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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월광 소나타'의 전설, 어디서 시작됐을까

입력 2026-03-10 17:47   수정 2026-03-10 17:48

여행을 하다 보면 지도에는 거의 표시되지 않은 작은 도시나 마을에서 뜻밖의 의미 있는 이야기를 만나게 되기도 한다.

돌나 크루파(Dolna Krupa) 역시 그런 곳이다. 슬로바키아의 수도 브라티슬라바는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에서 약 60km 남짓 떨어져 있다. 브라티슬라바에서 돌나 크루파에 가려면 북동쪽으로 약 45km 떨어진 유서 깊은 도시 트르나바(Trnava)를 거쳐, 다시 북쪽으로 약 10km 더 올라가야 한다. 이 조용한 전원 마을은 과거의 기억을 생생하게 보존하고 있는 듯하다.

브룬스빅 가문과 돌나 크루파

슬로바키아에서 ‘돌나 크루파’라고 하면 무엇보다도 먼저 국제적으로 알려진 ‘아피메드(Apimed)’라는 상표의 고급 봉밀주가 떠오른다. 봉밀주(蜂蜜酒)는 말 그대로 벌꿀을 발효시켜 만든 술로, 슬로바키아어와 체코어를 비롯한 슬라브어에서는 메도비나(medovina), 영어에서는 미드(mead)라고 부른다.



이 꿀벌술과 관련해 우리에게 친숙한 단어가 하나 있다. 바로 허니문(honeymoon), 즉 ‘밀월(蜜月)’이다. 오늘날에는 신혼여행을 뜻하는 말로 쓰이지만, 일설에 따르면 옛날에는 결혼한 신랑·신부가 한 달 동안 꿀벌술을 마시면 첫해에 아이를 낳게 된다고 믿었다고 한다. 여기서 ‘꿀(honey)’과 ‘한 달(month, moon)’이 결합해 허니문이라는 말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달’ 이야기가 나온 김에, 돌나 크루파에서는 ‘달’과 관련된 음악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바로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에 얽힌 이야기다. 이 곡과 연관된 장소는 아피메드 본사 건물에서 남쪽으로 약 200미터 떨어진 곳에 자리한 브룬스빅 궁전이다.

광대한 영국식 정원을 갖춘 이 궁전은 슬로바키아 전원 지역에 세워진 신고전주의 양식 건축물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사례 중 하나로 꼽힌다. 완만한 지형 위에 펼쳐진 정원과 고요한 연못, 그리고 느릿한 산책로는 도시의 소음과는 전혀 다른 시간의 흐름을 느끼게 한다.



독일계 헝가리 귀족 가문인 브룬스빅이 돌나 크루파를 영지로 삼아 이곳에 정착한 것은 18세기였고, 원래 바로크 양식이던 브룬스빅 궁전은 1813년을 전후하여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개축되었다. 궁전 옆에 자리한 작은 건물은 현재 베토벤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그 앞에는 높은음자리표를 형상화한 조각상이 세워져 있다.

빈에서 활동하던 베토벤은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초에 걸쳐 브룬스빅 가문의 초청으로 여름 기간 2~4주 동안 돌나 크루파에 머물렀다. 이는 브룬스빅 궁전이 오늘날과 같은 모습으로 개축되기 이전의 일이다. 가문에 전해지는 말에 따르면 베토벤은 이곳에서 <월광 소나타>를 작곡했다고 한다. 물론 문헌적으로는 이 작품이 이 시기 빈에서 작곡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럼에도 이 소나타가 돌나 크루파 체류와 깊이 연관된 작품으로 여겨지는 이유는, 이곳이 베토벤에게 드물게 주어진 정서적 휴식의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도시의 긴장과 생계의 압박에서 벗어난 이 전원에서, 그는 자신의 내면을 보다 깊이 들여다볼 수 있었을 것이다.



‘월광 소나타’의 탄생

1802년, 베토벤은 빈에서 네 곡의 피아노 소나타 Op. 22, 26, 27(1, 2번), 28번을 출판했다. 이 가운데 Op. 22와 Op. 28이 전통적인 소나타 형식을 따르고 있는 반면, Op. 26과 Op. 27의 두 곡은 형식과 표현에서 기존 관습을 과감히 벗어난 작품들이다.

특히 1801년에 작곡된 Op. 27 No. 2의 첫 악장은 느린 템포와 지속되는 반주 위에 명상적인 선율이 흐르며, 당시로서는 전례 없는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이는 살롱 음악의 우아함이나 기교 과시와는 거리가 먼, 내면을 응시하는 음악이었다. 이 소나타는 베토벤 사후에 <월광 소나타>라는 이름을 얻게 되며, 그 낭만적인 제목과 함께 널리 사랑받게 된다.

베토벤은 이 작품을 자신이 연모하며 결혼까지 생각했던 줄리에타 구이차르디에게 헌정했다. 그러나 그는 끝내 결혼하지 못하고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그것은 결혼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때문이었다.

베토벤은 빈에서 브룬스빅 가문의 세 딸 테레제, 요제피네, 샤를로트와 그들의 외사촌인 줄리에타를 가르쳤다. 그중에서 생기 넘치는 열일곱 살의 줄리에타는 베토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귀족 사회의 규범 속에서 자라난 그녀는, 베토벤에게 동경과 희망을 동시에 안겨주었다. 그는 친구 베겔러에게 보낸 편지에서 한 젊은 아가씨와의 사랑, 결혼에 대한 기대, 그리고 그것이 허락되지 않는 현실을 솔직하게 토로했다.

그가 언급한 ‘허락되지 않는 현실’은 사회적 신분의 차이를 뜻했다. 줄리에타는 귀족이었고, 베토벤은 귀족 신분이 아닌 시민계급 출신의 음악가였다.

당시 이 신분의 장벽은 아무리 위대한 작곡가라 하더라도 쉽게 넘을 수 없는 것이었다. 브룬스빅 가문의 초청으로 돌나 크루파에 머물렀을 때도, 베토벤은 궁전의 귀빈으로 머문 것이 아니라 정원지기 가족이 살던 작은 집의 다락방에 기거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공간적 대비는 그가 처한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한편 줄리에타는 사촌 언니 테레제에게 보낸 편지에서, 베토벤의 외모를 멋없다고 평가하면서도 그에 대한 호감을 드러냈지만, 그와 결혼하면 신분이 낮아질 것을 우려했다. 결국 그녀는 음악을 사랑하던 젊은 귀족 갈렌베르크와 결혼해 멀리 이탈리아 나폴리로 이주하고 말았다. 젊은 베토벤이 난생처음 품었던 달콤한 밀월의 꿈은 신기루처럼 사라졌던 것이다.

하지만 그가 남긴 <월광 소나타>는 시대와 국경을 넘는 불멸의 명곡이 되어 지금도 전 세계에서 온 베토벤의 순례자들을, 지도 한켠에 숨겨진 듯한 이 작은 마을 돌나 크루파로 이끌고 있다.

정태남 이탈리아 건축사?작가

[Beethoven - Moonlight Sonata - Berliner Philharmonie | Piano & Orches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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