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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주의 영감과 섬광] 글쓰기와 밥벌이

입력 2026-03-03 17:28   수정 2026-03-04 00:10


내 생을 건사하고 떠받친 노동은 무엇인가? 스무 살 이후 공교육 제도 바깥에서 날마다 책을 찾아 읽었다. 읽고 쓰는 일이 몸의 습관으로 고착되고, 나는 이 행위의 연속성 속에서 독자에서 편집자를 거쳐 저자로 신분 이동을 했다. 나는 매체에 글을 기고해 번 원고료와 책을 써서 받은 인세로 생계를 꾸렸는데, 이것이야말로 밥벌이의 기반이라고 할 수 있다. 그건 재속 프란치스코 수도회 형제들의 일만큼 숭고하지도, 남을 기망하는 후안무치한 자들의 행위처럼 천박하지도 않다. 글을 써서 번 돈으로 자식을 키우고 가족 생계를 꾸려온 내 밥벌이의 이력에 한 톨의 자긍심마저 없지는 않다.
학원 강사와 오퍼상 근무 시절
한때 글쓰기가 아닌 예외적 노동으로 밥벌이를 한 적이 있다. 매미가 높은 데시벨로 울어대는 소리에 뇌가 쩌렁쩌렁 울리던 여름이었다. 나는 음악감상실에서 파가니니와 차이콥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듣거나 황석영이나 송영 같은 작가들의 첫 단편집을 읽으며 소일했다. 어느 날 종로서적 앞에서 고교 선배를 만났는데, 그는 반색을 하며 입시학원에서 국어 과목 강사를 하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의 제안을 받아들여 아파트 대단지의 상가 건물에 강의실 몇 개를 두고 꾸리는 입시학원에서 국어 과목을 가르쳤고, 수강생의 반응도 나쁘지 않았다. 아마 운이 좋았다면 나는 ‘일타 강사’로 성공했을 텐데, 강사 노릇은 어이없이 막을 내렸다. 원장이 몇 달 치 강사료를 차일피일 미루더니 나중엔 돈이 없다고 뻗대었다. 나는 즉시 한순간의 망설임 없이 학원 강사 자리를 내려놓았다.

얼마 뒤 덕수궁 현대미술관에서 피카소 초대전을 보고 나오다가 또 다른 선배를 만났다. 그 선배는 나를 기성복을 파는 상점으로 끌고 가더니 옷 한 벌을 사주었다. 그는 명함을 주며 자기 사무실로 찾아오라고 당부했다. 그런 인연으로 생활 도기류 수출을 대행하는 오퍼상에 채용되었다. 사무실은 시청 인근에 있었는데, 주로 북미와 서유럽 등의 바이어들과 거래하는 오퍼상이었다. 직원은 열 명 남짓으로 단출했다. 수출 붐을 타고 소규모 오퍼상 사무실들이 생겨나던 시절이었다. 내 주요 업무는 수입신용장 요구대로 ‘네고 서류’(nego document)를 만드는 일이었다. 영문 타자를 치고, 약간의 무역 영어도 필요했다. 해운회사의 선하증권, 화학검사소의 증명서, 원산지 증명서 등을 발급받고, 영문 타자기의 자판을 쳐서 네고 서류를 작성했다. 그걸 외환은행의 국제부에 제출하는 데까지가 내 업무였다.
신춘문예 당선 이후 출판계로
오퍼상에서 일하는 내내 스미스 코로나 영문 타자기 자판을 미친 듯이 두드렸다. 정한 날짜에 월급이 밀리지 않고 나오는 당연한 사실에 고마워하며 그곳에서 두 해 동안이나 근무했다. 하지만 그 일을 평생 하고 싶지는 않았다. 다시 시립도서관 참고열람실로 돌아가서 니체, 사르트르, 카뮈 같은 실존주의 철학 책을 뒤적였다. 시를 슬렁슬렁 습작하며 한가롭게 보낸 날들은 더없이 행복했다. 하지만 희망은 빈곤하고, 외로움과 절망은 풍요로웠다. 나는 스스로를 자유라는 감옥에 갇힌 수형자라고 여겼다. 스물네 살 때 신춘문예에 시와 평론이 당선했다. 그걸 계기로 출판계에 들어와서 만 열다섯 해 동안 책을 만들면서 가족 부양의 의무를 다했다.

노동이란 몸을 밑천 삼아 사회적 재화를 생산하는 일이다. 내 시간과 신체 에너지를 써서 다양체의 생산을 해내며 임금과 맞바꾸는 일, 즉 물질의 위치와 형질에 변형을 주는 행위를 뭉뚱그려 노동이라고 명명한다. 노동은 아무리 하찮더라도 행위의 위계에서 신성한 것으로 규정된다. 우리는 노동으로 밥벌이를 하고 자식들을 기르며 국가에 세금을 낸다. 하지만 그건 시적(poetique) 실천의 범주에 들지 않는다. 메마른 노동에 매몰된 이들은 시적 실천의 바깥으로 미끄러지며 속절없이 소외를 겪는다.

나는 철학적 사유를 하고 예술 향유자로 산 것을 한심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가끔은 스스로에게 다른 삶을 살 가능성은 없었을까 묻는다. 음악과 춤, 시와 철학은 도취를 낳는다. 반면에 모루 위에 불에 달군 쇠를 망치질하는 노동자는 낫이나 칼 같은 도구-사물을 생산한다. 자본주의의 위계에서 예술과 신체 노동은 불가피하게 길항한다. 그 속에서 다름을 체감하고 그걸 아비투스로 새긴 채 생을 건너왔다. 예술의 효용과 노동의 효용은 등가로 호환되지 않는다. 예술이 감각과 환(幻)을 빚어 영혼에 스며들며 그 형질을 바꾸는 기제로 작동한다면 노동은 임금과 맞교환되면서 물질적 사회적 처지에 굴곡을 만든다. 예술이 노동의 가치를 제약한다면 노동은 선형적인 반복에서 예술에의 욕구를 제한한다.
쓰고 읽는 일의 기쁨과 보람
나이 들수록 몸은 왜소해지고 부쩍 여기저기 탈이 생긴다. 팽팽하던 피부는 처지고, 근육은 줄어들며, 신진대사는 느려진다. 편도체나 해마의 기능이 떨어지며 기억력은 믿기 힘들 정도로 느슨해진다. 인간 누구도 신체의 쇠락을 피할 수는 없다. 검은 머리가 허옇게 변한 옛 벗의 모습에서도 노화를 씁쓸하게 체감한다. 우리는 다른 화제를 거두고 제 몸의 부실함을 고자질하기에 바쁘다. 옛 벗은 몸이 파업을 한다고 투덜댔는데, 그 투덜거림에 나는 공감하며 웃는다.

생의 쇠락 속에서도 꾸역꾸역 글을 쓴다. 원고를 매체로 보내면 원고료로 등가 교환되는데, 이 등가 교환은 소름 끼치도록 정확하다는 점에서 정직한 노동이라 할 수 있다. 쓰고 읽는 일이 기쁨과 보람을 안기는 밥벌이가 아니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글쓰기는 내게 안정된 밥벌이의 수단이었을 뿐만 아니라 불행과 위기를 회피하는 유력한 방편이기도 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을 수 있었으니 행운이라 할 만하다. 나는 항상 그 사실에 감사한다. 척추만곡증이나 보르헤스처럼 시력을 잃는 노동 재해를 겪지 않은 채 그 일을 수행한 것도 뿌듯하다. 그래서 가끔은 어깨를 두드리며 수고했다고 말해주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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