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총장 선임을 ‘장기 프로젝트’로 관리해야 할 상황입니다. 완료 시점은 알 수 없는….”최근 KAIST 내부 관계자가 기자에게 건넨 말이다. 1년 넘게 이어진 총장 공백과 원점으로 돌아간 선임 절차를 두고 나온 자조 섞인 한마디였다.
지난달 26일 KAIST 이사회에서 후보 세 명에 대한 총장 선임 안건이 표결에 부쳐졌지만 과반 득표자가 나오지 않아 최종 선임이 무산됐다. 총장 선임을 위해서는 처음부터 다시 절차를 밟아야 한다. 공모부터 검증, 이사회 의결,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승인까지 수개월의 추가 공백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한 유력 후보는 이사회를 상대로 “오늘 결정에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호소했지만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일각에선 새로운 ‘총장 유력 후보’가 이미 정해져 있다는 소문까지 들린다.
총장 선임 절차가 하염없이 길어지자 KAIST 내부 분위기는 악화일로를 걸었다. 사이비 종교 논란 등 일부 후보를 둘러싼 네거티브 공방도 있었고, 교수 사회는 갈라졌다. KAIST에서는 연구 성과가 나오면 홍보팀이 공식 자료를 배포하는 것이 관례였다. 하지만 어느 시점부터는 특정 후보와 관련한 자료가 별도로 배포되는 일이 계속 벌어졌다. 리더십 공백이 길어지면서 생긴 조직 내부의 균열이다.
KAIST가 이번 사태로 받은 타격은 결코 가볍지 않다. KAIST는 반도체 등 한국을 지탱하는 전략산업 인재를 길러낸 곳이다. 연구 성과는 기술이전과 창업, 기업 공동연구로 이어지며 산업을 발전시켜왔다. KAIST의 리더십 방향은 곧 한국의 미래산업 경쟁력을 좌우한다.
같은 시기 중국 대학은 전혀 다른 그림을 그렸다. 정부의 대규모 투자뿐만이 아니다. 총장 교체와 무관하게 장기 전략이 유지되고 연구 방향도 수년 단위로 일관성이 있었다. 그 결과 중국 대학은 인공지능(AI), 로봇 등 미래 기술 분야를 필두로 세계 대학 순위 10위권을 점령했다. 하버드대와 매사추세츠공대(MIT) 등 미국 주요 대학에서도 총장이 몇 년 만에 바뀌는 일은 드물다. 10년 이상 장기간 재임하며 대학의 연구비 투자 방향과 발전 계획을 꾸준히 이어간다.
반면 한국 과학기술 두뇌의 집결지인 KAIST는 리더십 공백 속에서 1년 넘게 방향조차 정하지 못한 채 시간을 흘려보냈다. KAIST 총장 선임은 한 대학만의 인사 문제가 아니다. 미래를 책임질 국가 과학기술 시스템이 효율적으로 작동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바로미터다. 과학기술 경쟁은 결국 속도 싸움이다. 하루하루 급변하는 AI 기술 경쟁 속에서 1년이라는 공백은 이미 치명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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