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년간 법복을 입었던 노태악 대법관(사법연수원 16기)이 3일 퇴임했다. 1990년 3월 처음 법정에 선 그는 "한순간도 가볍지 않았던, 이제는 익숙해진 그 법복의 무게를 내려놓으려 한다"며 퇴임사를 시작했다.

노 대법관은 이날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에서 진행된 퇴임식에서 대법관 재임 6년을 "이미 정해진 답을 찾아내는 기계적인 발견의 과정이 아니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첨예한 이해관계와 가치관의 충돌 속에서 우리 사회가 마땅히 지켜야 할 정의를 만들어가는 것이었고, 때로는 차선의 정의라도 구하고자 분투해야 했던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고 술회했다.
특히 "'좋은 결론'과 '맞는 판결' 사이에서 그 차이와 간극을 느낄 때면 당혹스러움과 고민으로 밤잠을 설친 날도 없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노 대법관은 퇴임사의 상당 부분을 '정치의 사법화'에 대한 우려에 할애했다. 그는 "정치적으로 해결할 수 있고 그렇게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한 사안을 사법부로 가져오는 현상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며 "정치의 사법화는 양극화된 사회에서 결국 사법 불신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사법의 결론을 정치적으로 해석하면 어느 한쪽의 비난과 공격을 피해 나가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 가운데서도 법관은 정치적 중립을 지켜내야 하며, 이 때문에 법관에게 '용기'라는 덕목이 점점 더 크게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인공지능(AI) 시대에 대한 사법부의 대응도 언급했다. 노 대법관은 "머지않아 인공 일반 지능(AGI)이 등장하고 이른바 특이점(Singularity)을 넘는 지점에서 사법의 본질이 다시 정의되어야 할 수도 있다"면서도 "어떠한 경우에도 사법의 중심에는 인간의 존엄성에 기초한 법관의 통찰력이 자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설치가 확정된 해사국제상사법원에 대해서는 기대감을 드러냈다. 그는 "좋은 법률과 예측 가능한 법적 환경을 갖추는 것이 한 국가의 품격을 높이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며 "대한민국 법원이 국제사회 속에서 한 단계 도약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노 대법관은 사법부의 미래에 대해 "사법권의 독립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고 법관에게 주어지는 특권은 더욱 아니다"라며 "'설마' 하는 우려가 현실이 되는 상황을 마주하며 마음이 무겁지만, 사법부가 국민의 신뢰를 다시 회복하고 존경을 받을 때까지 노력해달라"고 후배들에게 당부했다.
퇴임사 말미, 그는 책 제목을 인용하며 "모든 삶은 서툴다는 문장이 스스로의 모자람에 대한 위로가 됐다"고 말했다.

한편 노 대법관의 퇴임으로 대법관 공석 사태가 현실화됐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이날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청와대와 협의 중이기 때문에 대법원이 일방적으로 말씀드리기는 어렵다"며 후임 제청 지연에 대한 말을 아꼈다. 대법원장의 제청부터 국회 인사청문 절차까지 통상 한 달 이상이 소요되는 점을 감안하면 공석 사태는 상당 기간 이어질 전망이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대법원과 청와대가 후임 대법관 후보를 놓고 물밑 조율에 난항을 겪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허란 기자 wh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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