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야흐로 믹스의 시대다. 예전에 사람들이 집을 꾸밀 때에는 대부분 특정 브랜드가 제시하는 하나의 통일된 분위기를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소파와 거실 테이블을, 침대 프레임과 옷장을, 식탁과 의자를 세트로 구매했다. 자신만의 뚜렷한 취향을 가진 이들이 적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했다.
지금은 다르다. 다양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와 플랫폼의 성장과 함께 개인의 취향도 세분화되었다. 사람들은 이제 누군가가 이미 완성해놓은 공간을 그대로 구현하는 대신에, 자신이 추구하는 무드를 정하고 그에 맞는 물건을 조금씩 수집하며 집을 채운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마음에 드는 상품을 찾기 위해 기꺼이 수고를 들인다.
하지만 취향의 수집이 곧 훌륭한 조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거의 완벽해 보였던 물건들도 막상 나의 공간에 들어오면 서로 자리를 찾지 못한 채 겉돌곤 한다. 저마다 목소리를 가진 이들을 하나로 묶어줄 뚜렷한 구심점이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훌륭한 오브제라도 그저 모아두기만 한다면 창고에 지나지 않는다.
좋은 조합은 파편화된 취향들을 하나의 견고한 맥락으로 엮어내는데 있다. 어떤 것은 은밀한 공통분모로 묶이고, 어떤 것은 낯선 이질감으로 부딪히며, 또 어떤 것은 기꺼이 서로의 배경이 되어줄 때 공간은 비로소 자연스러운 설득력을 갖는다. 그리고 이 까다로운 조율의 묘를 살려냈을 때, 비로소 오롯이 나만의 시선과 사유가 담긴 고유한 세계가 완성되는 것이다.
흩어진 취향을 하나의 맥락으로 묶어내는 믹스의 세계에 입문하려 한다면, 그 시작으로 의자를 추천한다. 의자는 가구 중에서도 꽤나 독특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부피가 큰 가구들에 비해 유연하게 위치를 옮길 수 있는 동시에, 우리가 가장 많은 시간 동안 몸을 맞대는 일상의 동반자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의자는 오랜 시간 건축가와 가구 디자이너들에게 영원한 숙제이자 매혹적인 놀이터였다. 덕분에 우리는 거장들의 각기 다른 미학이 담긴 수만 가지의 선택지를 갖게 되었다.
우리가 다양한 가구나 소품 중에서 의자에 주목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그 작은 형태 안에 당대의 시대정신과 기술 혁신이 가장 밀도 있게 압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체의 하중을 온전히 견뎌내야 하는 의자는 가구를 넘어 하나의 미시적인 건축물로서 숱한 디자이너들의 캔버스가 되어왔다.
19세기 중반 나무를 구부리는 곡목 기술로 가구의 대량생산 시대를 연 미하엘 토네트, 강철이라는 소재로 원목 장식 가구를 넘어선 바우하우스의 마르셀 브로이어, 합판 성형 기술로 미드센추리 모던의 황금기를 이룩한 찰스 앤 레이 임스 부부까지. 의자에 대한 탐구는 오늘날에도 계속되며, 지금도 꾸준히 독창적인 디자인의 의자들이 탄생하고 있다.


개성 강한 의자를 공간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하려면, 시각적인 혼란을 잡아줄 명확한 연결고리가 필요하다. 가장 강력한 무기는 단연 색상이다. 따뜻한 우드 톤 거실에 서로 다른 디자인의 의자 두 개를 놓는다고 상상해 보자. 이때 두 의자의 색상을 모두 블랙으로 통일하고, 벽에 걸린 커다란 패브릭 포스터의 패턴, 그 옆의 스툴과 작은 소품들까지 모두 블랙으로 맞추는 식이다.실루엣과 소재가 제각각인 물건들이라도 색이라는 확실한 공통분모로 묶이는 순간, 공간은 겉도는 느낌 없이 세련된 안정감을 가지게 된다.
마지막은 극단적인 대비가 부딪히며 만들어내는 의도된 긴장감을 즐기는 것이다. 검은색 가죽소파를 두었다면, 그 곁에는 마치 팝아트 작품처럼 쨍한 레드 컬러의 의자와 스틸 소재의 거실테이블을 곁들여 보자. 따뜻한 가죽과 차가운 금속 파이프, 그리고 블랙과 레드의 강렬한 대비가 만들어내는 긴장감이 있다.어울리지 않을 것 같던 낯선 텍스처와 색채의 오브제들이 한 공간 안에서 각자의 결핍을 채워줄 때, 공간은 비로소 평면적인 지루함에서 벗어난다. 서로를 밀어내고 또 당기며 만들어내는 묘한 불협화음은, 역설적이게도 그 어떤 통일된 세트 가구보다 더 깊은 울림을 준다.
좋은 공간을 위해 반드시 인테리어 공사나 값비싼 가구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당신의 일상에 기분 좋은 변주를 주고 싶다면, 늘 앉던 의자부터 슬쩍 바꿔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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