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접한 동화 가운데 커서 다시 읽어야 할 책이 많다. 어린이 눈높이에 맞춰 각색한 데다 많은 부분을 줄여 원작의 의도를 알 수 없는 책이 있기 때문이다.소인국과 거인국만 그린 <걸리버 여행기>야말로 대표적으로 다시 읽어야 할 책이다. <걸리버 여행기>는 1부 소인국, 2부 거인국, 3부 날아다니는 섬, 4부 말의 나라까지 총 4부로 구성된다.
왜 어린이에게 1부와 2부만 소개했을까. 풍자문학의 대가 조너선 스위프트는 걸리버의 환상적인 모험담을 통해 당대의 정치사회와 인간 문명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스위프트는 <걸리버 여행기>를 쓴 의도를 “세상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려는 게 아니라 화나게 만들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1726년 출간된 이후 엄청난 인기와 더불어 논란을 불러일으키다 금서로 지정되기까지 했다. 19세기 초 <걸리버 여행기>는 원작의 거친 표현과 풍자를 삭제하고 아동문학으로 발행되었다.
조너선 스위프트는 1667년 아일랜드에서 태어나 영국을 오가며 살다가 1745년에 세상을 떠났다. <걸리버 여행기>를 영국 런던에서 출간해 이름을 떨쳤는데, 이 소설이 워낙 유명해 다른 작품은 오히려 잘 알려지지 않았다.
<걸리버 여행기>는 영국 사람 걸리버가 16년 7개월간 세계를 여행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걸리버는 배에 올라 선원들을 치료하는 외과의사로 등장한다. 나중에는 아예 선장이 되어 출항하기도 한다. 대개의 경우 사고로 혼자 낯선 땅에 당도해 기상천외한 일을 당한다.새로운 환경에 처했을 때 걸리버는 단어를 조합해 빠른 시간 내에 말을 익힌다. 소통이 되면 그 나라의 법도에 따르며 환심을 사고, 그들과 좋은 관계를 맺은 뒤 선물까지 받으며 돌아온다. 걸리버의 친화력은 지금도 세계 어디서나 통하는 생존 방식이다.
1부 소인국과 2부 거인국은 발상 자체만으로도 흥미를 끈다. 왕비의 처소에 불이 났을 때 걸리버가 소변으로 불을 끄는 소인국, 행여 누가 불면 날아갈까 봐 노심초사해야 하는 거인국, 극과 극의 처지에 처한 걸리버를 통해 상대에 대한 배려를 생각하게 된다.
3부 날아다니는 섬은 발상이 독특하다. 하늘에 띄우거나 내릴 수 있는 섬은 날아다니면서 여러 도시를 다스린다. 반란을 일으키거나 공물을 바치지 않으면 날아다니는 섬이 그 도시 위에 떠서 햇빛을 가리고 비를 얻지 못하게 만든다.
걸리버는 그곳에서 죽은 자를 불러낼 수 있는 총독을 만난다. 걸리버는 총독에게 부탁해 알렉산더 대왕부터 아리스토텔레스까지 다양한 인물을 만난다. 그들과 대화하며 국왕들이 공이 있는 사람을 등용한 적이 없고, 부패 없이는 권력이 유지될 수 없다는 얘기를 듣는다. 개인이 명예와 물질을 얻기 위해 엄청난 비리와 부도덕을 저질렀다는 것도 깨닫는다. 온갖 종류의 악이 오래전부터 성행했으며, 수백 년 동안 인간이 얼마나 타락했는지 알게 된 걸리버는 우울해진다.
날아다니는 섬에서 죽지 않는 사람들도 만난다. 행복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끝없는 질투와 이루어질 수 없는 욕망에 시달리는 그들은 장례식을 보며 영원한 안식처로 떠나는 사람을 부러워한다.
영국에 도착한 걸리버는 가족들까지 멀리할 정도로 사람들에게 적응하지 못한다. 우정, 박애, 질서, 가정에 대해 예의 바르게 대화하는 말들을 떠올리며 한숨짓던 걸리버는 그들의 덕성을 생활에서 실천하기로 마음먹고 나서야 기운을 차린다.
인간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퍼붓다가 동물이 다스리는 나라를 이상적으로 그렸으니 <걸리버 여행기>를 탐탁지 않게 여겼을 것이다. 신기한 네 나라와 그 속에서 일어나는 예측 불가능한 사건, 새로운 대상들과의 의미 있는 대화가 21세기에도 신선함과 함께 교훈을 가득 안긴다.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