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임시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유류 공급에 심각한 차질이 빚어진 것도 아닌데 갑자기 주유소 휘발유 가격이 폭등했다”며 석유류 제품에 최고 가격을 지정할 것을 지시했다. 이 대통령은 “어려운 시장 환경을 악용해 매점매석이나 폭리를 취하려는 시도를 강력하게 단속하고 단호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주유소가 공급 가격을 큰 폭으로 인상하는 행위를 ‘바가지’로 규정하고 영업 정지나 담합 조사 같은 기존 제재를 넘어서는 과태료·과징금을 부과할 것을 지시했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이날 기준 서울 주유소 휘발유 평균 판매가격은 L당 1889원으로, 중동 사태 직전인 지난달 27일 L당 1754원에서 6일 만에 7.7% 뛰었다. 경유는 같은 기간 L당 1667원에서 1895원으로 13.7% 급등했다. 정유업계는 “중동 사태 직후 소매 수요가 폭증해 주유소의 유류 재고 소진 속도가 빠르다”며 “가격 상승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는 입장이다.이 대통령이 주문한 최고 가격 지정은 석유사업법을 근거로 한다. 이 법 23조는 석유 수입·판매 가격이 급등락할 경우 산업통상부 장관이 최고액 또는 최저액을 지정할 수 있다. 석유엔 적용된 적이 없지만 석탄·연탄 등에 대해선 예외적으로 시행된 적이 있다. 이 대통령은 “지금이 예외적인 상황”이라며 “유류만 이렇게 방치할 일이 아니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국제 유가 문제, 원유 조달 문제는 앞으로도 반복될 수 있는 일”이라며 원유, 가스, 나프타 수입처 다각화를 추진하라고 지시했다.
이 대통령은 “자금 시장 불안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마련된 100조원 규모의 시장 안정 프로그램을 적절하고 신속하게 집행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또 “중동 수출 의존도가 높은 기업과 해운 분야는 이번 상황에 직접 영향을 받기 때문에 신속하고 폭넓은 정책 금융 지원을 서두르길 바란다”고 했다.
50년 만에 '최고가격제' 부활…6일부터 매점매석 집중 단속
이재명 대통령이 기름값을 가파르게 올린 주유소들을 겨냥해 ‘최고가격 지정제’라는 초강수를 꺼내든 건 급등한 국제 유가가 통상 1~3주 걸리던 시차 없이 국내 휘발유 가격에 즉각 반영됐기 때문이다. 5일 전국 주유소의 평균 휘발유 판매가격은 3년7개월 만에 L당 1800원을 훌쩍 넘어섰다. 지난 1일 1695.89원(종가 기준)에서 나흘 만에 150원 가까이 올랐다. 주유소들은 본격적 인상 전에 기름을 넣으려는 수요가 몰려 재고가 빠르게 소진되고 있는 데다 정유사의 공급 가격이 다음주부터 크게 오를 것으로 예상돼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항변했다.강유정 청와대 대변인은 “대통령은 하루 만에 L당 200원 가까이 기름값을 올린 주유소의 행태를 강하게 질타하고, 위기 상황을 악용한 바가지에 대한 엄정 대응을 지시했다”고 말했다.
국제 원유 가격은 이란의 호르무즈해협 봉쇄 여파로 급등했지만 아직 배럴당 80달러대에 머물고 있다. 국내 원유 공급 위기도 빚어지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주유소들이 가격을 너무 가파르게 올려 폭리를 취하고 있다는 게 정부 시각이다.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이날 오후 5시 기준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은 전날보다 56.84원 오른 L당 1834.32원을 기록했다. 경유 가격도 하루 사이 100원 넘게 뛰어 1830원대를 나타내는 등 상승세가 가파른 상황이다. 하루 새 기름값이 100원, 200원 오른 곳도 있다 보니 화물용차량 운전자 등은 ‘주유소들이 해도 너무한다’는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정유사들은 싱가포르 석유제품 시세에 환율을 곱하고 일정 마진을 붙여 휘발유 공급 가격을 정한다. 1주일 이후 예상 공급가를 대리점에 통보하기도 한다. 각 주유소는 자체 재고 및 지역 경쟁 상황 등을 고려해 가격을 자율적으로 정해 고시한다.
다만 호르무즈해협 봉쇄 사태가 지속되면 국제 석유제품 가격이 계속 올라 정부 조치의 효과가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조홍종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가격을 억지로 누르면 결국 비용이 미래 소비자에게 전가된다”며 “생계에 직격탄을 맞는 저소득 계층 등에 세제와 정책자금으로 ‘핀셋 지원’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형규/하지은/김리안/김대훈 기자 khk@hankyung.com
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