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2년 10월 30일, 영화계의 거장 조지 루카스는 일생일대의 계약서 앞에 앉아 있었다. 사인을 끝낸 그는 월트 디즈니 컴퍼니의 밥 아이거 회장이 악수를 청할 때까지, 6초 동안 자식을 떠나보내는 부모의 모습이었다. 스타워즈 세계관을 비롯한 루카스필름이 우리 돈 약 4조 5000억원에 월트 디즈니 컴퍼니로 인수되는 날이었다.
조지 루카스의 순수한 애정이 깃든 결정체, 루카스필름의 성공신화에 첫 단추가 된 영화가 있다. 스타워즈 제작에 마중물이 된 이 초기 흥행작에서 조지 루카스는 20세기 중반을 주름잡던 팝 컬처 식문화를 조명했다.
1960년대는 미국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히피 문화가 퍼지고 있을 때다. 멋들어진 자동차를 타고 햄버거집에 모여서 데이트를 하고, 기성사회에 반기를 들고 자유를 갈구하면서 젊음을 불태웠다. 그들 속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조지 루카스는 예술대학 진학에 반대했던 부모님 곁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서른 살이 되기 전까지 백만장자로 성공해서 돌아오겠다며 큰소리 떵떵 치던 반항아였지만, 자유로운 영혼으로 홀로서기를 한 이후부터는 스스로 끼를 증명하기 시작했다.
범상치 않은 그가 1971년에 독립적으로 루카스필름을 설립했고, 첫 번째로 만든 영화는 햄버거집을 배경으로 만든 저예산 드라마 '청춘낙서'(American Graffity)였다. 본인이 겪었던 청춘 이야기를 각색해서 사실적으로 그려낸 이 다큐성 영화는 파라마운트 영화 '대부'의 감독, 프란시스 코폴라가 제작을 지원하고 연출을 맡기도 한다. 관객들로부터 지나간 날의 향수를 불러일으킨 결과, 개봉해 1973년 박스오피스 성적이 '빠삐용'을 넘어설 정도로 대성공이었다.
제작비 약 10억원으로 800억 가까운 흥행신화를 이룬 조지 루카스는 부모님께 큰소리쳤던 것이 허풍이 아님을 증명했는데, 이때 그의 나이 고작 28세였다. 청춘낙서의 성공은 어린 시절부터 하고 싶었던 공상과학 영화 제작의 초석이 되었고, 그렇게 스타워즈의 대서사가 시작될 수 있었다.

청춘낙서의 첫 장면부터 등장하는 햄버거집 '버거시티'는 지금도 실존하는 체인점 '멜스 드라이브인'(Mel's Drive-in)이다. 롤러스케이트를 탄 서버가 햄버거와 밀크셰이크 같은 음식을 들고 자동차로 직접 가져다주던 20세기 중반 미국 팝 컬처 식문화의 상징이기도 하다.
세계 2차대전 직후 1947년 샌프란시스코에서 문을 연 멜스 드라이브인은 베이비부머의 등장과 함께 중산층을 중심으로 빠르게 보급되던 자동차 문화의 시대적 물살을 제대로 탔다. 샌프란시스코 최초의 드라이브인이라는 선점 효과도 있었겠지만, 오픈 첫 달 만에 투자비용을 회수할 정도로 히피 문화의 발상지 샌프란시스코에서 젊은이들의 모임 장소로 각광을 받았던 것이다.
샌프란시스코 롬바드 스트리트에 있는 멜스 드라이브인은 창업자의 아들이 가업을 이어 1986년에 오픈한 지점이다. 드라이브인의 황금기를 추억하는 레트로 스타일 네온사인부터 눈길을 끄는데, 외관의 몽환에 젖어서 안으로 입장하게 되면 주크박스가 정면에 서있다.
조지 루카스는 락앤롤 음악을 청춘낙서 스토리 전개의 근간으로 삼았는데, 주크박스의 시각적인 존재감만으로도 그때 그 시절의 락앤롤 분위기가 느껴진다. 매장의 분위기는 복고풍 미드 센추리 모던이고, 카운터 테이블과 부스가 늘어서 있는 모습은 전형적인 아메리칸 다이너(Diner)의 역사를 재현하고 있다.

다이너는 19세기 말 미국 동부에서 유래된 것인데, 마차 위에 만든 이동식 간이식당으로 시작됐다. 20세기로 넘어와서 기차 식당칸을 개조한 다이너들이 우후죽순 생기면서 전성기를 이루었고, 자동차의 대중화로 인해 드라이브인 형태로 진화 과정을 거쳐온 것이다.
메뉴는 예나 지금이나 고칼로리 음식이 대부분인데, 원래는 교대 근무 노동자들을 위해 항시 간편식을 제공하던 서비스가 진화해서 오늘날 미국 대중 식문화를 상징하는 햄버거와 밀크셰이크 등의 메뉴로 자리 잡은 것이다.

멜스 드라이브인의 대표 메뉴는 '멜스 페이머스 버거'인데, '멜버거'(Melburger)라는 애칭이 있다. 1947년 창립 때부터 지켜온 이 전통 메뉴는 50년대 다이너 스타일의 버거다. 미국산 앵거스 비프 패티는 굽기 정도를 고를 수 있고 치즈 종류 또한 선택할 수 있다.
미디엄 레어 굽기에 체더치즈의 조합, 이글거리는 패티 위에서 녹아내린 치즈는 돈가스 위에 뿌려진 소스처럼 찰떡궁합을 이룬다. 노릇하고 반질반질한 번 위로는 깨가 풍성하게 뿌려져 있고, 무심한 듯 썰어서 포개진 양배추는 싱싱함을 자신 있게 드러낸다. 멜버거는 수제 햄버거 풍미로 먹는 즐거움을 선사하고, 고칼로리의 든든함은 식후 왕성한 신체활동을 자극한다.
간편하게 든든히 먹을 수 있고 확실한 테마까지 겸비한 멜스 드라이브인은 유니버설 스튜디오 테마파크의 러브콜을 받기도 한다. 청춘낙서를 배급했던 유니버설은 80년대 후반에 테마파크 사업을 확장하고 있었는데, 멜스 드라이브인 브랜드를 시그니처 테마 다이닝 콘텐츠 전략으로 풀어낸다.
왕성한 신체활동이 필요한 테마파크에서 간편하게 고칼로리 음식을 먹을 수 있고 스토리까지 경험할 수 있으니, 멜스 드라이브인은 독보적인 브랜드 가치가 있었다. 미국 유니버설 스튜디오 할리우드와 올랜도에서의 성공 이후, 오사카, 싱가포르, 베이징 유니버설 스튜디오까지, 멜스 드라이브인은 테마파크의 고정 콘텐츠가 되었다.

멜스 드라이브인이 걸어온 길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시대에 따라 식문화도 변하기 때문이다. 50년대 드라이브인의 황금기를 정점으로 60년대에 들어서는 맥도날드 같은 패스트푸드 식문화가 급부상하는 바람에 희비가 엇갈렸다.
70년대 초에 드라이브인의 향수를 자극했던 청춘낙서를 통해서 잠시 회자가 되기도 했지만, 영화 촬영지 버거시티 햄버거집은 몇년 가지 않아서 문을 닫았고 체인점 수는 쪼그라들었다. 80년대 말 이후로는 테마파크에서 옛 추억을 경험하는 콘텐츠로 기사회생을 했으니, 세상일 참 모를 일이다. 멜스 드라이브인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 같은 햄버거집이라도 콘텐츠의 관점에서 바라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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