼굴을 보여주는 ‘반전’이 핵심이다. 그의 작품은 영국 테이트 모던과 프랑스 퐁피두센터가 소장 중이다.
임노식(37)은 고향 여주 시골마을의 논바닥, 들꽃, 농부 등을 캔버스에 정밀하게 그린 뒤 오일 파스텔로 반투명한 막을 덧입힌다. 선명하게 그릴 수 있는 풍경을 의도적으로 흐리게 만드는 것이다. 이런 막을 통해 작가는 눈에 담은 풍경이 기억 속에서 변형됐다는 사실을 표현한다. 동양화를 전공했지만 주로 쓰는 재료는 서양화에 가까운데도 한국화 상인 허백련미술상을 수상한 점을 주목할 만하다. 작품에 장르를 뛰어넘는 독특한 매력이 있다는 얘기다.


케이 이마즈(46)는 역사와 지금의 거리감을 작품 주제로 다룬다. 일본 출신인 그는 2017년부터 인도네시아 반둥에 거주 중이다. 이번 전시에는 일본이 2차대전 때 인도네시아를 점령했던 역사를 주제로 한 작품들이 나와 있다. 인도네시아 사원 부조의 여성 이미지와 태평양전쟁 침몰 군함을 한 화면에 겹친 ‘화로와 난파’가 대표적이다. 카셀 도쿠멘타 15(2022) 참여작가인 그는 지난해 도쿄 오페라시티 아트갤러리에서 첫 대규모 개인전을 연 작가기도 하다. 전시는 5월 2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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