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가 피를 부르는 살육의 한복판. 어디선가 권력의 허상을 일깨우는 스님의 염불이 고요히 울려 퍼진다. 그 위로 평온을 부르는 목탁 소리가 포개지지만 검객의 칼춤은 멈출 줄 모른다.

지난달 27일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개막한 '칼로막베스'는 자칫 뻔할 수 있는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긴장감 넘치는 무협극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여기에 동양적 색채와 고선웅 연출 특유의 허를 찌르는 언어유희를 버무려 어디서도 보지 못한 셰익스피어 비극을 완성했다. 2010년 초연 당시 사흘간의 공연으로 동아연극상 작품상과 연출상을 탔다. 이번에는 고 연출이 이끄는 극단 마방진 20주년 기념작으로 다시 무대에 올랐다.
작품의 배경은 머나먼 미래, 강력범과 무정부주의자가 들끓는 흉흉한 세상이다. 정부는 질서 유지를 위해 '세렝게티베이'라는 거대한 수용소에 이들을 격리한다. 하지만 폭력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장차 왕이 될 것'이라는 예언자의 말을 들은 막베스는 왕과 잠재적 경쟁자를 단번에 제거해 예언을 현실화한다. 디스토피아적 설정이 추가됐지만 결말을 제외한 줄거리는 원작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무대에서 가장 눈길을 사로잡은 인물은 국립창극단 출신 소리꾼 김준수였다. 창극단을 떠나 연극에 처음 도전한 그는 이번 작품에서 막베스 아내 역을 맡았다. 막베스의 권력욕을 부추겨 모든 비극의 시작점이 된 인물인 만큼 등장부터 강렬한 존재감을 뽐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붉은색을 뒤집어쓴 그는 때로는 유혹적인 목소리로, 때로는 거친 음성으로 넘나들며 막베스의 심리를 조종하듯 극을 이끌었다. '트로이의 여인들', '패왕별희', '살로메' 등 창극 무대에서 여러 차례 여성 배역을 소화해온 그의 능숙함이 고스란히 드러난 무대였다. 대사를 창으로 풀어내는 대목도 감칠맛 났다.

무대는 수용소를 연상시키는 철제 구조물 외 별다른 장치를 두지 않았다. 대신 탄탄한 팔근육을 드러낸 배우들이 뿜어내는 뜨거운 에너지가 무대를 꽉 채웠다. 초연 당시에도 막베스를 연기한 배우 김호산은 검도·택견·유도·합기도 등 도합 10단의 유단자로 이번 작품에서 무술감독도 맡았다.
액션극의 팽팽한 긴장감은 대사 속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언어유희로 이완된다. "막베스의 시대는 갔다. 이젠 막싸스(쐈어)의 시대다." "카리스마? 칼 있으마!" 등의 말장난식 대사와 슬랩스틱이 헛웃음을 자아내는데 관객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작품은 인간의 끝없는 욕망과 권력의 허상을 칼날처럼 예리하게 드러낸다. 하지만 마냥 무겁기만 한 작품은 아니다. 예측 불가능한 대사와 박진감 넘치는 무술에 시선을 빼앗겨 공연장을 나서는 순간에 비로소 사유의 시간이 시작된다. 공연은 오는 15일까지.
허세민 기자
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