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2월 개봉한 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조선의 비극적인 군주 단종의 삶을 다룬다.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다가 숙부의 쿠데타로 폐위되고, 유배 끝에 생을 마감한 왕. 영화는 이 익숙한 비극을 따라가지만, 이야기의 중심에는 또 다른 인물이 있다. 왕이 죽은 뒤에도 그 곁을 떠나지 않았던 사람, 엄흥도다.
단종은 1455년 폐위되어 ‘노산군’으로 강등되었고, 1457년 사사되었다. 단종의 시신은 한동안 수습되지 못했다. 권력의 향방이 이미 정해진 상황에서, 죽은 왕을 거두는 일은 불필요한 위험을 감수하는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모두가 외면하던 그 순간, 엄흥도는 목숨을 걸고 단종의 시신을 수습한다. 누구의 명령도, 보상도 없었다. 남은 것은 오직 ‘해야 할 일’이라는 개인의 판단 뿐이었다.
그로부터 241년이 지난 1698년(숙종 24년), ‘노산군’은 다시 ‘단종’으로 복위 된다. 흥미로운 점은 이때 ‘단종’의 복위와 함께, 생전에는 이름조차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엄흥도’ 역시 충신으로 추존되었다는 사실이다. 영화 속에서 이 장면은 짧게 지나가지만, 하나의 의문점을 남긴다. ‘조선은 왜 굳이 수백 년이 지난 뒤, 이러한 선택을 했던 인물을 다시 불러낸 것일까?’
<i># 조선은 왜 엄흥도를 다시 불러냈을까?</i>
이 질문이 오늘날 기업과 조직에 의미를 갖는 이유는, 위기의 조직이 아니라 성과가 나오고 있는 조직에서 비슷한 고민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사실 단종과 엄흥도가 다시 호명된 시점은 권력이 흔들리던 때가 아니라, 정권이 충분히 안정된 이후였다. 그리고 이 선택은 감정적 추모가 아니라, 어떤 판단을 조직의 기준으로 남길 것인가를 재정의하는 과정에 가까웠다. 즉, 성과와 권력이 어느 정도 정리되면, 조직은 비로소 ‘무엇이 옳았는가’를 다시 묻기 시작하게 된다.
이 사건을 전통적인 ‘충(忠)’의 관점에서 보면 개인의 의리나 미담으로 남는다. 그러나 조직의 관점에서 보면 이는 특정인물을 기리는 행위가 아니라, 조직의 기준을 상징적으로 선언하는 인사 전략의 일종이었다고 볼 수 있다. 조선은 그를 통해 ‘이 조직에서 끝까지 존중 받아야 할 행동은 무엇인가’를 다시 말하고자 한 것이다.
오늘날에도 조직이 큰 변화를 겪은 뒤에는 비슷한 장면이 반복된다. 권력 교체, 구조조정, 인수합병 이후 조직은 겉으로는 안정된다. KPI는 달성되고, 재무 성과도 나쁘지 않다. 그러나 내부를 들여다보면 냉소와 침묵이 늘어난다. 이때 여전히 성과만을 강조하면 조직은 더 빨리 닳게 된다. 리더십 역시 방향을 잃고, 메시지는 서로 충돌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조직은 어느 순간, 성과가 아니라 기준을 다시 정리해야 하는 시점에 놓인다.
1698년의 조선 역시 그랬다. 엄흥도의 재평가는 개인에 대한 포상이 아니라, 그 조직에서 어떤 기준이 정당한 것으로 작동하는지를 명확히 한 선택이었다. 리더에게 중요한 것은 엄흥도의 ‘충’이 아니라, 숙종이 그를 다시 불러낸 선택에 있다. 조직 문화 연구자 에드거 샤인이 말하듯, 조직의 문화는 선언된 가치가 아니라, 리더가 반복적으로 선택하고 보상한 결과로 형성된다. 결국 조직이 무엇을 기억으로 남기고자 하는가가 그 조직의 문화를 만든다.
<i># 성과 이후, 더 중요해지는 것</i>
엄흥도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핵심인재의 전형과는 거리가 멀었다. 탁월한 성과도, 영향력 있는 지위도 없었다. 그러나 조선은 그를 기억했다.
조직이 처한 상황에 따라 필요한 인재의 유형은 달라진다. 위기의 조직에는 이를 돌파할 영웅이, 이미 성과를 내고 있는 조직에서는 영웅보다, 기준을 흔들지 않을 인재가 더 중요할 수 있다. 목표를 더 높이는 것보다 어떠한 가치를 고수할 것인지 분명히 하는 일이 전략이 되는 시점이다. 숙종의 선택 또한 영웅을 찾는 것이 아닌, 조직이 기억해야 할 기준을 정리한 것이었다.
많은 기업에서, 특히 규모가 커질수록 협업과 공동 성과를 강조한다. 그러나 실제 조직 운영에서 반복적으로 선택되는 인재가 개인 성과 중심의 스타 플레이어라면 구성원은 그 선택을 통해 조직의 실제 기준을 학습한다. 누가 승진했고, 누가 보호받았는지가 곧 조직에서 전하는 실제 메시지다. 그리고 내세우는 메시지와 실제 선택의 간극이 클수록 조직은 방향을 잃는다.
오늘날 넷플릭스나 아마존과 같은 조직에서 자율을 강조할 수 있는 이유 역시, 구성원들에게 판단을 위임할 수 있을 만큼 명확한 기준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AI로 업무가 분절되고 조직의 응집력이 약해질수록, 이러한 기준은 더욱 중요해진다. 정답은 시스템이 제공하지만, 판단은 여전히 사람의 몫으로 남기 때문이다.
<i># 리더십은 기준 설계의 결과</i>
리더십은 개인의 자질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어떤 판단이 허용되고, 어떤 선택이 보상받는지 설계된 조직에서 리더십은 자연스럽게 발현된다. 반대로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면 아무리 유능한 리더라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조직이 가장 신중해야 할 순간은 위기가 왔을 때가 아니라, 오히려 아무 문제없어 보일 때다. 성과가 나오는 시기일수록 리더는 스스로 다시 물어야 한다. 우리 조직은 어떤 선택을 반복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선택은 어떤 기준을 남기고 있는가?
성과 이후의 조직을 지탱하는 힘은 성과가 아닌 기준이다. 이때 리더가 간과하면 안 되는 한 가지는 목표 관리가 아니라 기준 관리다. 어떤 판단을 존중할 것인지 명확히 하고, 그것을 일관된 선택을 통해 끝까지 남겨야 한다. 조직 문화는 관리되는 것이 아닌, 명확한 기준에 따른 반복된 선택을 통해 축적되는 것이다.
김소담 휴넷 LnD혁신팀 연구원
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