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관훈클럽이 마련한 행사에서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 관장과 식사할 기회가 있었다. 그 자리에서 고령의 전직 장관 한 분이 유 관장에게 덕담을 건넸다. “한 나라의 문화 수준을 알려면 국가 최고 박물관 관장이 누구인지 봐야 한다. 그 점에서 한국은 유 관장 덕분에 이제야 어디 가서 명함 좀 내밀 수 있게 됐다.”1949년생인 유 관장의 공훈은 전문성과 대중성을 모두 잡은 꾸준한 글쓰기다. 영남대 교수 시절 첫 권을 내놓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20권을 포함해 45년간 45권을 펴냈다. 1년에 한 권씩 저서를 낸 셈이다. 하지만 그가 저술 공로로 받은 상 중 첫손에 꼽는 것은 대구경북(TK) 지역 민간 부문 최고 권위 문화상인 금복문화상 정도다. ‘TK 출신이 아니면서 TK 긍지를 높였다’는 점이 높이 평가받았다고 한다.
이와 비슷한 현상이 다른 선진국에서도 벌어진다면 할 말이 없지만 사실은 정반대다. 미국, 유럽만 해도 <사피언스> <총, 균, 쇠> 같은 과학 명저가 쏟아져 나온다. 한국 문화유산과 미술에 꽂힌 이 땅의 젊은 학도들은 그나마 유홍준이라는 ‘지식의 등대’를 좇을 수 있었지만 과학자·공학자를 꿈꾸는 청년은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와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같은 서양 ‘대중서’를 보며 꿈을 키운다.
많은 이가 한국 사회의 의대 광풍에 우려의 목소리를 낸다. 미국에서도 1990년대 초까지 의대가 공대보다 인기가 많았다. 애플, 구글, 테슬라 같은 빅테크가 등장하면서 그 고리를 끊었다. 우리도 이공계 진학을 권장하기 위해 빅테크에 준하는 연봉을 줘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하지만 연봉만으로 청년의 꿈에 불을 지필 수는 없다. 일론 머스크가 화성 탐사라는 꿈을 꾸도록 만든 건 유년 시절 읽은 공상과학 소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였다. 이참에 우리도 ‘한국판 퓰리처상’을 만들면 어떨까. 당장 교수에게 논문을 쓰지 말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조금이나마 다른 쪽으로 열정을 돌릴 수 있는 인센티브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연봉은 직업 선택의 ‘넛지’일 뿐이다. 세대를 움직일 수 있는 건 스토리와 영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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