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동혁 후보는 근본적으로 강성 우파가 아닙니다. 선거 전략상 잠시 김문수 후보보다 더 오른쪽에 서 있을 뿐입니다. 대표가 되면 결국 중도로 돌아올 겁니다.”국민의힘이 6·3 조기 대선 패배 직후 새 당 대표 경선을 치르던 작년 7월 말. 사석에서 만난 A재선의원의 말은 지금도 귓가에 맴돈다. 당시 장 후보는 한때 ‘정치적 소울메이트’로 불린 한동훈 전 대표와 결별한 뒤 선명한 반탄(탄핵 반대) 기치를 내세워 강성 당원층을 결집하고 있었다. 탄핵 찬성파를 ‘내부 총질러’로 규정하며 강력한 대여 투쟁을 예고했다. 결국 그 전략은 통했다. 포용과 통합을 내세우며 막판 친한(친한동훈)계 지지까지 얻은 김 후보를 0.5%포인트 차로 따돌리고 장 후보는 당 대표에 올랐다.
장 후보의 선거 전략 배경에는 경선 룰이 자리하고 있다. ‘당심’인 책임당원 투표를 80%, ‘민심’인 일반 국민 여론조사를 20% 반영하는 구조였다. 당원의 표심이 사실상 승패를 좌우하는 설계다. 하지만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상황은 달랐을 가능성이 높다. 당시엔 1만 명 규모의 대의원이 경선 결과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당 핵심 간부와 지역·계층 대표로 구성된 이들의 한 표엔 책임당원 수십 명의 표와 맞먹는 의결권이 부여돼 있었다.
그러나 대의원제는 ‘돈봉투 선거’와 계파 정치의 온상이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소수 조직에 과도한 영향력이 집중되면서 당내 민주성과 당원 주권이 훼손된다는 지적도 잇달았다. 결국 국민의힘은 당 대표 경선은 2014년부터, 대선 경선은 2017년부터 대의원과 책임당원에게 동일하게 1인1표를 부여했다. 형식상 동등한 한 표지만 규모에서 우위에 선 책임당원의 표심이 사실상 승패를 결정하는 구조가 됐다.
문제는 책임당원 표심이 곧 절대선은 아니라는 것이다. 조직적이고 열성적인 소수 팬덤의 의사가 과잉 대표되는 부작용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A의원의 예상과 달리 장 대표는 중도로 이동하지 않았다. 오히려 두 차례 탄핵을 거치는 동안 더욱 극단화한 당원 정서에 기대며 일반 민심과 중도층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다. 당 지지율은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고,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소장파는 물론 중진까지 요구하는 ‘절윤 선언’을 장 대표는 끝까지 거부하고 있다. 그럼에도 현 당원 구조에선 설령 지방선거에서 지더라도 장 대표가 대표직을 유지하거나 재도전해 다시 대표가 될 가능성도 있다.
더불어민주당 역시 강성 당원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다. 이념과 가치에 대한 충성도가 높은 이들이 노사모에서 출발해 친문(친문재인), 친명(친이재명), 친청(친정청래)으로 이어지며 당 의사결정과 공천, 지도부 선출에 적잖은 영향력을 행사해 온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문제는 앞으로다. 민주당은 정청래 대표 주도로 지난 1월 당헌을 개정해 대의원과 권리당원 표의 반영 비율을 기존 ‘20 대 1 미만’에서 ‘1 대 1’로 조정했다. 당원주권 시대를 열겠다는 취지지만, 조직화한 강성 권리당원의 영향력은 더욱 커질 가능성이 높다. 국민의힘에 이어 민주당까지 1인1표제 구조로 이동하면서 양대 정당의 이념적 양극화가 한층 심화할 것이란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 문제는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미국 정치학자 스티븐 레비츠키 등은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서 1970년대 초 ‘구속력 있는 프라이머리’ 전면 도입을 미국 정당 정치 균열의 출발점으로 지목했다. 후보 선출 권한이 당 지도부와 대의원에서 일반 당원 및 유권자로 넘어가면서 선동적 인물을 걸러내던 정당의 ‘문지기 기능’이 약화했다는 진단이다. 그 결과 상호 관용과 제도적 자제라는 민주주의의 비공식 규범도 흔들렸다고 봤다.
흥미로운 대목은 미국 민주당의 선택이다. 1970년대 프라이머리 전면화 이후 대선에서 연패를 거듭하자 1980년대 초 ‘슈퍼 대의원’ 제도를 도입했다. 선출직 공직자와 당 지도부에 일정 비율을 배정해 급진적 후보를 견제하는 최소한의 안전판을 둔 것이다. 반면 공화당은 별도의 제동 장치를 마련하지 않았고, 그 결과 도널드 트럼프 같은 ‘강성 포퓰리스트 후보’가 등장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도 당원 주권과 일반 민심을 어떻게 조화시킬지 제도적 고민이 필요하다. 민주주의가 무너지도록 방치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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