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한복판에 공장을 짓는 중소기업이 늘고 있다. 대량생산 중심의 산업화 시대를 지나 맞춤형 소량 생산이 대세로 자리잡으면서다. 우수 인재 확보와 회사 홍보 효과로 비싼 땅값을 상쇄하고 있어 친환경 기술을 보유한 ‘도심형 팩토리’가 확산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주택가에 반도체 소재 공장

서울 대림동 신영초등학교 앞에는 반도체 소재 공장이 있다. 여러 유해물질이 나올 수 있어 반도체 관련 생산시설은 학교 주변이나 주택가에 세울 수 없다. 그러나 반도체 증착 공정에 쓰이는 박막 소자 업체인 반암의 공장은 다르다. 박막 소자 생산 과정에서 산소와 질소 같은 인체에 무해한 가스만 배출하기 때문이다.
한수덕 반암 대표는 “증착에 쓰이는 박막을 코팅하는 단계의 짧은 공정만 반복하기 때문에 환경 규제 제약을 받지 않는다”며 “유해물질을 배출하지 않아 자신있게 학교와 주택가 옆에 공장을 지었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2022년 창고이던 곳을 개조해 115㎡ 면적의 미니 공장을 세웠다. 소량의 소재를 친환경 기술로 생산해 4년간 주민 민원이 거의 없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최종 제품도 광학용 소자 같은 고부가가치 소재여서 땅값이 비싼 도심 공장의 단점을 보완했다.
우수 인재를 확보하기 쉬운 점이 도심 공장의 가장 큰 이점으로 꼽힌다. 반암의 정규직 13명 중 4명이 박사학위를 받았고 2명이 석사 출신이다. 최근에도 채용 공고를 냈는데 모두 모집 인원 이상으로 지원자가 몰렸다. 한 대표는 “서울 도심에서 일할 수 있어 젊은 직원을 뽑기 수월하다”며 “서울 내 대학 및 반도체 연구소와 협업하기 좋은 것도 도심형 생산 생태계의 장점”이라고 강조했다.
◇성수·동대문에도 친환경 생산시설

고급 안경 제조사인 브리즘도 서울 도심을 새로운 생산 거점으로 택했다. 지난해 9월 경기도 과천시 인덕원 IT밸리에 있던 폴리머 안경테 공장을 서울 성수동으로 이전했다.
박형진 브리즘 대표는 “기술력을 기반으로 도심형 공장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어 한때 제조업의 상징이던 성수로 옮겼다”며 “빠르게 상업화된 성수동 한복판에서 ‘메이드 인 성수’의 제조 정신을 복원해 도심형 팩토리의 성공 스토리를 쓰고 싶다”고 했다.
고도의 기술력이 노동 집약적인 안경 제조업을 서울 한복판에서 할 수 있게 한 배경이다. 브리즘은 대형 안경점 규모인 연면적 661㎡의 공장에서 모든 제품을 생산한다. 안경테 설계와 제조, 렌즈 연마도 모두 한 공간에서 이뤄진다. 3D프린팅을 중심으로 모든 생산 과정을 자동화한 덕분이다. 직원은 4명에 불과하지만 이곳에서 연간 15만 개의 안경을 생산할 수 있다.
프리미엄 참기름 제조업체인 쿠엔즈버킷은 2019년부터 서울 동대문에서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설립 때인 2012년에 세운 첫 공장 위치도 서울 역삼동 한복판이었다. 친환경 식품인 식물성 기름의 생산과 판매, 소비를 도심에서 모두 이뤄지도록 하려는 취지다.
이 회사는 전체 생산 과정을 소비자가 직접 볼 수 있도록 공장을 설계했다. 박정용 쿠엔즈버킷 대표는 “과거 방앗간은 참깨나 들깨, 고춧가루 같은 재료 원산지나 함량을 속여 기름을 생산해 소비자 불신이 컸다”며 “지상 4층인 공장을 처음 지을 때부터 모든 시설을 투명한 유리 벽으로 설계해 방문객이 전 과정을 보고 맛볼 수 있게 했다”고 설명했다.
쿠엔즈버킷은 도심 공장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친환경 제조법을 적용했다. 고온에서 참기름과 들기름을 짜는 기존 방앗간과 달리 저온 압착 방식으로 기름을 추출해 탄 냄새가 나지 않는다.
박 대표는 “친환경 기름이라는 입소문이 나 국내외 레스토랑과 5성급 호텔에서 많이 찾는다”며 “단순 제조를 넘어 소비자와 직접 소통하는 브랜드 경험으로 이어지는 게 도심형 팩토리의 강점”이라고 강조했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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