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음악과 시대 연주 분야를 대표하는 세계적 ‘힙 지휘자’ 존 엘리엇 가디너(82)가 자신이 2024년 창단한 컨스텔레이션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을 이끌고 바로크와 고전 시대 종교음악의 정수를 들려줬다.‘힙(HIP·Historically Informed Performance)’은 작품이 발표됐을 당시의 연주기법을 바탕으로 음악을 재현하는 ‘시대 연주’ 혹은 ‘원전 연주’를 뜻한다.
지난 3일과 4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두 명의 거장이 남긴 종교 음악이 이틀에 걸쳐 울려 퍼졌다. 첫날에는 ‘음악의 아버지’ 바흐의 , 둘째 날에는 ‘음악의 신동’ 모차르트(1756~1791)의 <c단조 미사(K.427)>와 <레퀴엠(K.626)>이 연주됐다.

바흐 예술의 총결산 'b 단조 미사'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1685~1750)의 'b단조 미사'는 1733년부터 1749년까지 약 16년에 걸쳐 완성된 작품이다. 1733년 드레스덴 궁정을 위해 작곡된 ‘자비송(Kyrie)’과 ‘영광송(Gloria)’을 출발점으로, 바흐는 말년에 기존 작품을 정리하고 새로운 악장을 더해 완전한 미사곡 형태로 묶었다.
가톨릭 미사의 여섯 개 통상문인 자비송, 영광송, 신앙 고백(Credo), 거룩하시도다(Sanctus), 찬미 받으소서(Benedictus), 하느님의 어린양(Agnus Dei)을 모두 포함하며 엄격한 대위법과 이탈리아의 성악곡, 프랑스의 춤곡 및 기악 협주곡 양식 등이 결합한 총체적 작품이다. 루터교 작곡가인 바흐가 가톨릭 라틴어 전례문 전체를 음악으로 완성했다는 점에서도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다양한 음악 어법을 집대성했다는 점에서 흔히 ‘바흐 예술의 총결산’으로 불린다.
415Hz와 430Hz…두 시대의 음정 차이
이번 공연에서 특히 인상적인 것은 시대 연주 특유의 음정(pitch) 차이였다. 첫날 바흐 작품은 바로크 시대 관행에 따라 기준 음 A를 415Hz로 조율했다. 손가락을 흔들어 악기를 울려내는 주법인 비브라토를 절제한 연주와 어우러져 투명하고 명상적인 음향을 자아냈다. 현대 오케스트라의 표준인 440Hz에서의 A(라) 음정이 415HZ에서는 G#(솔 샵)으로 거의 반음 낮게 들린다. 둘째 날 모차르트 작품에서는 430Hz 전후의 고전 시대 피치가 사용됐다. 두 작곡가의 작품 속 음정 기준 차이는 18세기 후반으로 넘어오며 악기의 구조가 발전하고 연주 환경이 변화하면서 점차 더 밝고 큰 음량의 음향이 요구됐기 때문이다.
가디너가 이끈 컨스텔레이션 오케스트라는 첫날에는 절제된 음향으로 바로크 음악의 구조적 아름다움을 강조했고, 둘째 날에는 보다 풍성하고 역동적인 사운드로 고전주의 음악의 드라마를 보여줬다.

바로크와 고전 시대를 가르는 악기의 변화
바로크 시대에 현악기의 기본 구조는 오늘날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세부적인 부속에서는 큰 차이가 난다. 바로크 바이올린은 턱받침이 없었고 첼로 역시 엔드 핀 없이 연주됐다. 줄(현) 역시 금속이 아닌 동물의 창자로 만든 거트(gut) 재질을 사용했다.

특히 중요한 차이는 활의 형태였다. 바로크 활은 오늘날과 달리 밖으로 굽은 형태로, 다운 보우에서 강한 음색을 내고 업 보우에서는 약한 음색을 낸다. 이는 신께 조용히 속삭이며 기도하듯 음악을 표현하는 바로크 음악의 성격과 잘 맞았다.
반면 고전 시대에 들어서면서 활은 안으로 굽은 현대형 활로 변화하기 시작한다. 지휘자이자 음악학자인 니콜라스 아르농쿠르는 이를 두고 “바로크 음악은 말하는 음악이고, 모차르트 이후의 음악은 노래하는 음악”이라고 설명했다. 긴 선율을 지속해서 연주하는 소스테누토 표현이 요구되면서 활 역시 발전한 것이다.

관악기의 변화도 두드러졌다. 플루트와 오보에, 바순 등의 목관악기는 고전 시대로 넘어오며 키(key)가 추가되면서 반음계 연주가 한층 수월해졌다. 반면 호른과 트럼펫은 여전히 밸브가 없는 내추럴 금관악기였기 때문에 조성에 따라 관을 교체하거나 입술로 음정을 조절해야 했다. 오늘날과 같은 밸브 시스템은 19세기 낭만 시대에 이르러서야 등장했다.
또 하나의 중요한 변화는 클라리넷의 등장이다. 이 악기는 바로크 시대에는 존재하지 않았으며 남독일의 악기 제작자 요한 크리스토프 데너(1655~1707)가 민속악기 샬뤼모를 개량해 탄생했다.
클라리넷은 넓은 음역과 부드러운 음색 덕분에 18세기 초 유럽 전역으로 확산했고 만하임악파에 의해 오케스트라와 교향곡에 본격적으로 편입된다. 어린 모차르트 역시 이 악기에 매료돼 훗날 유명한 클라리넷 협주곡을 남기기도 했다.

돋보인 베이스와 테너 독창
첫날 바흐의 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니케아 신경(Credo) 가운데 ‘또한 주님이시며 생명을 주시는 성령을 믿나이다(Et in Spirit um Sanctum)’를 부른 베이스 알렉스 애시워스의 독창이었다. 안정적인 호흡과 깊이 있는 음색으로 바흐 음악의 신앙적 고백을 설득력 있게 전달했다.
이어 4부의 ‘찬미 받으소서(Benedictus)’를 맡은 테너 조나단 헨리는 가디너의 지휘에 맞춰 탁월한 호흡 유지와 성량 조절을 보여주며 작품의 서정성을 살렸다.

가디너는 컨스텔레이션 합창단의 위치를 바꿔가며 작품의 특징을 살려냈다.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의 4성부 합창단은 때로는 좌, 우로 나뉘어 8성부로 분리돼 연주하며 안정적인 가창과 균형 잡힌 앙상블을 선보였다.

바로크 시대 전통이 살아 있는 모차르트 C단조 미사
끝내 완성하지 못한 마지막 작품, 레퀴엠
둘째 날 연주된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1756~1791)의 <c단조 미사(K.427)>는 미완성 작품이다. Kyrie와 Gloria는 대부분 완성됐지만, Credo는 중간까지만 작곡됐고, Agnus Dei는 아예 작곡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 작품은 모차르트 종교 음악 가운데 가장 장대한 규모를 지닌다. 말년에 바흐와 헨델의 음악을 연구했던 영향으로 대위법적 합창과 푸가가 풍부하게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어 연주된 <레퀴엠(K.626)>은 1971년 작곡 도중 모차르트가 사망하면서 끝내 완성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 작품 역시 모차르트가 남긴 음악에서 강력한 합창과 대위법적 구조 및 극적 음악 전개를 통해 바흐와 헨델의 영향이 드러난다.
끝내 미완성으로 남은 이 작품은 모차르트의 제자 프란츠 자베르 쥐스마이어(1766~1803)가 스승의 스케치를 바탕으로 완성했다. 이후 프란츠 바이어, 하워드 아르만, 로버트 레빈, 리처드 마운더 등 여러 음악가가 다양한 판본을 내놓았지만, 쥐스마이어 판본이 '모차르트의 시대에 가장 가까운 판본'으로 여겨져 오늘날에도 가장 널리 연주된다. 평소 이러한 견해를 밝혀온 가디너는 이번 내한 공연에서도 쥐스마이어 판본을 선택했다.
가디너와 컨스텔레이션 오케스트라, 합창단은 이틀에 걸쳐 두 시간이 넘는 러닝타임 동안 바흐와 모차르트라는 세계 음악사의 두 거장이 남긴 종교 음악의 대작을 밀도 높은 연주로 펼쳐 보이며 관객의 집중을 끝까지 사로잡았다. 아쉬운 대목도 있었다. ‘경이로운 나팔 소리(Tuba mir um)’를 부른 베이스 조 머피의 독창에서 호흡과 성량의 한계가 드러나며 긴장을 유발해 대작의 흐름이 잠시 흐트러지는 아쉬움도 있었다.

과거의 음향으로 오늘을 울리다
1943년 영국에서 태어난 가디너는 1964년 몬테베르디 합창단을 창단하고, 1978년 잉글리시 바로크 솔로이스트를 조직하며 바로크 음악의 시대 연주 운동을 확산시켰다. 가디너의 뒤를 이어 르네 야콥스(1946년·벨기에), 필립 헤레베헤(1947년·벨기에), 마사아키 스즈키(1954년·일본) 등이 오늘날 고음악의 부흥을 이끈 대표적 지휘자로 자리매김했다.
가디너는 한 인터뷰에서 “시대 연주의 신선함으로 관객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바흐와 모차르트의 음악으로 낭만주의 대편성 오케스트라의 음향에 익숙해 있던 한국 청중에게 ‘바로크 시대로의 여행’을 선사했다.
이번 공연은 역사주의 연주가 바로크에서 고전 시대로 확장되는 흐름을 한자리에서 보여준 현장이기도 했다. 바흐에서 모차르트로 이어지는 프로그램 속에서 각 시대의 악기와 연주 방식이 어떻게 다른지 생생히 드러났다.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 울려 퍼진 415Hz와 430Hz의 음향은 바로크에서 고전으로 이어지는 음악사의 흐름을 귀로 체험하게 해준 순간이었다.
조동균 기자 chodog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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